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투자자들의 ‘패닉 셀링’(공포 매도)에 국내 증시가 크게 휘청였다.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 직전에도 글로벌 수익률 꼴찌를 기록한 코스닥지수는 탄핵 불발이라는 악재까지 더해지자 5% 넘게 급락했다. 윤 대통령의 거취가 불명확해지고 정치권 혼란이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자 경제 정책의 동력이 크게 저하될 것이란 우려가 증시를 짓누르고 있다.

○하루 새 1조2000억원 팔아 치운 개미

코로나도 버틴 동학개미들…계엄 사태엔 1.2조 패닉셀
9일 코스닥지수는 5.19% 급락한 627.01에 거래를 마쳤다. 2020년 4월 후 4년8개월여 만의 최저치다. 코스피지수도 2.78% 하락한 2360.58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해 11월 후 1년1개월 만에 최저치를 경신했다.

개인투자자의 패닉셀이 지수를 끌어내렸다. 개인은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8890억원, 코스닥시장에서 3030억원 등 총 1조1920억원어치를 팔아치웠다. 이날 코스닥시장 상장 종목 1707개 중 하락 종목은 1553개(90.9%)에 달했다. 이 중 절반(785개)가량이 52주 신저가를 기록했다.

개인이 매도 물량을 쏟아낸 건 ‘단기 악재에 따른 지수 하락은 언젠가 회복된다’는 원칙이 이제 통하지 않을지 모른다는 판단 때문이다. 2020년 코로나19, 지난 8월 5일 ‘블랙 먼데이’ 사태 등 증시가 급락할 때마다 개인은 대규모 저가 매수에 나서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다. ‘악재는 영원하지 않고 증시는 결국 본질적 가치에 수렴한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해 내내 -20%대 수익률에 시달리며 지칠 대로 지친 개인은 ‘계엄령 선포’와 ‘탄핵 부결’이라는 예기치 못한 악재까지 맞닥뜨리자 미련 없이 국장을 떠나고 있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개인이 투매에 나서자 개인 투자 비중이 높은 코스닥지수가 더 많이 급락했다”며 “재무 건전성 측면에서 가장 취약한 고리인 코스닥시장을 먼저 이탈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정치적 불확실성이 극대화된 상황에서 금융투자소득세 폐지가 이번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개인의 투매를 자극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금 저가 매수에 들어가 내년에 수익을 내더라도 세금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당국의 소극적인 대응도 불만이다. 이날 정부는 10조원 규모의 증시안정펀드 대신 1000억원 규모의 밸류업펀드를 이번 주와 다음 주 집행하겠다고 밝혔다. 개인의 하루 투매 물량이 1조원을 넘긴 상황에서 영향력은 미미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전문가들 “매도할 타이밍 아니다”

전문가들은 “지금은 매도 실익이 없다”며 투매를 말리고 있지만 정작 개미는 미련 없이 국내 증시를 떠나는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정치적 불확실성이 사라지면서 투자자들이 정치와 증시를 분리해 바라보는 시기가 올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김태홍 그로쓰힐자산운용 대표는 “지금은 매도해서는 안 되는 구간”이라며 “‘트럼프 트레이드’가 마무리되고 중국 부양책이 추가로 나오면 최소 3개월 안에는 지금 지수보다 높게 팔 수 있다”고 말했다. 안정환 인터레이스자산운용 대표는 “코스피지수 2400선 이하는 명확히 너무 싼 구간”이라며 “지수를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 투자 전략이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개인 투매가 나와야 진짜 바닥’이라는 증시 격언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분석도 있다. 한 자산운용사 본부장은 “기업 체력(실적) 대비 주가가 싼 기업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계엄령 선포 이후 이날 외국인 투자자가 처음으로 순매수세를 기록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날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 1011억원어치, 코스닥시장에서 2049억원어치를 사들였다.

심성미/이시은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