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수습 중인 것으로 보이는 소년의 팔에는 파스와 밴드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 소년의 작은 몸체 주변에는 온통 굉음을 내는 기계와 그 기계들이 뱉어내는 불똥이 난무한다. 시간이 흐르고, 지칠 대로 지친 소년의 손이 떨리기 시작한다. 그가 간신히 쥐고 있는 그라인더가 불안하게 흔들리지만, 소년은 감기는 눈을 주체하기 힘들다.

영화 ‘3학년 2학기’ 스틸컷.
영화 ‘3학년 2학기’ 스틸컷.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3관왕을 수상한 <3학년 2학기>는 직업고등학교를 다니는 ‘창우’가 3학년 2학기를 맞으며 겪는 인생 수난을 기록하는 영화다. 분명 이야기는 진로 선택을 앞둔 10대 소년의 여정을 중심으로 하고 있지만 영화는 좌충우돌 성장영화도, 상큼발랄한 청춘영화도 아니다. 대신 <3학년 2학기>는 어린 소년의 눈으로 바라본 한국 사회의 병폐와 취약점을 신랄하게 기록하는 노동자의 비극이자, 르포르타주다.

직업계고등학교 3학년인 창우(유이하)는 담임의 추천에 따라 취업보조금과 대학 입학, 그리고 병역특례까지 받을 수 있다는 꿈 같은 중소기업에 지원한다. 처음으로 방문한 ‘꿈의 직장’에는 창우와 친구들을 친절하게 맞아주는 주임까지 있다.

창우는 늘 생활비에 쪼들리는 엄마를 생각해 바로 현장실습을 시작한다. 그리고 실습의 첫날, 창우의 지옥살이가 시작된다. 그의 사수 송 대리는 일이 익숙하지 않은 창우와 그의 단짝 우재에게 인신공격을 퍼붓기 시작하고, 안전하다는 공장은 경계조차 없는 난간과 보호 장갑 하나 주어지지 않은 작업으로 아이들이 하루하루를 실습의 성과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 버텨야 하는 곳이다.

<3학년 2학기>는 직업계고 아이들이 학교와 기업의 공생 관계 사이에서 얼마나 위험천만한 상황에 놓이는지, 그리고 위험에 처한 아이들이 궁극적으로 희생자가 됐을 때 사회가 얼마나 무자비하고 무력한지에 대해 극도의 리얼리즘적 접근을 통해 전한다.

수능 시즌이 되면 전국을 도배하는 응원 플래카드의 문구, “이 나라의 미래는 당신입니다”를 보며 창우와 그의 직업계고 친구들은 늘 부러움과 소외감을 동시에 토로한다. 악의 없이 이어져 오는 뉴스와 응원 문구들은 오랫동안 이들이 사회에 나가기도 전부터 암묵적인 소외와 차별의 대상으로 각인시켜 왔는지도 모른다.

영화는 창우의 미래에 대해 아무런 힌트를 주지 않지만, 이 사회의 미래가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희미한 단서는 남기는 듯하다. 그것은 이 나라의 미래는 (수능을 보는) 당신만이 아니라 노동 현장에 있는, 국적과 나이, 학력과 성별과 무관한 이 세상 모든 노동자라는 사실이다.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