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월 의장 신중론에도..미 증시는 이미 연말 랠리 [글로벌마켓 A/S]

연말 마지막 통화정책에 대한 힌트는 이번에도 주어지지 않았다. 월가가 주목한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의 뉴욕타임스 딜북 대담은 기존의 입장만 재확인한 채 싱겁게 마무리됐고, 채권시장은 이달 금리인하에 대한 기대를 그대로 반영했다. 미국 주요 경제지표가 다소 진정 기미를 보이는 등 시장은 통화정책 완화를 미리 반영하며 연말 랠리에 돌입했다.

현지시간 4일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S&P500 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36.61포인트, 0.61% 오른 6,086.49로 최고치를 경신했고,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도 254.21포인트, 1.3% 급등한 1만 9,735.12를 기록했다. 장 막판 최고치를 기록한 뒤 소폭 내렸지만 반도체, AI 기업을 중심으로 새로운 기록을 썼다. 다우존스 지수도 이날 308.51포인트, 0.69% 오른 4만5,014.04로 4만 5천선을 돌파했다. 이날 시장에서 가장 주목한 이벤트였던 제롬 파월 의장의 발언은 크게 4가지 사항으로 정리된다. 파월 의장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동전 뒤집기’식 결정이라며 연준의 통화정책을 흔드는 것에 대한 질문에 “독립성이 훼손될 위험이 없다”며 날을 세웠다. 파월 의장은 “연준의 독립성은 정치적인 영향을 받지 않은 채로 미국 국민을 위해 최선의 판단을 내리는 것”이라며 “이는 의회의 법에 의해 보호 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시장에서 기대하고 있는 12월 금리인하에 대해서는 원론적인 입장에 그쳤다. 파월 의장은 “미국 경제는 현재 매우 강하고, 성장률은 약 2.5%에 낮은 실업률이 이어지고 있다”며 “금리인하에 신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연준의 소통 방식에 대해선 “투명할 수록 대중이 보다 잘 예측하게 된다”며 정책 변화에 대해 적극적으로 밝히겠다는 뜻을 분명히했다. 연준의 통화정책의 완화 속도는 크게 더뎌지지만 금리를 점진적으로 내리겠다는 파월 의장의 뜻을 재확인한 채권 금리는 오전의 하락폭을 이어가는 등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미 10년물 국채금리는 2.5bp 내린 4.186%로 하락을 이어갔다.

연준이 지난달 경제 상황을 요약한 베이지북에서도 미국의 경제 성장에 대해 기업들의 ‘적당한 기대’가 있다는 평가가 담겼다.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관세로 인한 인플레이션 우려가 있으나 향후 기업 여건에 대한 기대치가 살아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고용과 물가에 대한 전망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는데, 12개 지역 은행의 분석에서 고용은 다소 부진하고, 일부 인플레이션이 나타나는 문제 등 통화정책 완화를 멈출만한 내용은 담기지 않았다. 또한 이날 오전 ADP 민간 고용이 14만 6천 명으로 지난달 하향 조정된 18.4천 명보다 적었고, ISM에서 집계한 서비스업 PMI 지수도 52.1%로 그간의 강세를 다소 되돌리는 발표로 인해 통화 정책 완화에 대한 시장의 기대가 이어졌다.

● 'AI 수익화 본보기'..월가 환호한 세일즈포스 콘퍼런스콜

경제 지표로 인한 안도감 속에 이날 미 증시를 본격적으로 밀어올린 건 전날 장 마감 이후 실적을 공개한 세일즈포스가 AI를 이용한 사무업무의 대체와 이를 바탕으로 한 수익화의 가능성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세일즈포스는 2025회계연도 3분기 매출액 93억 2,500만 달러로 시장 예상치를 넘어섰고, 주당순이익은 2.56달러로 예상치에 부합한 결과를 공개했다. 2025회계연도 연간 가이던스는 평이했다. 총 매출액은 378억 달러에서 380억 달러, 주당순이익은 10.24달러의 기존 전망을 유지했고 컨센서스를 다소 밑도는 기록에 그쳤다.

그러나 전날 콘퍼런스콜에서 마크 베니오프 최고경영자 등은 고객관계관리 업무를 자동화할 수 있는 AI, 에이전트 포스의 사업 확장 가능성을 보여주며 투자자들의 긍정적 반응을 끌어냈다. 에이전트 포스는 AI 기반 고객 지원 및 업무 자동화 플랫폼으로, 기업이 고객관계 관리(CRM)와 관련된 작업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돕는 솔루션이다. 세일즈포스가 오픈AI와 협업해 구축한 생성형AI를 이용해 고객 지원과 데이터 분석, 업무 자동화, 데이터 통합 관리까지 가능하고 비용 절감 효과를 낼 수 있다. 마크 베니오프는 이러한 새로운 솔루션의 주요 기업 계약건수가 200건으로 데이터센터 운용 기업들과의 시너지도 나타나고 있다고 언급했다.

