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은 연간 약 3000만 명의 외국인이 찾는 동남아의 관광 대국이다. 수도 방콕의 12월은 그 중 최대 성수기. 우기가 지나 제법 선선하고 건조한 바람이 부는 초가을 날씨에 연말연시를 보내려는 사람들로 연일 늦은 밤까지 축제 분위기다.
방콕 첫 아트페어 '액세스 방콕'이 12월 4~7일 아이콘시암에서 열렸다.
방콕 첫 아트페어 '액세스 방콕'이 12월 4~7일 아이콘시암에서 열렸다.
태국 첫 아트페어 '액세스 방콕'이 지난 4일부터 7일까지 방콕 아이콘시암에서 열렸다.
태국 첫 아트페어 '액세스 방콕'이 지난 4일부터 7일까지 방콕 아이콘시암에서 열렸다.
지난 4일 방콕 짜오프라야강 중심에 있는 대형 쇼핑몰 아이콘시암에는 '액세스 방콕'이라는 이름의 아트페어 광고가 곳곳에 크게 걸렸다. 아이콘시암은 75만㎡ 크기의 초호화 쇼핑몰로 투자비만 2조원이 넘는 방콕의 랜드마크 중 하나다. 높은 층고에 방콕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8층 피나클홀에 이날 30개 갤러리가 부스를 차리고 VIP 관람객들을 맞았다. 333갤러리, 노바컨템퍼러리, 시티시티갤러리 등 9개 방콕 갤러리, 대만 타이페이 아르테민, 말레이시아 A+ 웍스오브아트 등이 자리를 잡았다. 조현화랑, 백아트, 옵스쿠라 등 한국에서 건너간 12개 갤러리도 부스를 채웠다.
방콕 첫 아트페어 '액세스 방콕'이 12월 4~7일 아이콘시암에서 열렸다. AML 제공.
방콕 첫 아트페어 '액세스 방콕'이 12월 4~7일 아이콘시암에서 열렸다. AML 제공.
AML과 예술경영지원센터가 공동 주최한 태국 첫 아트페어 '액세스 방콕'. AML 제공
AML과 예술경영지원센터가 공동 주최한 태국 첫 아트페어 '액세스 방콕'. AML 제공
태국 사상 첫 아트페어, 한국이 수출

액세스 방콕은 방콕에서 열리는 첫 국제아트페어이자 한국 정부와 기획자가 주최했다는 점에서 현지 언론과 미술계에 큰 화제를 모았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경영지원센터가 공모한 '국내아트페어 해외 개최 지원 프로그램'에 당선된 회사는 아트미츠라이프(AML). 이미림·조윤영 공동대표가 만든 아트페어 기획사는 그 동안 '더프리뷰성수' '부산커넥티드' 등 을 통해 신진, 중견 갤러리와 작가를 미술시장에 선보이는 역할을 해왔다. 정부는 이번 아트페어 수출에 3억원의 예산을 지원했다.
태국 첫 아트페어 '액세스 방콕'이 지난 4일부터 7일까지 방콕 아이콘시암에서 열렸다. VIP공개 전날인 3일 밤까지 설치 작업이 계속됐다. Bora Kim
태국 첫 아트페어 '액세스 방콕'이 지난 4일부터 7일까지 방콕 아이콘시암에서 열렸다. VIP공개 전날인 3일 밤까지 설치 작업이 계속됐다. Bora Kim
아트페어 경험이 전무한 도시에 행사를 수출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한국화랑협회 주최의 키아프(KIAF)에서 전시 설치를 해온 전문 회사 준아트 등이 현지에 급파됐다. 갤러리 선정 등 콘텐츠 뿐만 아니라 행사에 사용한 가벽과 조명 등 하드웨어까지 통째로 수출한 셈이다. 이미림 AML 공동대표는 "한달 전쯤부터 방콕에서 생활하며 현지 인력과 소통하고 각종 장비 등을 배로 운송해오는 등의 과정이 있었다"고 했다.
태국 첫 아트페어 '액세스 방콕'이 지난 4일부터 7일까지 방콕 아이콘시암에서 열렸다.  LA와 서울에 갤러리를 둔 백아트의 주미림 작가 전시 공간. Bora Kim
태국 첫 아트페어 '액세스 방콕'이 지난 4일부터 7일까지 방콕 아이콘시암에서 열렸다. LA와 서울에 갤러리를 둔 백아트의 주미림 작가 전시 공간. Bora Kim
태국 첫 아트페어 '액세스 방콕'에 참여한 조현화랑 부스. 이배 작가 작품은 태국과 한국 컬렉터 등에게 모두 팔렸다. 조현화랑은 이배, 정광호, 강강훈 작가 작품 등을 선보였다. Bora Kim
태국 첫 아트페어 '액세스 방콕'에 참여한 조현화랑 부스. 이배 작가 작품은 태국과 한국 컬렉터 등에게 모두 팔렸다. 조현화랑은 이배, 정광호, 강강훈 작가 작품 등을 선보였다. Bora Kim
"12월엔 마이애미 대신 방콕으로"

