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가 6일 스톡홀름 스웨덴 아카데미(한림원)에서 내외신 기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가 6일 스톡홀름 스웨덴 아카데미(한림원)에서 내외신 기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아마 많은 한국분이 그러셨을 텐데, 저도 충격을 많이 받았고 지금도 상황이 매우 빠르게 변화하고 있어 계속 뉴스를 보며 지내고 있습니다.”

노벨상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을 방문한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은 6일 스웨덴 한림원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사회자가 한국의 정치 혼란을 언급하며 “이번 주가 어떠셨냐”고 묻는 말에 이렇게 답했다. 그는 “<소년이 온다>를 쓰기 위해 1979년 말부터 진행된 계엄 상황에 대해 공부했다”며 “2024년에 다시 계엄 상황이 전개되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10일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한강 작가가 공식 기자회견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이날 검은 정장에 남색 머플러를 두른 모습으로 회견장에 입장해 한국어로 기자들의 질문에 답했다. 특유한 나지막하고 조용한 목소리였다.

< ‘특별한 방명록’ 의자에 친필 서명 > 한강 작가가 노벨박물관에서 노벨상 수상자들을 위한 특별한 방명록인 박물관 레스토랑 의자에 서명을 남기고 의자를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 ‘특별한 방명록’ 의자에 친필 서명 > 한강 작가가 노벨박물관에서 노벨상 수상자들을 위한 특별한 방명록인 박물관 레스토랑 의자에 서명을 남기고 의자를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그는 “2024년 겨울의 상황이 예전과 다른 점은 모든 게 생중계돼 많은 사람이 지켜볼 수 있었다는 것”이라며 “저도 그 모습을 지켜봤는데 맨몸으로 장갑차 앞에서 멈추려고 애쓰셨던 분들도, 맨손으로 무장한 군인을 껴안으면서 제지하려는 분들도, 총을 들고 있는 군인 앞에서 버텨보려고 애쓰는 사람들도 보았다”고 말했다. 이어 “마지막에 군인들이 물러갈 때는 잘 가라고 마치 아들한테 하듯이 소리치는 모습도 봤다”며 “그분들의 진심과 용기가 느껴졌던 순간이었다”고 했다.

또 “젊은 경찰분들, 군인 분들의 태도도 인상 깊었다”며 “아마 많은 분이 느끼셨을 것 같은데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판단하려고 하고, 내적 충돌을 느끼며 최대한 소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떠올렸다. 한강은 “무력이나 강압으로 언로를 막는 방식으로 통제하는 과거의 상황으로 돌아가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강은 <채식주의자>가 일부 학교에서 청소년 유해 도서로 지정되며 논란이 일었던 것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이 책의 운명이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며 “그러나 이 소설에 유해 도서라는 낙인찍고, 도서관에서 폐기하는 것이 책을 쓴 사람으로서 가슴 아픈 일이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이어 “<채식주의자>는 이 세계에서 완벽하게 폭력을 거부하는 것이 가능한가란 질문을 다루고 있다”며 “신뢰할 수 없는 화자의 입장에서 소설을 읽은 분들은 주인공을 보고 정말 이상한 여자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책을 덮고 나면 여자를 둘러싼 세계가 더 이상한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벨상을 받은 것에 대해선 “처음엔 제게 쏟아지는 개인적 관심이 부담스러웠지만, 이 상은 문학에 주는 상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며 “이제 다시 글을 쓸 준비가 됐고, 오늘 이후로 노벨 주간을 즐기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기자회견 말미에 과도하게 긍정적인 해석을 우려한다는 뜻을 전하면서도 “그동안 희망이 있나는 생각을 해왔는데 요즘은 얼마 전부터 희망이 있을 거라고 희망하는 것도 희망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한강은 기자회견에 앞서 이날 오전 노벨박물관을 찾아 자신의 소장품으로 옥색 빛이 감도는 작은 찻잔을 미리 준비한 메모와 함께 기증했다. 그가 <작별하지 않는다>를 집필할 때 홍차를 타 마셨던 찻잔이다.

임근호/박종서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