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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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계엄 사태' 여파로 상장지수펀드(ETF) 수익률 상위권에서 국내 투자 상품이 자취를 감췄다. 미국 증시가 활황세를 보이는 가운데 비상계엄 선포와 탄핵 정국 전환으로 정치 리스크가 더해지자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투자자들이 급증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증권가에선 국내 정치 리스크가 장기화할 경우 시장의 수급 공백이 커질 것으로 전망한다.

1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3일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와 해제 직후인 4일부터 9일까지 4거래일 동안 5% 이상 수익률을 기록한 상위 73개 ETF 중 58개가 해외 투자 상품인 것으로 집계됐다. 나머지 15개 ETF마저도 코스피와 코스닥지수 하락에 베팅하는 인버스 상품인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두 자릿수 손실률을 기록한 42개 ETF 명단에는 모두 국내 투자 상품이 이름을 올렸다. 'TIGER 200에너지화학레버리지'가 마이너스(-) 17.33%로 손실률이 가장 컸고 △KODEX 2차전지산업레버리지(-16.88%) △RISE 창업투자회사(-16.51%) △PLUS K방산(-15.57%) △TIGER 우주방산(-15.37%) △TIGER BBIG레버리지(-15.3%)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이외에도 △RISE AI&로봇(-13.2%) △TIGER 200건설(-13.13%) △TIGER 200금융(-11.69%) △HANARO Fn K-게임 △KODEX 증권(-10.07%) 등 전방위 업종 ETF 수익률이 부진했다.

국내 투자 ETF가 수익률 상위권에 단 하나도 이름을 올리지 못한 것은 계엄발 정치 리스크가 시장에 전방위 악재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 3일 밤 비상계엄을 선포했고 6시간 만에 국회 해제 요구안이 가결됐다. 이후 탄핵 정국으로 이어졌으며 지난 7일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표결에 부쳐졌지만 정족수 미달로 폐기됐다. 국내 증시에 드리운 정치 리스크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커진 상태다.

박석중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금융시장의 충격 강도와 자산별 영향엔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연말까지 변동성 장세가 불가피할 것"이라며 "코스피는 정치 리스크가 잔존하는 한 추세적 반등이 지연될 수밖에 없는 환경에 직면했다"고 분석했다.

반면 ETF 수익률 상위권엔 대부분 미국 투자 상품이 차지했다. 'ACE 미국빅테크TO7 Plus레버리지(합성)'가 13.05%로 가장 높았으며 'PLUS 미국테크TOP10레버리지(합성)'가 12.35%로 뒤를 이었다. 이밖에 △ACE 테슬라밸류체인액티브(10.7%) △KODEX 미국메타버스나스닥액티브(10.15%) △PLUS 글로벌AI(9.77%) 등 미 증시를 견인하고 있는 테크주 위주의 투자 상품이 양호한 수익률을 올렸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자국 우선주의 정책과 미 기업들의 실적 성장성에 힘입어 미 증시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와중 가뜩이나 부진한 국내 증시에 정치 리스크까지 더해지면서 투자자들이 이탈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서학개미(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국내 투자자)들의 미국 주식 보관액은 지난 5일 기준 1097억3282만달러(약 157조5873억원)로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지난해 말(680억2349달러)과 비교하면 61.3% 급증한 수준이다. 특히 계엄 사태가 빚어진 지난 3일 이후 2거래일 만에 26억8547만달러(약 3조8483억원) 증가했다.

반면 외국인뿐 아니라 개인투자자도 국내 주식시장을 떠나고 있다.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은 지난 4일부터 9일까지 4거래일간 7046억원어치를 팔고 떠났다. 같은 기간 개인투자자는 외국인의 두 배 규모인 1조4539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현재 국내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자산 배분 전략을 소개할 때 현금성 자산 비중을 높이고, 나머지는 주로 해외 시장으로 돌리라고 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국내의 정치적 상황이 진정되기까지 시간이 필요한 만큼, 현금 비중을 높게 가져가라는 조언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 프라이빗뱅킹(PB)센터 지점장은 "국내 주식형 펀드나, 우량 국내 주식을 가지고 있다면 섣부르게 매도하지 말라고 권하고 있다"면서도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 측면에서 국내 주식이 저렴해졌지만, 섣부른 매수도 권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현금을 보유하라고 조언하는데, 그래도 투자를 원하는 고객이 있다면 미국 자산 편입을 권하고 있다"며 "지금까지 미국 주식이 많이 오르긴 했지만, 내년 초까지도 미 주식 전망에 대해선 긍정적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고정삼 한경닷컴 기자 js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