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삼성행복대상’을 받은 김청자 성악가가 지난 3일 서울 용산 한 음식점에서 아프리카 말라위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한 계기를 설명하고 있다.  임형택 기자
‘2024 삼성행복대상’을 받은 김청자 성악가가 지난 3일 서울 용산 한 음식점에서 아프리카 말라위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한 계기를 설명하고 있다. 임형택 기자
“저에게는 세 개의 고향이 있습니다. 한국은 육신의 고향, 독일은 정신의 고향, 말라위는 마음의 고향이죠.”

65세. 대부분의 사람이 은퇴할 나이에 성악가 김청자 씨는 아프리카로 떠났다. 행선지는 아프리카 최빈국 말라위. 황혼기에 척박한 타국으로 떠난 이유는 간단했다. ‘받은 만큼 돌려주기 위해서’였다.

지난 2일 ‘2024 삼성행복대상’을 받은 김씨는 유럽에서 활동한 ‘한국인 최초’ 프리마돈나다. 1970년 스위스 베른에서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오페라 ‘티토 황제의 자비’에 출연해 한국인으로는 처음 유럽 오페라 무대에 섰다. 독일 카를스루에 국립오페라단원을 비롯해 스위스 이탈리아 등에서 16년간 성악가로 이름을 날렸다.

그는 뛰어난 음악가면서 동시에 헌신적인 봉사가다. 2009년 은퇴를 선언한 뒤 아프리카 말라위로 떠나 10여 년간 우물을 짓고, 학교를 세우고, 아이들에게 음악과 미술을 가르치며 살았다.

김씨가 봉사의 길을 걷게 된 이유는 6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44년 강원 춘천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적부터 음악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품었다. 그는 3일 “부모님으로부터 할아버지께서 판소리를 하셨다는 말을 들었다”며 “직접 뵌 적은 없지만 재능을 이어받은 것 같다”고 했다.

고등학생 시절 기회가 찾아왔다. 독일에서 온 신부가 대학에 진학할 사정이 안 되는 학생들을 독일의 직업학교로 유학을 보내는 사업에 참여하게 된 것. 독일에서 음악을 공부하고 싶었던 고등학생 김씨는 ‘지금이 아니면 독일에 영영 갈 수 없다’는 생각에 비행기에 올랐다.

먼 타국에서 간호조무사로 일하던 김씨는 은인을 만났다. 그가 일하던 병실에 입원했던 한 여성이 그의 음악적 재능을 알아봐 후원자가 되길 자청했다. 직접 레슨비를 손에 쥐여주고 성악 교수들을 불러 김청자의 목소리를 몸소 알린 후원자 덕에 김씨는 레오폴트 모차르트 음악원에서 피아노와 성악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때 저의 재능을 알아본 분이 계신 건 정말 기적 같은 일입니다. 그때 받은 은혜가 제가 봉사활동을 하게 된 이유입니다. 받은 만큼 돌려주고 싶었어요.”

2010년 은퇴와 동시에 전원주택을 팔아 마련한 2억원으로 ‘김청자 아프리카 사랑회’를 꾸렸다. 음악을 가르치며 재능이 보이는 아이들에게는 한국 유학길까지 터줬다. 그렇게 13년을 말라위 아이들을 자기 친자식처럼 돌보며 음악을 통해 희망을 심어주는 데 바친 김씨는 암을 진단받고 2년 전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오래된 차들이 시꺼먼 매연을 뿜어대고, 쓰레기 처리 시설이 부족해 그냥 다 불태우는 환경에 지내면서 암이 생긴 것 같다”며 “하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힘줘 말했다.

병마는 ‘영광의 상처’에 불과하다는 그의 표정은 무척이나 편안해 보였다.

구교범 기자 gugyobeo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