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가 6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노벨상박물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가 6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노벨상박물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며칠 동안 아마 많은 한국 분이 그랬을 텐데, 충격도 많이 받았고 아직도 굉장히 많은 상황이 빠르게 달라지고 있기 때문에 계속 뉴스를 보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한국 첫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이 6일(현지시간) 세계 취재진과 만난 기자간담회에서의 첫마디는 한국의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한 내용이었다. 그는 스웨덴 한림원에서 열린 공식 간담회에서 '전 세계가 한국의 정치적 혼란에 집중하고 있다. 당신은 이번 한 주가 어떠했냐'는 취지의 사회자 질문에 간단한 인사말을 한 뒤 이렇게 운을 뗐다.

이날 기자간담회는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으나 국회가 해제 요구를 의결함에 따라 약 6시간 만에 해제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이틀 후에 열렸다. 그래서 한강이 비상계엄 사태를 언급할지, 이야기한다면 어떤 내용일지 이목이 쏠린 상황이었다.

이어지는 질의응답에서도 한강은 그의 대표작이자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를 언급하며 비상계엄에 관한 생각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했다.

간담회에 참가한 기자의 첫 질문은 '한국은 극단적으로 혼란스러운 상태이고 다른 여러 나라가 전쟁 중인 상황 속에서 문학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것이었는데, 한강은 "제 생각을 잠깐 정리해서 말씀드린 뒤에 지금 질문에 대답하겠다"며 적극적으로 의견을 설명했다.

한강은 "'소년이 온다'를 쓰기 위해 1979년 말부터 진행된 계엄 상황을 공부했다"며 "2024년에 계엄 상황이 다시 전개되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2014년 발간된 '소년이 온다'는 광주민주화운동에서 계엄군에 맞서다가 희생된 소년 동호와 정대 및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으로, 국가적인 폭력에 맞선 피해자들의 비극을 서정적으로 담아내 호평받았다.

한강은 이날 간담회에서 "바라건대 무력이나 강압으로 언로를 막는 방식으로 통제하는 과거의 상황으로 돌아가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향후 상황에 대한 견해도 밝혔다.

한강은 10월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이후 언론과 일절 접촉하지 않았고 그간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 직접 발언하지는 않았다. 이 때문에 이날 간담회에 앞서 한강이 한국의 정치 상황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었지만, 이런 예상과는 달리 한강이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밝혀 눈길을 끌었다.

이날 기자간담회는 사전에 취재를 신청한 세계 모든 언론사를 대상으로 한 자리였다. 스웨덴 한림원에 약 80여개 매체 소속 취재진이 모였고, 한국뿐 아니라 스웨덴과 유럽 다른 국가의 언론사도 참석했다.

한강은 정치적인 사안을 언급하면서도 평소의 침착한 태도와 유머 감각을 잃지 않았다. 인터뷰 시작 전 전화벨이 울리자 당황한 듯 영어로 "제 전화네요"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고, 한꺼번에 너무 길게 말을 한 뒤에는 "제가 너무 길게 말했죠"라며 통역사에게 미안함을 드러냈다.

그는 특히 오늘날 한국과 세계의 정치 상황이 어려운 가운데 문학의 의미는 무엇이냐는 질문에 "문학이란 것은 끊임없이 타인의 내면으로 들어가고 그런 과정에서 자신의 내면을 깊게 파고 들어가는 행위"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어떤 갑작스러운 상황이 왔을 때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최선을 다해서 결정하기 위해 애쓸 수 있는 힘이 생긴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문학은 언제나 우리에게 여분의 것이 아니고 꼭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