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불확실성이 극대화되면서 산업계에도 후폭풍이 몰려오고 있다. 방산, 원전 등 정부와 기업이 ‘원팀’을 이뤄야 성과를 낼 수 있는 산업은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폴란드 정부와 K2 전차의 수출 협상을 진행 중인 현대로템만 해도 상대 측이 ‘특수 상황’을 이유로 결정을 미루면서 곤란에 처한 것으로 알려졌다.
"K방산 가격 협상력 떨어져"…불확실성에 숨죽인 산업계
‘탄핵 정국’에 가장 민감한 분야는 방산업계다. 9일 방산업계에 따르면 이달 내 시작할 예정이던 차세대 한국형 구축함(KDDX) 사업 입찰은 내년으로 연기될 것으로 관측된다. 정부는 총 7조8000억원을 투입해 2026년부터 새로운 구축함을 순차적으로 도입할 계획이다. 방위사업추진위원회는 올해 안에 입찰 방식 등을 결정해 HD현대중공업, 한화오션 등 사업 수행 업체를 선정할 예정이었지만, 방추위원장인 국방부 장관 자리가 공석이 되면서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한국과 무기 구입을 논의하려던 키르기스스탄공화국 대통령은 경남 사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방문 일정을 미뤘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방산 수주는 정부와 기업이 발맞춰 상대방 정부를 설득하는 방식인데, 정부 공백이 길어진다면 타격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의 ‘큰 그림’이 필수인 석유화학과 철강 분야에서도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정책 공백으로 산업 재편을 위한 ‘골든타임’을 놓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나온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중국 저가 제품으로 인해 가격 경쟁력을 잃은 범용제품 생산 공장의 합병 유도, 석화분야 금융 및 세제 지원 등을 추진하고 있었다. 하지만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할 대통령실의 공백으로 관계부처 간 협의는 물론 법안 통과도 사실상 멈췄다.

철강업계가 정부에 요구한 저가 중국산 철강제품에 대한 반덤핑 조사 및 제재도 지연될 예정이다. 중국과의 외교 문제와 얽혀 있는 이슈여서 새로운 정부가 출범될 때까지 관련 논의가 ‘올스톱’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항공업계는 환율 급등 탓에 비상이 걸렸다. 항공사는 유류비와 정비비, 항공기 대여비 등의 대부분 비용을 달러로 지급하기 때문에 강달러가 지속되면 손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대한항공은 순외화부채가 3분기 기준 33억달러로, 환율이 10원 오르면 약 330억원의 외화평가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된다.

여행사에서는 연말 여행 취소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계엄령 이후 한국 여행에 대한 외국인의 불안감이 커지며 외국 여행사의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여행업계 관계자는 “사태가 장기화하면 내국인도 여행을 취소하는 분위기가 생길까 걱정된다”며 “여행이 소비 심리에 큰 영향을 받는 만큼 정국이 안정화되는 게 시급하다”고 말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 당시 소비자동향지수(CSI)는 10~12월 100 아래로 크게 주저앉았다가 탄핵이 법원에서 인용된 뒤인 2017년 4월 101.8로 다시 100을 넘어섰다.

성상훈/신정은 기자 up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