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끼바위쿠르르: 거꾸로 사는 돌’ 전시 전경. 미륵불상을 본떠 제작한 설치작업 ‘거꾸로 사는 돌’이 전시장 가운데 놓여 있다.  아트선재센터 제공
‘이끼바위쿠르르: 거꾸로 사는 돌’ 전시 전경. 미륵불상을 본떠 제작한 설치작업 ‘거꾸로 사는 돌’이 전시장 가운데 놓여 있다. 아트선재센터 제공
예술가는 예민한 존재다. 사회 변화에 남들보다 앞서 반응하고, 이를 작품에 반영하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서울 소격동 아트선재센터는 최전선에 있다. 1998년 설립 이후 인간과 비인간, 공동체의 와해 등 시대적 현안을 다루는 데 앞장서며 국내외 미술계로부터 주목받고 있다.

한 해의 마무리를 앞둔 지금 이곳에선 생태 위기를 지목한 두 개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17개 작가 그룹이 참여한 ‘언두 플래닛’과 이끼바위쿠르르의 개인전 ‘거꾸로 사는 돌’이다. 김선정 아트선재센터 예술감독은 “기후 문제에 대한 긴 시간의 고민을 마무리하는 동시에 새로운 시작을 예고하는 전시”라고 설명했다.

○ ‘인간 이전의 지구’를 상상한 작가들

‘언두 플래닛’은 그동안 아트선재센터가 진행한 기후 관련 프로젝트를 갈무리한 전시다. 2012년 시작한 ‘리얼 디엠지(DMZ·비무장지대) 프로젝트’, 2021년부터 참여한 예술기관 연합 ‘월드웨더네트워크’의 활동 등을 집대성했다. 양혜규, 임동식 등 국내 작가뿐 아니라 덴마크 브라질 등 12개국 출신 작가들이 전시에 참여하게 된 배경이다.

새하얀 페인트가 칠해진 미술관 내부 1층에서 전시는 시작한다. 인위적인 ‘화이트큐브’ 전시장의 전형으로, 이번 전시에선 ‘인간의 공간’을 담당한다. 자연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인사를 건네는 모습의 회화 ‘고개 숙인 꽃에 대한 인사’가 눈에 띈다. 1970년대부터 숲과 들에서 활동해온 임동식 작가가 본인의 모습을 그려 넣었다.

전시장 2층에 다다르면 인간의 존재감은 옅어진다. 지진으로 폐쇄된 호텔의 자갈, 시베리아 철새, 곰팡이 등 비인간적 대상이 주인공이다. 계단을 오를수록 인간이 존재하기 전의 지구를 찾아가는 효과를 연출한 것으로 해석된다. 전시 제목인 ‘언두(Undo) 플래닛’은 우리말로 ‘행성을 원상태로 하다’로 풀이된다.

○ 강림한 미륵불 ‘쓰레기와 춤을’

마지막 전시장인 3층에선 이끼바위쿠르르의 국내 첫 개인전 ‘거꾸로 사는 돌’이 열리고 있다. 이곳은 인간과 자연이 모두 사라진 먼 미래의 일을 다룬다. 전시장 곳곳을 채운 것은 전국 각지에 방치된 미륵 석탑의 형상. 미륵은 석가모니가 열반에 들고 56억7000만 년 뒤 강림할 것이라고 여겨지는 미래의 부처다.

이끼바위쿠르르는 조지은·고결·김중원 3인으로 구성된 작가 그룹이다. 주변 환경에 따라 모습을 바꾸는 이끼처럼 작업하겠다는 뜻이 담겼다. 농부와 해녀, 학자 등 다양한 인간 군상이 자연과 관계 맺는 방식을 탐구한 작업으로 국제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이들은 생태에 뒤덮인 채 우두커니 선 미륵 불상에 주목했다. 수십억 년 뒤 미륵은 무엇을 만날까. 5분가량 이어지는 영상작업 ‘쓰레기와 춤을’이 그리는 미래는 허름하다. 폐허가 된 도시에서 쓰레기들은 불협화음에 맞춰 율동한다. 먼 미래를 그렸다지만, 작가들이 촬영한 폐기물은 어디까지나 현실에 이미 존재하는 것이다. 조지은 작가는 “인간은 다 사라지고, 결국 쓰레기와 조우할 미륵의 모습을 상상했다”고 말했다. 두 전시 모두 내년 1월 26일까지.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