4일 개막부터 7일 폐막 때까지 나흘간 나타샤 시드하르타(인도네시아), 알란 라우(홍콩), 사크차이 마나웡사쿨(태국) 등 대형 컬렉터들과 미술계 인사들이 다수 현장을 찾았다. 한국의 유력 컬렉터들도 찾았다. 같은 기간 미국 마이애미에선 '아트바젤 마이애미'가 열리고 있었지만 "마이애미는 거리상 너무 멀고, 컬렉터들이 선호하는 그림도 아시아 갤러리들에겐 장벽이 높다"는 게 미술계의 이야기다.
방콕 첫 아트페어 '액세스 방콕'이 12월 4~7일 아이콘시암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조윤영 이미림 AML 공동대표, 마리사 CP그룹 특별고문, 박용민 주태국한국대사, 송보영 아투 대표 등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AML 제공
방콕 첫 아트페어 '액세스 방콕'이 12월 4~7일 아이콘시암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조윤영 이미림 AML 공동대표, 마리사 CP그룹 특별고문, 박용민 주태국한국대사, 송보영 아투 대표 등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AML 제공
방콕 첫 아트페어 '액세스 방콕'이 12월 4~7일 아이콘시암에서 열렸다.  공간 등 비용을 후원한 마리사 CP그룹 고문은 페어장을 여러 번 찾았다. AML제공
방콕 첫 아트페어 '액세스 방콕'이 12월 4~7일 아이콘시암에서 열렸다. 공간 등 비용을 후원한 마리사 CP그룹 고문은 페어장을 여러 번 찾았다. AML제공
첫 행사를 성대하게 치른 데는 숨은 조력자들도 있었다. 유명 갤러리스트이자 온라인 미술품 거래 플랫폼을 운영하는 송보영 아투(ARTUE) 대표는 VIP 초청을 주도하고, 온라인 뷰잉룸 등을 함께 운영하며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태국 최대 기업이자 시가총액 200조원의 CP그룹 회장 부인인 마리사(한국명 강수형) 특별고문은 아트페어를 여러 차례 방문해 자리를 빛냈다. 마리사 고문은 "한국의 아트페어 노하우로 첫 행사를 이렇게 멋지게 치를 수 있었다"며 "한국과 태국의 문화 교류의 장이 된 것 같아 뿌듯하다"고 했다.

첫 페어 성과는 실적으로도 나타났다. 조현화랑은 출품한 이배 작가의 작품을 모두 판매했는데, 그 중 두 점은 태국 컬렉터에게 돌아갔다. 태국의 와린랩 갤러리는 첫날 7점을 판매했고, 아이웨이웨이의 작품을 내세운 탕컨템퍼러리도 3점의 작품을 팔았다. 그외 다수의 작품이 500~2000만원대에 거래됐다.
방콕 첫 아트페어 '액세스 방콕'이 12월 4~7일 아이콘시암에서 열렸다.
방콕 첫 아트페어 '액세스 방콕'이 12월 4~7일 아이콘시암에서 열렸다.
방콕 첫 아트페어 '액세스 방콕'이 12월 4~7일 아이콘시암에서 열렸다.
방콕 첫 아트페어 '액세스 방콕'이 12월 4~7일 아이콘시암에서 열렸다.
방콕이 아시아 미술 중심지 될까

리크리트 트리바니자, 코라크릿 아룬논나차이 등 전 세계 현대미술계가 주목하는 대형 작가를 다수 보유한 태국에 아트페어가 전무했던 이유는 분명하다. 태국은 미술품 거래세가 17.7%에 달한다. 한국은 없다. 복잡한 통관 절차도 걸림돌이었다. 작품 가격의 200%를 보증금 형식으로 선지급해야 미술품을 들여올 수 있어 대형 아트페어 관계자들도 선뜻 진입하지 못했다.
방콕 첫 아트페어 '액세스 방콕'이 12월 4~7일 아이콘시암에서 열렸다.
방콕 첫 아트페어 '액세스 방콕'이 12월 4~7일 아이콘시암에서 열렸다.
분위기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달라졌다. 태국 정부는 지난해 9월 한국콘텐츠진흥원격인 '국가소프트파워전략위원회'를 설립해 당시 세타 타위신 총리가 위원장을 맡고 집권당 수장인 패통탄 친나왓이 부위원장을 맡아 실무를 진행했다. 음악, 미술, 스포츠, 관광 등에서 연간 150조원의 수익을 낸다는 목표로 올해 초 미술품 거래세를 폐지하는 법안이 의회를 통과해 실행을 앞두고 있다.

