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탄핵소추안 폐기 이후의 과제
의결정족수 부족으로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폐기됐지만 향후 정국은 더욱 격랑 속으로 빠져들어 갈 것이 분명하다. 더불어민주당은 탄핵안이 가결될 때까지 무한 반복해 추진하겠다는 강경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 탄핵 찬반 세력 간의 대립으로 극심한 사회갈등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번 비상계엄 선포는 위헌·위법적 조치임이 명백하다. 비상계엄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가 발생하고 경찰력만으로는 극복될 수 없어 군병력을 동원하는 국가긴급권인데 헌법상 발동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 엄중한 법적·정치적 책임 추궁이 불가피하지만 정치사회적 혼란과 피해를 최소화해야 하고 낡은 정치 체제를 일신하는 전화위복의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첫째, 탄핵소추에 준하는 대통령의 실질적 직무 배제와 함께 야당과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임기 단축 로드맵을 이른 시일 내에 제시해야 한다. 이미 국무총리와 집권당 중심으로 사태 수습과 국정 운영을 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으나 대내외적 불확실성을 해소할 수 있도록 보다 가시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탄핵 찬반을 둘러싼 폭력 유혈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치안질서 유지를 최우선 목표로 해야 한다.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를 통해 보여줬듯 헌법과 법치주의가 정상 작동하는 국가가 돼야 한다. 자유로운 정치적 의사 표시는 보장되지만 물리력으로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관철하려는 시도는 어떤 경우에도 용납해선 안 된다.

둘째, 내란죄 등 비상계엄 관련 수사는 법과 원칙에 따라 한 점 의혹 없이 신속히 진행돼야 한다. 검찰 특별수사본부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긴급체포해 속도를 내고 있지만 대통령을 포함해 그 누구도 수사와 처벌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 검찰과 경찰,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가 각각 수사에 착수했으나 군검찰이 파견된 검찰 특수본으로 통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문재인 정부 검찰개혁의 문제점이 현실화하는 상황인데 대통령도 수사 대상이 될 수 있고 군이 관련된 내란죄를 경찰이 이중으로 수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검찰과 경찰 간의 효과적인 역할 분담을 상호 협의해 사태의 진상을 밝혀내야 할 것이다.

셋째, 낡은 정치 체제를 개혁할 수 있는 개헌 논의에 착수해야 한다.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비판이 많았지만 제22대 국회는 절대다수 야당의 폭주로 인한 국정 마비 사태에 제동을 걸 아무런 제도적 장치가 없음을 확인시켜줬다. 존 로크는 “입법부의 권한은 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신탁적 권한일 뿐 입법부 활동이 그들에게 위임된 책임에 반하는 경우 입법권자를 변경하거나 그 권한을 박탈할 최고 권력은 여전히 국민에게 있다”고 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가장 두려워한 것도 ‘권리 보장 없는 민주주의’, 즉 ‘다수의 폭정’이다. 대통령 중임제와 권력 분산, 국회해산권, 사법부 독립과 책임을 강화하는 인사제도, 사전적 위헌심사제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논의할 필요가 있다.

샤를 드골 전 프랑스 대통령은 “국가는 어제의 유산과 오늘의 이익과 내일의 희망을 동시에 책임지는 존재”라고 했다. 우리나라는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크고 천연자원이 없는 나라다. 수출로 먹고살아야 하고 첨단산업 생산 능력이 국력을 결정한다. “강자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되지만 약자는 강요된 일을 인내해야 한다”는 투키디데스의 말을 국제 정세가 요동치게 될 이 시대에 특별히 기억해야 한다. 국가의 독립은 절대적이지 않다. 우리의 미래는 국민의 선택에 달려 있지만 분명한 것은 무능한 정부와 분열된 정치를 갖는다면 우리는 망한다는 사실이다.

비상계엄 사태는 대한민국 엘리트의 최정점에 있다는 서울대 법대의 실패, 우리 교육과 리더십의 실패를 보여줬다. 낡고 무능한 법조인 정치, 운동권 정치를 청산하고 모든 것이 불타 없어진 폐허 위에서 정치와 사회를 재건축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다. 국가의 역할은 국민 삶의 질을 개선하고 균등한 기회를 바탕으로 공정한 경쟁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다. 폭풍이 몰아칠 때 버텨내는 힘이 국력이다. 인간은 우연과 필멸의 한계 속에서도 새로 시작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윈스턴 처칠은 말한다. “좋은 위기를 헛되이 보내지 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