< 긴급회의 마친 국무위원들 > 한덕수 국무총리(가운데)와 각 부처 장차관이 4일 정부서울청사 국무회의실에서 비상계엄 사태 수습 방안 등을 논의한 뒤 회의장을 빠져나오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한 총리,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최혁 기자
< 긴급회의 마친 국무위원들 > 한덕수 국무총리(가운데)와 각 부처 장차관이 4일 정부서울청사 국무회의실에서 비상계엄 사태 수습 방안 등을 논의한 뒤 회의장을 빠져나오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한 총리,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최혁 기자
야당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4일 국회에 제출하는 등 비상계엄 후폭풍이 이어지면서 한국 경제가 ‘시계(視界)제로’의 비상사태에 직면했다. 내년 초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국내외 경제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경제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대통령실 참모와 내각은 ‘전원 사퇴’ 위기로 몰리고 있다. 이번 사태가 장기화하면 한국 경제의 대외 신인도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韓 경제 신인도 영향 촉각

가뜩이나 어려운데 탄핵 리스크까지…"韓 경제, 한치 앞도 안보여"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 중소벤처기업부 등 주요 경제 부처들은 이날 예정된 내외부 회의와 일정을 일제히 취소했다. 소상공인 맞춤형 지원 강화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이날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열기로 했던 경제관계장관회의도 연기됐다. 최 부총리는 그 대신 이날 긴급 경제장관회의를 열고 비상계엄 선포와 해제 등에 따른 국내외 경제·금융 현안을 점검했다. 그는 회의 직후 브리핑에서 “정부는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 경제와 기업의 경영 활동, 국민의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하겠다”며 “우리 경제가 직면한 불확실성이 신속하게 해소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실물경제 충격이 발생하지 않게 24시간 경제금융상황점검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비상계엄 정국이 장기화하면 한국 경제의 대외 신인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고 경고한다. 미국 뉴욕타임스와 영국 BBC, 파이낸셜타임스 등 해외 유력 매체는 비상계엄이 선포된 전날 밤부터 한국 상황을 실시간 보도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국내 기업, 소비자, 투자자의 심리에 작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

최 부총리도 이런 상황을 고려해 이날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경제 6단체 대표들과 긴급 간담회를 열었다. 최 부총리는 참석자들에게 “그 어떤 상황에서도 예정된 투자·고용·수출 등 기업의 경영 활동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경제팀이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경제단체 대표들은 “기업이 안정적으로 경영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달라”고 요청했다.

최 부총리는 이날 미국 일본 중국 등 주요국 재무장관과 국제기구 수장, 글로벌 신용평가사에 긴급 서한도 발송했다. 최 부총리는 서한에서 “비경제적 요인으로 발생한 혼란은 건전한 경제시스템에 의해 효과적으로 통제되고 있다”며 “금융·외환시장이 신속히 안정을 되찾은 것도 이런 경제적 혼란이 장기화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입증한다”고 했다.

○1%대 저성장 늪 빠지나

이번 사태가 한국 경제성장률을 더 끌어내릴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올해 들어 한국 경제는 내수가 좀처럼 살아나지 못하는 가운데 그동안 경기를 떠받치던 수출도 증가세 둔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국은행은 이런 상황을 반영해 지난달 말 수정 경제전망에서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4%에서 2.2%로 낮췄다. 내년 성장률은 2.1%에서 1.9%로 내렸고, 2026년 성장률은 1.8%로 전망했다. 저성장이 고착화하는 경제 시나리오를 보여준 것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내년 초 취임 후 보편관세 공약 등을 실제 추진하면 성장률이 더 하락할 것이라는 분석도 많다.

정부가 그동안 검토해온 다양한 내수 부양 정책도 추진 동력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윤 대통령이 지난 2일 “전향적인 내수·소비 진작 대책을 강구하라”고 지시한 후 파격적인 대책을 검토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신용카드 소득공제율 한시 상향과 온누리상품권 확대 등 서민과 중산층의 가처분소득을 늘려 소비를 촉진하는 방안들이 주로 논의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대통령실 기능이 사실상 마비된 가운데 당장은 어떤 정책도 섣불리 준비할 수 없다”며 “지금으로선 사태 추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