탁신 친나왓 전 총리의 딸인 37세의 여성 패통탄은 지난 9월 총리로서 공식 임기를 시작하며 이 전략에 더 힘이 실리고 있다. 이번 액세스 방콕 아트페어에도 보증금 관세 등의 한시적 인하 혜택을 줬다. 말레이시아 갤러리 A+ 웍스오브아트의 하리즈 라오프 갤러리 매니저는 "동남아시아 갤러리들을 연결하는 문화의 장이 앞으로도 계속 열리길 기대한다"며 "한국의 갤러리들과 컬렉터들과 접점을 넓혀갈 수 있어 의미있게 생각한다"고 했다.

방콕=김보라 기자

[인터뷰]
AML의 이미림(왼쪽), 조윤영 공동대표.
AML의 이미림(왼쪽), 조윤영 공동대표.
"태국 미술계에 던진 작은 돌,
한국과 동남아 작가들 연결되길 바란다"


홍익대 건축학과 출신의 이미림 대표, 홍익대 판화과 출신의 조윤영 대표. 둘은 각각 미술계에서 일하다 '아트부산' 페어의 전시 팀장을 거치며 새로운 페어의 꿈을 꿨다. 2021년 아트미츠라이프(AML)를 만들어 기존 아트페어에서 한번도 본 적 없던 갤러리와 신진 작가를 모아 새로운 개념의 아트페어를 만들었다. 신한카드가 후원하는 '더프리뷰성수'다.
최저의 부스 참가 비용만 받고 MZ세대를 위한, '누구나 접근 가능한 아트페어'를 만들어온 이들은 올해 태국에 첫 아트페어 '액세스 방콕'의 닻을 올렸다.

Q. AML은 더프리뷰 성수, 부산 커넥티드와 같이 젊은 감각의 아트페어를 기획, 주관했다. 이번 액세스 방콕을 기획하면서 가장 주안점을 뒀던 점은 무언인가?

-여러 아트페어를 통해 신진 갤러리, 신진 작가들과 관계 맺으며 그들의 고민과 니즈를 가까이에서 들을 기회가 많았다. 많은 자본으로 운영되는 기획사가 아니라 더욱 공감할 수 있는 고민들이었다. 신진 갤러리들이 큰 금전적 리스크 없이 해외 페어를 경험할 장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동시에 새로운 시장에 한국의 동시대 미술을 두루두루 소개하고 싶어 조현화랑, 갤러리2와 같은 메이저 화랑도 참여시켰다. 한 장소에 모임으로써 시너지를 내는 아트페어의 힘을 믿고 있다.
방콕 첫 아트페어 '액세스 방콕'이 12월 4~7일 아이콘시암에서 열렸다.
방콕 첫 아트페어 '액세스 방콕'이 12월 4~7일 아이콘시암에서 열렸다.
Q. 한국의 아트페어 기획과 기술력을 해외에 선보이는 첫 사례가 됐다. 이 사례가 추후 태국 아트페어 씬이나 각국 교류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라 보는지.

-태국은 좋은 작가군과 비엔날레를 가지고도 그동안 시장 인프라가 받쳐주지 못했는데 이번 행사를 계기로 많은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본다. 태국 정부에서도 미술품 세금을 낮추거나 없애는 방안에 대한 논의를 곧 시작할 움직임이 보인다. 태국은 한국인과 한국 문화에 우호적이라 시장이 성장하면 한국 미술에 대한 호기심이나 수요도 늘어날 것이다. 태국에서 한국 페어에 출품하거나 지점을 내는 갤러리들이 하나둘씩 생기고 있는데 작가 교류 등으로 연결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Q. 현지 예술 관계자 및 언론, 일반 관람객들의 반응은?

-일단 페어의 물리적 환경에 너무 만족해한다. 글로벌 스탠다드의 전시 공간을 선보이고 싶은 욕심에 무리해서 한국에서 가벽, 조명을 운송해오고 기술자들을 현지에 데려와 부스를 시공했다. 현지 갤러리들의 만족도가 특히 더 높았다. 꼭 필요했지만 누구도 나서지 않았던 일을 누군가가 총대 매고 대신해 줘 감사해하는 분위기이다. 짧은 준비기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갤러리가 모여 다양한 작업을 선보이고, 완성도 높은 페어가 나온데 대해 놀라는 분위기다.

Q. 아트페어는 콘텐츠만큼이나 판매 실적도 중요한데.

-현지 갤러리들의 판매 실적이 월등히 좋았다. Warin Lab 같은 경우 첫날 7점을 팔고 Tang Contemporary도 3점을 판매했다. 이배 작업 2점이 태국 컬렉터에게 판매되었다. CDA도 첫날 현지 컬렉터에게 4점을 판매하는 등의 성과가 있었다. 판매가가 높은 작업 보다 소장하기 좋은 작품 위주로 갤러리들이 출품하다 보니 전체적인 판매액은 높지 않았지만 한국 작업들에 대해서도 꾸준히 문의가 들어왔다.

방콕=김보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