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국 불안에 따른 소비 침체 우려가 커지면서 유통업계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 6일 서울의 한 백화점이 한산한 모습이다.  임형택 기자
정국 불안에 따른 소비 침체 우려가 커지면서 유통업계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 6일 서울의 한 백화점이 한산한 모습이다. 임형택 기자
“가뜩이나 소비 침체로 어려워 연말만 바라보고 있었는데…. 정국 불안 장기화로 매출에 큰 타격을 입지 않을까 우려됩니다.”(국내 A백화점 임원)

비상계엄 사태와 대통령 탄핵 정국으로 ‘연말 특수’를 노리던 유통·식품업계가 초비상 상황이다. 불안정한 정세 속에서는 소비자들이 씀씀이를 줄이는 게 보통이다. 유통업계는 사태가 장기화해 최대 성수기인 연말 장사가 직격탄을 맞을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8일 업계에 따르면 백화점, 대형마트, 편의점, e커머스 등 주요 유통업체는 비상계엄 사태 이후 매일 긴급회의를 열어 소비 동향을 점검하고 있다. 내수 위축으로 고전 중인 백화점과 대형마트의 우려가 특히 크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 10월 백화점과 대형마트 매출은 각각 1년 전보다 2.6%, 3.4% 감소했다. 작년부터 이어진 고물가로 소비심리가 위축된 데다 이상고온까지 겹쳐 객단가가 높은 패션 상품 등이 잘 팔리지 않아서다. 업체들이 연말 대대적 할인을 통해 ‘매출 올리기’에 사활을 건 배경이다.

하지만 정국이 불안해지면서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태 당시와 같은 극심한 소비 침체가 되풀이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6년 10월 102를 기록한 소비자심리지수는 박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12월에는 94.1로 떨어졌다. 소비자심리지수가 100보다 높으면 경제 상황에 대한 소비자의 기대심리가 과거 평균보다 낙관적이고, 100보다 낮으면 비관적이란 뜻이다.

외국인 관광객 매출 비중이 높은 지역의 점포와 여행사들도 긴장하고 있다. 대규모 시위가 이어지면 관광객 방문 감소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영국 정부는 최근 한국에 있는 자국민에게 “광화문과 대통령실(삼각지), 국회(여의도) 일대에서 시위가 예상된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여행업계 관계자는 “기존 예약 취소뿐 아니라 한국에 대한 신규 여행 수요가 줄어드는 것도 걱정되는 점”이라며 “외교부가 해외 정부에 국내 상황이 안정적이라는 서한을 보내긴 했지만, 탄핵 정세가 길어지면 누가 한국에 오려고 하겠느냐”고 했다.

식품업계는 원·달러 환율 상승 여파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직후인 지난 3일 밤 원·달러 환율은 약 2년 만의 최고치(1442원)를 찍은 후 1420원 안팎을 넘나들고 있다. 밀가루, 옥수수, 팜유, 치즈, 커피 원두 등 각종 원재료를 수입하는 식품업체 입장에선 그만큼 원가 부담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업계에선 정치적 혼란과 원화 약세가 이어지면 수입 원자재를 사용해 생산하는 제품의 판매 가격 조정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