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중진국 함정과 전략적 사고
최근 글로벌사우스(주로 남반구에 있는 신흥국과 개도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오랜 기간 대부분 개발도상국이 중진국이나 선진국으로 성장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이유가 무엇인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저개발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한 나라로 한국을 꼽는다. 우리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개발도상국을 다녀 보면 한국의 경제 발전에 기여한 선배 세대에 존경심이 든다. 그런데 아마도 우리처럼 비약적인 경제 성장을 하고 있는 또 다른 나라를 묻는다면 그건 중국이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는 왜 경제 발전을 이루지 못하는 것일까?

저개발국가 또는 개발도상국이 경제 발전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중진국의 함정’에 빠진 경우와 ‘유리천장’에 막힌 경우로 구분된다. 중진국 함정이란 대내외 우호적인 환경으로 어느 정도의 경제 성장을 이루지만, 내재적인 성장동력을 잃어버리는 데서 오는 결과다. 굳이 원인을 찾는다면 해당 국가의 내부적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구조조정을 하지 못한 채 정치·경제·사회에 만연한 부패와 불투명성 때문에 지속적인 성장에 한계를 보인다. 여러 동남아시아와 남미 국가가 이에 해당한다.

반면 국제사회에 존재하는 유리천장에 막혀 성장에 어려움을 겪는 나라도 있다. 중국이 대표적인 예다.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는 서방 선진국이 이른바 ‘사다리 걷어차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2015년 선진국들이 추격해 오는 개발도상국에 전략적으로 그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며 추격을 뿌리치기 위해 국제질서를 활용한다고 주장했다. 넓은 의미에서 보면 1990년대 말 아시아에 불어닥친 외환위기 그리고 지금 이뤄지고 있는 대중국 전략 경쟁이 이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중진국 함정과는 달리 유리천장은 내부적인 요인이라기보다 외부 요인이다.

이 두 가지 현상에 대해 우리는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 중진국 함정을 경험하고 있는 나라에 한국의 성장 과정을 그대로 배우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과거 팽창주의 시대에 선진국이 취한 식민지 정책처럼 개발도상국의 저렴한 생산비용을 일방적으로 수탈하는 형태의 협력은 바람직하지 못하고 유효하지도 않다. 진정하고 성숙한 파트너로서 그들의 입장에서 필요한 것을 함께 고민하며 진심 어린 협력이 필요하다. 냉전 시대에는 흑백논리로 우리 편과 적이 구분됐지만, 지금은 사안마다 우리 편과 적이 달라지는 상황이다. 누가 우리 편인지 또는 적인지조차 구분하기 어려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진심을 다하는 자세가 더욱 중요한 시기다.

중국처럼 다른 나라들이 유리천장에 막혀 어려움을 겪을 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우리도 선진국의 일원으로서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여러 규제와 통제로 그들을 막아야 하나 아니면 그들의 성장에 기여하면서 그 성장이 우리에게 가져다줄 수 있는 기회요인에 주목해야 하나. 우리가 사다리를 걷어차는 데 동참하면 그들은 올라오지 못할까? 중국은 조금 다른 상황인 것 같다. 인구 규모에 따른 경제 규모가 매우 크고 이미 상당한 경쟁력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서방 선진국이 단일대오로 견제하고 있지만, 성장 속도를 늦출 수는 있어도 성장 자체를 막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우리는 지금 바라는 대로 볼 것이 아니라 실체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 전기자동차의 대명사가 테슬라에서 비야디(BYD)로 옮겨가고 있다. 모토로라에서 아이폰과 갤럭시로 옮겨온 휴대폰은 오포와 비보 등 가성비 높은 중국 제품으로 이동하고 있다. 품질과 디자인에서 부족함 없는 저렴한 중국산 가전제품이 한국은 물론 세계 시장에 쏟아지듯 공급되고 있다. 이런 환경 속에서 낡은 이념을 들어 혐중문화를 확산하고 꼭꼭 걸어 잠그는 것이 바람직할까?

빠른 경제 성장을 경험한 우리다. 경제 성장에 목말라하는 나라에 진정한 파트너가 되고, 커다란 모멘텀으로 다가오는 중국의 부상을 인정하며 상생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하는 시기다. 유연하면서도 전략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세계사에서 착취하거나 문을 걸어 잠가서 성공한 사례는 거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