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희영이 지난 11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안니카 드리븐 바이 게인브리지에서 티샷하는 모습.  AFP연합뉴스
양희영이 지난 11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안니카 드리븐 바이 게인브리지에서 티샷하는 모습. AFP연합뉴스
“지난달 CME그룹 투어챔피언십이 끝나자마자 바로 수첩에 앞으로 보강해야 할 점을 적었어요. 퍼터가 아쉬웠고 근육을 좀 더 만들자 등을 비롯해 지금도 계속 리스트를 채워가고 있어요. 오랫동안 부상 없이 도전하는 모습으로 팬들에게 보답하고 싶습니다.”

9일 전화로 만난 양희영(35)은 “그 어느 때보다 길고 아쉬움이 가득한 시즌을 보냈다”며 이렇게 말했다. 생애 첫 메이저 우승, 파리올림픽에서의 메달 경쟁, 시즌 최종전에서의 톱10 등 굵직한 기록을 남긴 그의 눈은 벌써 내년 시즌을 향해 있었다.

○ 메이저 우승으로 한국 자존심 지켜

양희영은 한국 여자골프를 대표하는 베테랑이다. 열 살 때 골프를 시작해 만 20세가 되기 전 유럽여자골프투어(LET)에서 3승을 거두며 ‘남반구의 미셸 위’로 불렸다. 2008년 데뷔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는 우여곡절이 적지 않았다. 2019년까지 4승을 거뒀지만 우승 가뭄이 길어져 후원사와의 재계약에 실패했다. 2022년 팔꿈치 부상으로 은퇴까지 고민한 그는 지난해 CME그룹 투어챔피언십에서 자신이 직접 그려 넣은 ‘스마일’ 모자를 쓰고 우승을 거뒀다.

최고 상금 대회에서 우승했지만 35세 여성 골퍼에게 선뜻 손을 내미는 후원사가 없었다. 그는 “그래도 실망하지 말자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매일 해야 할 일, 그날의 라운드에 집중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난 6월 양희영은 메이저대회 KPMG여자PGA챔피언십에서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우승했다. 자신의 생애 첫 메이저 우승이자 올 시즌 한국 선수의 첫 승이었다. 그는 “특별히 기술적 문제가 없는데 스코어로 이어지지 않는 답답한 흐름이 상반기 내내 이어져 은퇴를 잠깐 고민했다”며 “그래도 메이저 우승 이후 상승세를 탔다”고 했다.

그에게 2024년은 아쉬움도 많이 남은 시즌이다. 양희영은 “22개 대회에서 일곱 번이나 커트 탈락한 것이 가장 아쉽다”며 “시즌 최종전이 끝나자마자 수첩에 ‘꾸준함’을 기록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1타 차이로 메달을 놓친 파리올림픽도 못내 아쉬운 대회다. 그는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 4위를 차지해 아깝게 메달을 놓친 바 있다. KPMG여자PGA챔피언십으로 출전권을 극적으로 따낸 파리올림픽이 그에게 더욱 특별했던 이유다. 양희영은 “정말 잘하고 싶었는데 마지막 날 퍼즐 한 조각이 부족했다”며 “응원해준 국민들에게 기쁨을 드리지 못해 너무 아쉬웠다”고 털어놨다.

○ 키움증권 손잡고 ‘스마일 모자’ 작별

‘메이저 퀸’이라는 타이틀이 생겼지만 양희영은 “달라진 것은 없다”고 말했다. “대회 첫 홀 티잉 구역에서 소개하는 문구에 ‘메이저 우승자’가 더해지긴 했지만 매일 부족한 점을 체크하고 보완하기 위해 연습장에 나가는 일상은 그대로”라고 설명했다. ‘일상의 힘’을 지키겠다는 굳은 심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반가운 변화도 있다. 파리올림픽을 앞둔 지난 7월, 키움증권이 양희영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의 가치를 알아준 후원사의 지원에 힘입어 시즌 최종전을 공동 8위로 기분 좋게 마무리했다. 양희영은 “스마일이 귀엽긴 했지만 키움증권 이름이 새겨진 모자는 저에게 남다른 든든함과 힘을 준다”며 “모자를 쓸 때마다 잘해야겠다는 열정이 샘솟는다”고 강조했다.

17년째 미국에서 활동 중인 그는 “더 많은 한국 동생과 LPGA투어를 뛰고 싶다”며 “LPGA투어는 도전할 만한 무대”라고 강조했다. “한국과 다른 잔디, 매주 이어지는 장거리 이동에 적응하기가 첫 1~2년은 많이 힘들 거예요. 그래도 큰 무대에 동생들이 용감하게 도전할 수 있도록 저 역시 제 자리에서 오랫동안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하루하루 저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 앞으로 나아가며 동생들과 함께 경쟁할 날을 기다릴게요.”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