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처리 능력의 비용이 대략 2년마다 절반으로 줄어든다는 ‘무어(Moore)의 법칙’과 반대로 신약 개발 비용은 시간이 지날수록 급등하는 특징이 있다. 신약 개발 비용이 9년마다 두 배가량 증가하는 현상을 ‘이룸(Eroom)의 법칙’이라고 부른다. ‘무어’의 철자를 거꾸로 쓴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는 5일 발간한 <2025 세계대전망>에서 인공지능(AI) 기술의 발전이 ‘이룸의 법칙’을 무너뜨릴 날이 머지않았다고 전망했다.

이코노미스트는 “AI를 통해 신약 개발 속도가 더 빨라지고 비용도 저렴해질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과거 수개월에 걸친 시행착오와 실험이 필요했던 신약 개발 과정이 AI 기술로 단 몇 시간 만에 진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약 개발은 △특정 질병과 관련된 단백질·유전자 등의 표적 식별 △표적 활동을 차단 또는 강화해 치료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분자 설계 △안전성·유효성 테스트 △동물실험 △임상시험 등 다섯 단계를 거쳐 이뤄진다. 유망한 신약 후보물질 한두 개를 선택하기까지 최대 100만 개의 화합물을 확인하고 검사해야 한다.

AI는 모든 단계에서 효율성을 크게 높일 수 있다.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분석해 표적 식별을 돕고, 신약 후보물질로 적합한 분자를 정밀하게 찾아낼 수 있다. 생성형 AI는 완전히 새로운 분자를 설계해 테스트할 수도 있다.

구글의 AI 자회사 딥마인드가 2020년 공개한 알파폴드2는 인체 단백질 구조를 정확히 예측하며 과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올해 5월에는 알파폴드3가 개발돼 단백질뿐만 아니라 DNA, RNA, 리간드까지 예측이 가능해졌다.

이코노미스트는 또한 내년이 맞춤형 암 백신 개발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팬데믹 동안 발전한 메신저 리보핵산(mRNA) 기술과 AI 기술이 결합하면서다. 개인 맞춤형 암 백신은 환자의 특정 돌연변이에 맞춰 설계돼 치료 효과가 뛰어나다. 백신 개발 과정도 크게 단축돼 단 6주 만에 완료될 수 있다.

임다연 기자 allo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