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얼죽아’ 사랑…일제 강점기 때도 있었다 [서평]
2023년 2월 프랑스 통신사 AFP가 한국인의 커피 문화 중 하나인 ‘얼죽아’를 ‘Eoljukah’라는 영문으로 집중 조명을 한 적이 있다. ‘얼죽아’는 ‘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준말로, 날씨에 개의치 않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만을 마시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한겨울 맹추위에 추워서 얼어 죽을지언정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포기하지 않고, 아침에는 늘 커피와 함께 하루를 시작하는 한국인의 커피 문화는 유별나다. 시장 조사기관에 따르면 2023년 한국의 1인당 커피 소비량은 405잔에 이른다. 세계 평균 152잔의 2.6배에 달하는 수치며, 아시아에서는 1위다. 거리에는 한 집 건너 한 집씩 커피 전문점이 성업 중이다.

한국은 언제부터 커피의 나라가 됐을까? <커피 이토록 역사적인 음료>는 등단 시인이자 커피 아키비스트인 저자가 구한말부터 현재까지 커피가 한국에 도입되고 국민 생활 속에 자리 잡는 과정을 보여주는 책이다. 그는 역사적 자료를 바탕으로 커피가 어떻게 한국인이 가장 즐기는 음료가 됐는지 알려준다.

구한말까지 가장 대중적인 음료는 따뜻하고 구수한 숭늉이었다. 저자는 숭늉에 익숙했던 한국인들에게 커피가 받아들여지는 과정을 이야기로 풀어낸다. 많은 사람이 커피를 처음 마신 사람이 고종이라고 알고 있지만, 고종은 커피 애호가로 유명할 뿐이다. 커피는 1800년대 서양 선교사들에 의해 들여왔고, 1884년 기록에 의하면 이미 고위 관료들과 궁중 밖에서 낯선 음료가 아니었다.

일제 강점기부터 커피는 본격적으로 국민의 삶에 스며들게 됐다. 커피는 가장 힙한 문화의 상징이 됐고, 유행에 민감했던 모던 보이와 모던 걸들은 커피를 마시는 게 일상이 됐다. 당시 다방에서도 아이스커피는 가장 인기 있는 메뉴였다. 한국인의 ‘얼죽아’ 사랑은 꽤 깊은 역사가 있다는 것이다.

해방 이후에는 인스턴트커피가 대중화됐다. 한국에 들어온 미군의 전투식량에는 인스턴트커피가 들어있었다. 이 커피가 대량으로 유통되면서 많은 사람이 커피를 즐겼다. 이와 함께 다방이 증가해 일종의 사랑방 역할을 했다.

저자는 동서식품의 인스턴트커피가 한국 사회를 바꾼 제품이라고 말한다. 다방에서 마시던 커피를 집과 회사를 비롯한 모든 곳에서 마실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커피에 대한 벽이 완전히 사라져, 모든 사람이 저렴하고 쉽게 커피를 마실 수 있게 됐다, 여기에 커피 자판기가 더해지면서 커피는 국민 음료 반열에 올라섰다.

1990년대 이후 경제 수준이 높아지면서 커피 프랜차이즈가 생기고 스타벅스가 상륙하면서 커피 문화는 더욱 발전해 갔다. 스타벅스는 한국에 세계에서 네 번째로 많은 매장을 가지고 있다. 커피만이 아닌 공간과 문화를 파는 스타벅스의 전략은 국내 커피 전문점의 기준이 됐다.

커피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마치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주인공처럼 한국 근현대사의 중요 순간들에는 항상 커피가 함께 있었음을 알게 된다. 이 책을 따라가다 보면 한국인의 커피 사랑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최종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