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남은 좁은 골목길에서 당신을 연모하는 수줍은 내 마음이 들킬까 조심스레 전봇대에 숨어 버렸다오."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작가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전기를 다룬 영화 '괴테’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작가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전기를 다룬 영화 '괴테’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이런 사랑 이야기를 담은 글을 읽다 보면 사랑의 중독 증상에 세 가지 주요 특징이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우선 내성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보고 또 보고'해야 한다. 둘째로, 금단현상이다. 셋째, 재발 현상이다. 그래서 소설을 읽거나 연화를 보다 보면 목숨을 건 사랑을 하는 사랑에 눈물을 흘리는 감정이입이 될 때도 있다.

목숨 건 사랑이라도 중요한 건 그게 순수한 사랑인지 아니면 집착이었는지 분간을 해야 할 것이다. '질풍노도의 시대'를 이끈 청년 괴테의 대표작이자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독자를 가지게 된 이 작품은 사랑의 열병을 앓는 전 세계 젊은이들의 영혼을 울렸다. 주요 내용을 떠올려 보자.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 사진출처. © KYOBO BOOK CENTRE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 사진출처. © KYOBO BOOK CENTRE
마음씨 착하고 교양 있는 청년 베르테르. 그도 한 여인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비극을 낳지는 않았을 것이다. 봄이 한창인 어느 해. 그가 어느 작은 시골 마을에 나타났을 때 비극은 잉태되었다. 젊은 변호사 베르테르는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조용하고 아름다운 곳을 찾아간다.

그는 부유한 시민계급 출신으로 아버지의 유산을 받아 아무런 부족함이 없이 생활할 수 있는 청년이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마을 교외에 사는 법관의 딸로, 8명의 동생을 어머니 대신 보살피는 아름다운 로테를 만난 사건은 비극의 씨앗이 됐다. 로테는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여성이기도 하지만, 베르테르를 유혹하는 말도 건넨다.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작가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전기를 다룬 영화 '괴테’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작가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전기를 다룬 영화 '괴테’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문제는 그녀에게 약혼자가 있다는 사실이다. 베르테르와 로테와의 만남이 깊어질 무렵, 로테의 약혼자 알베르트가 여행에서 돌아온다. 이때부터 베르테르의 감정은 그늘지기 시작해 생기를 잃어 간다. 어느 날 알베르트와 로테 사이에서 번민하던 베르테르는 공사의 비서가 되어 새로운 도시로 떠날 결심을 하고 로테와 알베르트에게 작별 인사를 한다.

베르테르는 먼 타국의 공관에서 마음 내키지 않는 일을 한다. 사랑하는 로테에게서 떨어져 지내야 하는 겨울은 그에겐 정신적으로 황량한 시기였다. 세속적인 잡무와 공사의 권위적인 인습에 부딪혀 베르테르는 점점 지쳐갔다. 신분적인 차별로 사교계에서 웃음거리가 된 그는 사직서를 제출하고 로테가 있는 마을로 돌아간다.

겨울이 한창일 때 알베르트와 로테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이미 결혼식을 올렸었다. 베르테르는 어느 순간 고독에 찬 그 자신을 깨닫게 된다. 자연이 가을로 접어들 듯 그의 마음도 쓸쓸한 가을이 되고 있었다. 서서히 그늘이 그에게 다가왔다. 그는 로테에 대한 가망 없는 사랑과 귀족 사회에 대한 분노의 감정에 휩쓸려서 더 이상 마음을 자제할 수 없게 된다.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작가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전기를 다룬 영화 '괴테’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작가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전기를 다룬 영화 '괴테’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알베르트가 로테에게 자신과의 만남을 자제해 달라는 부탁을 한 것을 알고 더욱 절망한다. 그는 로테의 뜻을 어기고 알베르트가 없을 때 그녀를 찾아간다. 당장 꺼질 듯한 불도 한순간 밝게 타오르는 순간이 있다. 열정적인 시를 낭독해 주자 로테는 크게 감격하고, 베르테르는 그녀를 힘껏 포옹한다.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자 이런 베르테르가 부담스러워진 로테는 그에게 이별을 고한다. 이튿날 그는 여행을 간다면서 알베르트에게 권총을 빌려 한밤중에 자살한다. 그의 장례식에는 당연히 한 사람의 성직자도 동행하지 않았다.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중 베르테르의 자살 장면. / 사진=필자제공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중 베르테르의 자살 장면. / 사진=필자제공
목숨을 건, 사랑은 아름다울 수도 있다. 그러나 베르테르의 경우를 보더라도 어쩌면 끝없는 집착의 사랑은 헛된, 때로는 무모한 정열의 낭비만 남긴다는 견해도 있지 않을까. 현실에도 많은 사람이 연인의 변심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있다. 소설이 나오고 모방 자살을 하는 베르테르 효과라는 용어가 탄생했다. 오늘날에도 유명인의 자살이 있을 경우 일반인의 자살이 늘어날 때가 있다.

