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인공지능(AI) 반도체 선두 기업인 미국 엔비디아가 중국 정부의 반독점 조사를 받는다. 반도체 기술을 둘러싼 미·중 갈등이 심화하는 가운데 나온 중국의 보복 조치라는 평가가 제기된다.

9일 중국중앙TV(CCTV)에 따르면 중국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은 중화인민공화국 반독점법을 위반한 혐의로 엔비디아 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시장감독총국은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엔비디아의 멜라녹스 지분 인수와 관련해 중국 반독점법이 부과한 제한 조건을 위반한 사례가 확인돼 법에 따라 조사를 개시한다”고 밝혔다.

엔비디아는 2020년 데이터센터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이스라엘 반도체 기업 멜라녹스를 69억달러(약 8조5000억원)에 인수했다. 당시 중국 당국은 이 거래를 승인하면서 엔비디아가 중국 기업을 차별하지 않을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멜라녹스가 새로운 제품 정보를 엔비디아에 제공하기 전 90일 이내에 경쟁사들에도 공개하고, 멜라녹스 기술과 중국 반도체 제품 간 호환성을 보장할 것을 요구했다. 시장감독총국은 엔비디아가 이 같은 조건을 위반한 혐의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번 발표는 최근 들어 미·중 반도체 갈등이 격화하는 가운데 나왔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엔비디아에 대한 조사 착수를 “미국 정부의 강화된 반도체 제재에 대한 보복”으로 분석했다. 지난 2일 미국 정부는 AI 개발에 필수적인 고대역폭메모리(HBM)의 대(對)중국 수출을 통제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응해 중국은 다음 날 중국산 갈륨, 게르마늄 등 민간·군수 겸용 품목의 대미 수출을 금지했다. 이후 중국 정부의 영향을 받는 주요 산업 단체들은 미국산 반도체 제품의 안전성과 신뢰성을 문제 삼으며 구매 주의를 촉구하는 성명을 내놨다. 미국산 반도체 의존도를 낮추고 자립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드러내며 본격적인 대미 반격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중국 관영 영자지 글로벌타임스는 “미국의 제재는 위협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실제 효과는 영(0)에 가깝다”고 주장했다. 이번 발표 직후 엔비디아 주가는 개장 전 거래에서 2% 이상 하락했다.

임다연 기자 allo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