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고려아연 본사. 임형택 기자
서울 종로구 고려아연 본사. 임형택 기자
'비밀유지계약(NDA)' 위반 여부를 놓고 MBK파트너스와 고려아연 간 신경전이 치열하다. 고려아연은 MBK 측이 2022년 5월 체결해 올해 5월 종료된 고려아연 신사업 관련 핵심자료의 NDA를 위반했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MBK는 2년 전 고려아연 신사업 투자를 검토한 부문과 최근 진행 중인 고려아연의 공개매수를 추진하는 부문이 분리돼 있고 정보교류차단 장치가 돼 있다며 의혹에 선을 긋고 있다.

새 쟁점으로 뜬 ‘NDA 위반’

8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양측과 업계가 주목하는 이번 논란의 핵심은 2022년 5월 MBK가 고려아연으로부터 신사업 관련 자료를 받으면서 체결한 NDA를 위반했느냐다. 해당 계약서엔 '받은 자료를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고려아연 경영권에 영향을 주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등의 20개 조항이 담겨 있다. 비밀유지효력은 지난 5월 종료됐다.

MBK는 NDA 종료 3개월여 만인 9월12일 영풍과 경영협력계약을 체결하고 고려아연 주식에 대한 공개매수에 나섰다. 고려아연은 수조원대 자금이 투입되는 인수합병(M&A)을 3개월 만에 준비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을 들어 MBK가 자사와 맺은 비밀유지계약 기간이 끝나기 전부터 신사업 정보를 활용해 경영권 장악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MBK는 이 같은 의혹이 제기되자 MBK 투자 운용 부문은 경영권을 인수하는 '바이아웃' 부문과 소수지분투자·사모사채 등의 '스페셜시츄에이션' 부문으로 나뉘며 2022년 신사업 투자를 검토한 부문은 스페셜시츄에이션이고 현재 공개매수를 진행한 것은 바이아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두 부문은 실질적으로 분리돼있으며 차이니스 월(정보교류차단 장치)로 막혀 내부 정보 교류 자체가 차단돼 있다고 설명했다. 컴플라이언스를 통해 엄격하게 통제돼 있다고도 했다. 2022년 체결한 NDA와 현재 고려아연 공개매수 추진은 관계가 없다는 얘기다.

맹공 나선 고려아연

서울 종로구 고려아연 본사. 사진=한경DB
서울 종로구 고려아연 본사. 사진=한경DB
하지만 고려아연은 지배구조와 의사결정권자 및 의사결정 과정 등이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 사모펀드(PEF)의 특성상 MBK의 해명을 그대로 수용할 수 없다고 맞선다. 김병주 MBK 회장이 고려아연과 NDA를 체결한 홍콩사무소와 고려아연 공개매수를 진행한 서울사무소 모두에 파트너 활동을 하는 데다 투자심의위원회 의장으로서 모든 의사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진 점 등을 고려하면 차이니스 월 효과는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주장이다.

고려아연은 또한 MBK 소속 A부회장의 역할 범위도 의심스러워한다. MBK에서 스페셜시츄에이션 부문의 전략을 총괄하는 것으로 알려진 A부회장은 MBK파트너스의 공동 대표업무집행자(주식회사의 대표이사 격)를 맡고 있다. 대표업무집행자로서 바이아웃 펀드가 추진하고 있는 고려아연에 대한 적대적 M&A 관련 사항 등 사내에 있는 모든 정보를 사실상 확인하고 통제할 수 있지 않으냐는 의구심이다. NDA에 서명한 또 다른 인물인 C파트너는 주된 활동지역이 홍콩으로 MBK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이름을 올렸다.

고려아연이 MBK 측에 제공한 여러 자료 중 핵심은 112페이지에 달하는 프로젝트 트로이카 자료로 알려졌다. 해당 자료에는 핵심기술의 종류와 내용, 역량을 비롯해 기업가치와 각종 밸류에이션 평가 내용 등 미공개정보와 기밀 정보가 상당수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고려아연은 MBK가 영풍과 적대적 M&A 논의 등 경영권 탈취 협의를 6월 이전 시작했을 경우 법적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오정민 한경닷컴 기자 bloom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