이 소설은 작가 괴테의 짝사랑 체험담에다 사랑 때문에 비극적 선택을 한 친구의 이야기를 적당히 버무린 이야기다. 사랑은 이처럼 자살이라는 치명적 민낯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기도 한다. 새로운 사랑으로 자아실현을 떠나는 사람도 있지만 광적인 집착은 정신착란을 일으켜 자아의 붕괴와 비극적 결말을 초래한다는 말은 그래서 새겨들어야 할 것 같다.

우리는 요즘도 가끔 나이 지긋한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너와 헤어지고 여기저기를 헤매어 다녔어. 차 몰고 갈 때 라디오에서 노래가 나오는 거야. 그 노래를 듣는데 네 생각에 얼마나 눈물이 나오는지. 너 향한 그리움이 다시 솟구쳐 올라 재빨리 갓길에 차를 대고 한참을 울었다. 사랑, 아니 너란 존재는 지구에서 가장 강력한 중독성을 몰고 오는 것 같아. 그때는 목숨을 걸고서라도 남의 여자가 된 너를 데려오고 싶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최적화를 추구하는 '시간의 비일관성(time inconsistency)'이라는 경제 문제가 떠오른다. '시간 비일관성'이란 어느 시점에서는 최적으로 보였던 행동이 미래에는 최적이 아닌 현상을 의미한다.

흡연자들은 한 번 이상은 금연을 시도하기도 한다. 그런데 실패를 상당수 경험하는 것은 왜일까. 그들은 담배를 안 피워서 스트레스 받는 게 건강에 더 나쁘다고 변명을 늘어놓기도 한다. 당장 여러 스트레스를 줄이고 하루를 버텨내기 위해서는 싼값에 도파민을 분비할 수 있는 담배 한 대가 효율적일 수 있다. 하루 단위로 보면 고개를 끄덕일 만하다. 다만, 장기적으로 오랜 세월의 흡연은 모든 병의 근원이 되고 좋지 않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베르테르의 이러한 행동도 마찬가지다. 단시간에서는 베르테르가 로테를 만나 행복한 감정을 느끼는 게 좋다. 그러나 이는 결혼한 여자를 나의 여인으로 만들 수 없기에 장기적인 관점에서 결코 최적의 선택이 되지 못한다. 가계, 기업, 정부 등 경제 주체들의 선택이 한 시점에서는 최적이었으나 다른 시점에서는 최적의 선택이 아니게 되는 경우는 상당이 있다.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작가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전기를 다룬 영화 '괴테’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작가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전기를 다룬 영화 '괴테’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시간 비일관성 문제는 1970년대 전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이 나타나면서 활발하게 연구되었다. 통화정책 당국이 인플레이션을 억제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2004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키들랜드(Finn E Kydland)와 프레스콧(Edward C Prescott)은 시간 비일관성 문제를 근거로 들어 중앙은행이 경기침체에 그때그때 대응하는 재량(discretion) 정책을 펴는 것보다는 준칙(rule)을 바탕으로 정책을 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두 수상자는 이런 문제의 근본 원인은 경제정책을 단기적 혹은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해서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정책을 세워나가야 할까? 이들은 신뢰를 바탕으로 중앙은행이 경기 침체에 그때그때 대응하기보다는 특정한 준칙을 정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밀턴 프리드먼이 꽃을 피운 통화주의(monetarism)는 경제 활동의 중요한 결정 요인을 화폐 공급에서 찾는다. 시장에 개입하지 말고 화폐 공급량을 통해 경기를 조절하자는 주장으로 키들랜드와 프레스콧과 뜻을 같이한다.

흔히 'K% 룰'로 대별되는 그의 이론은 경제성장률, 물가상승률을 감안해 일정한 기준에 의해 통화 공급량을 결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중앙은행이 임의로 통화 공급량을 조절해서는 안 되며, 시장 참가자들이 통화 공급량을 예상할 수 있도록 일정한 규칙에 따라 통화량을 조절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옆에 있는 사랑하는 이와 밤에 숲길을 걸어 보라. 그윽한 저 깊은 산 속 숨소리와 바람의 빛깔을 느껴보라. 혹시 문득 이런 생각을 해 보면 너무 엉뚱할까? 숲속의 나무들을 베어 버리면 바람의 아름다운 빛깔이 사라질까?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사랑의 나무를 베면 우리가 상상하던 바람의 빛깔을 제대로 볼 수 없을 수도 있다. 우리는 그래서 시간이 가도 변치 않는 사랑을 이루기 위해 일관되게 노력해야 한다.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작가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전기를 다룬 영화 '괴테’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작가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전기를 다룬 영화 '괴테’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조원경 UNIST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