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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어가는 피자처럼…협상도 타이밍이다 [하태헌의 법정 밖 이야기]
'이기려다 다 잃는다.' 협상 테이블에서 흔히 발생하는 실수다. 대부분의 실패 원인은 '과욕'이었다. 조금 더 가져가려다 모든 것을 잃는 경우를 수없이 목격했다.

변호사의 일상이 곧 협상이다. 수임료 협상에서부터 의뢰인·상대방과의 조율, 재판부 설득까지 모든 과정이 협상이다. 하버드 로스쿨에서도 '협상론'이 가장 인기 있는 강의 중 하나다. 하지만 현장에선 의외로 많은 법조인과 기업인들이 협상의 기본을 놓치고 있다.

협상의 핵심은 '전략적 양보'다. 덜 중요한 것을 포기하고 더 중요한 것을 얻어내는 과정이다. 상대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어떠한 부분이 약점인지를 빨리 파악하여 먼저 칼자루를 잡고, 쌍방 모두에게 득이 되거나, 최소한 우리가 손해를 보지 않는 결과를 얻어내야만 한다. 마치 바둑이나 체스처럼 상대의 다음 수를 예측하고, 그에 맞춰 현재의 수를 두어야 한다. 상대방의 제안을 받아들일지, 수정 제안할지도 정확히 계산해야 한다.

게임이론이 말하는 '최적의 협상 시점'


게임이론의 대가 아리엘 루빈스타인 뉴욕대 교수의 '루빈스타인 협상모형'은 협상의 본질을 정확히 짚어낸다. 협상 참가자들이 서로 번갈아 자신들의 제안을 하고 참가자 모두가 동의할 때 협상이 종결되는 형식의 게임을 말한다. 다만 협상이 길어질수록 참가자 모두에게 돌아가는 이익은 점점 줄어드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 경우 상대방 주장을 받아들임으로써 감수해야 하는 손해와 이를 거절하고 협상이 길어짐으로써 발생하는 손해를 잘 비교하여 두 협상자 모두에게 가장 유리한 최적의 시기에 최적의 결과를 얻어내야 한다.

이는 '피자 나누기' 게임으로 설명된다. 1시에 집을 나가야 하는 두 사람 갑,을이 12시 30분에 피자를 받는다. 갑이 먼저 피자를 어떤 비율로 나눌지 제안하고, 을이 동의하지 않으면 10분 후인 12시40분 을이 자신이 원하는 비율을 다시 제안하며, 을의 제안에 갑이 동의하지 않을 경우 10분 후인 12시50분 갑이 다시 자신이 원하는 비율을 제안하기로 한다. 그 제안으로도 협상이 성사되지 않아 1시가 되면 갑과 을은 모두 피자를 먹지 못하고 집을 나가야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피자는 점점 식어 맛이 없어지므로 12시30분에 피자를 먹을 때 효용을 100이라고 하면 10분이 지날 때마다 효용이 30씩 줄어들어 12시40분에는 70, 12시50분에는 40이 된다고 가정한다. 이때 갑은 최초 어떠한 비율을 제안하여야 갑과 을 모두를 만족시키는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

두 사람 모두 완벽하게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한다면 갑은 12시30분에 7대 3의 비율을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만 갑과 을 모두 최선의 효용을 얻을 수 있다. 이는 게임이론의 역진귀납법(Backward Induction)을 적용한 결과다. 즉 1시에 아무도 피자를 먹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을은 12시50분에 갑이 남은 효용 40에 가까운 피자를 가져가는 것에 동의할 것이고, 그렇다면 12시40분 을은 최소 40이 갑에게 돌아가게, 12시30분 갑은 최소 30이 을에게 돌아가게 제안해야만 모두 동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욕이 부르는 '협상의 덫'


물론 현실에서 이러한 일이 벌어졌을 때 가장 이상적인 결과로 협상이 종결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이러한 지식이나 감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협상은 그 결과가 매우 다를 수밖에 없다. 서로 유리한 결과만을 가져가려고 자신에게만 너무 유리한 조건을 주장하면 상대방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고, 그렇다고 상대방에게 유리한 조건을 먼저 제시하면 시작부터 협상에서 지고 들어가는 것이므로 그 사이에서 최적의 결과를 찾아내야만 한다.

그런데 협상이 깨지는 가장 결정적 원인은 결국 욕심이다. '적정선'에서 양보하고 만족해야 하는데 조금만 더를 원하는 무리한 욕심이 결국 모두에게 손해를 가져오는 상황을 초래한다. 위 피자 사례를 들자면 갑, 을 모두 상대방이 수용할 수 없는 조건을 제시하여 결국 아무도 피자를 먹지 못하고 집을 나가게 되는 상황을 맞게 되는 것이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소설 '사람에게는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한가'는 과욕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한 가난한 농부가 아침 일찍부터 해가 질 때까지 걸어서 돌아오는 범위 안의 땅을 헐값에 주겠다는 제안을 받는다. 농부는 조금이라도 더 많은 땅을 얻고자 하는 욕심에 너무 멀리까지 나갔다가 시간에 맞춰 돌아오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달리고서는, 결국 출발점으로 돌아와 피를 토하고 죽어버린다. 그 농부는 결국 딱 한 평도 안 되는 땅에 묻혔다.

어릴 적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하던 풍선 크게 불기 시합의 한 장면도 떠오른다. 풍선을 크게 불수록 푸짐한 상품을 받을 수 있지만, 어느 선에서 멈추지 못하고 조금만 더 하고 욕심을 내면서 숨을 내지르다 보면 어느 순간 풍선은 빵 터져버리고, 1등은커녕 아무런 상도 받지 못한다.

성공적 협상의 조건


결국 성공적인 협상의 열쇠는 '적정선'을 찾는 것이다.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유리한 결과를 가져가는 것이 협상의 기본이기는 하나, 이는 어디까지나 협상이 성립되었을 것을 전제로 한다. 강대강 대치나 무리한 요구는 협상 자체를 무산시킨다.

서로의 주장을 굽히지 않으며 협상하다가 더 원수가 되기 일쑤다. 상대를 이해하고, 합리적 제안을 주고받으며, 적절한 타협점을 찾아가는 '협상의 지혜'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더 가져가려다 모두 잃는' 우를 범하지 않으려면, 협상은 제로섬 게임이 아닌 윈윈 게임이 되어야 한다.

식어가는 피자처럼…협상도 타이밍이다 [하태헌의 법정 밖 이야기]
하태헌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 서울대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병원에서 전문의 과정을 수료한 후 공중보건의사로 근무 중 사법시험에 합격하였으며, 판사로 임관하여 대법원 재판연구관(부장판사), 서울고등법원 고법판사 등 법원 주요 요직을 거쳤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로스쿨(LL.M)에서 미국회사법을 공부하였고, 의료인 출신이면서 부장판사 경력을 가진 국내 유일의 변호사로서, 의료인과 법관 출신으로서의 전문성을 살려 법무법인 세종에서 주요 민형사 송무, 기업분쟁, 금융분쟁, 가상자산, 제약바이오 사건 등을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