골드만삭스는 이러한 콘퍼런스콜 언급을 바탕으로 목표주가를 기존 360달러에서 400달러로 높였고, JP모건은 450달러의 12개월 목표주가를 제시했다. 골드만삭스는 “에이전트 포스와 데이터 클라우드가 주요 매출 파이프라인을 형성해 비즈니스에 기여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웨드부시의 댄 아이브스 애널리스트는 “AI파티가 고객관계관리와 소프트웨어로 이동하고 있고, 사업 포트폴리오가 강화되고 있다”며 목표주가를 375달러에서 425달러로 높여 제시했다.

스포티파이도 구글 AI에 기반해 연말 프리미엄 구독자 전용 서비스를 추가로 선보였다. 1년간 청취 경험을 바탕으로 AI 진행자가 생성한 팟캐스트 등을 제공하고, 아티스트가 생성한 영상 클립을 공유하는 등의 기능이 추가된다. 이러한 발표로 이날 스포티파이는 1.83% 올랐다. 올해 주요 테마였던 체중감량 치료제 시장은 일라이 릴리가 승기를 잡았다. 노보 노디스크의 위고비와 일라이릴리의 젭바운드가 72주간 고도비만환자를 대상으로 최대 용량 투약을 진행한 결과 감량 효과에서 위고비는 약 13.7%, 젭바운드가 20.2% 몸무게 감소 효과를 기록했다. 이 소식으로 이날 일라이릴리가 2.03% 올랐지만, 노보 노디스크는 0.22% 하락했다.

캐나다 최대은행인 캐나다 로열은행(RBC)은 2024회계연도 4분기 순익이 시장 예상을 상회하며 장중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 RBC는 HSBC 캐나다 사업 인수로 고객이 78만 명 추가되었고, 자산관리 부문에서 9억 6천만 달러로 전년대비 3배 가량의 성과를 기록했다. 데이브 맥케이 최고경영자는 다각화된 수익과 함께 위험 관리로 견고한 실적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농산물 기업인 아처 대니얼스 미들랜드와 번지는 각각 2%대 하락을 보였다. 전날 세계 최대 농산물 기업인 카길이 2030년까지 비용 절감 차원에서 전세계 5%이 인력 감축을 발표하면서 업황 둔화에 대한 우려가 주가에 반영됐다.

● 투자자 콘퍼런스 앞두고 임원 살해..충격 휩싸인 유나이티드헬스그룹

이날 개별 종목 가운데 가장 충격적인 소식을 전한 기업은 미국 최대 보험기업인 유나이티드헬스그룹이다. 전날 2025년 연간 가이던스를 공개한 유나이티드헬스는 당초 이날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한 호텔에서 투자자 콘퍼런스를 진행하려다 취소했다. 이 회사의 보험 부문 최고경영자인 브라이언 톰슨이 이날 새벽 6시 46분경 호텔 앞을 지나던 중 기다리고 있던 괴한이 등 뒤에서 쏜 여러 발의 총격을 받고 숨졌자. 에릭 아담스 뉴욕 시장은 “무차별 범죄는 아니다”라면서 사건 충격을 수습하고 있다. 용의자는 총격 이후 6번가에서 바이크를 타고 도주했으며, 신원을 확보하지 못한 뉴욕 경찰은 약 1만 달러의 현상금을 걸고 추적 중에 있다.

유나이티드헬스는 이런 사고에도 2025년 매출 전망치를 4500억~4550억 달러로, 컨센서스 4,314억 달러를 초과해 제시했다. 조정 주당순이익은 29.50달러에서 30달러로 시장 예쌍치 29.92보다 소폭 낮았다. 의료비 부담 비율은 예상치 84.77%보다 높은 86~87%로 제시했다. 비극적인 임원 사망 사고에도 투자자들의 매수로 유나이티드헬스가 0.92% 상승했고, 세일즈포스의 주가 10%대 강세가 더해져 다우를 비롯한 지수 강세의 발판이 됐다.

한편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와 6시간 만의 해제 과정에서 불거진 한국의 정치적인 혼란에 월가는 계속해 경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 출범 이전 미국과 일본 등 동맹국들과의 신뢰 관계도 흔들 위험이 있다는 전망을 비롯해 한국 시장에 대한 외국 투자자들의 이탈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유럽계 투자은행 SEB 그룹은 분석 보고서에서 한국 주식 매도세와 정치적 불안정으로 인해 원화 약세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1,400원대에서 강한 지지를 받게 됐고, 이번 사태로 내년 1월 16일 한은의 정례 통화정책 회의 전 시장 안정 정책으로 인해 환율이 추가 하락할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다만 이러한 전망에도 한국 의회의 계엄령 해제로 최악의 상황을 피하게 되면서 MSCI 한국 ETF(EWY)는 전날 급락을 딛고 0.72% 반등했다.


김종학기자 jhkim@wowtv.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