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잘 안 알려졌지만 국내 증시에선 깜짝 이벤트가 있었다. 외국인들이 주식 시장의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는 증권주를 11년 만에 가장 많이 사들인 것이다. 이를 포함해 밸류업 대표주로 꼽히는 금융주를 대거 매수했다. 이날 외국인이 유가증권시장에서 모처럼 5000억원어치 주식을 순매수했는데, 이 중 3000억원이 금융주였다. 10개월 만의 최대 규모다.

갑자기 막장에 볕이 드는 게 이런 기분일까. 드디어 밸류업 정책이 빛을 보는 것일까. 수개월째 국내 주식을 지긋지긋하게 팔아치우던 외국인들이 마침내 돌아오는 듯했다. 하지만 그 기대감은 장이 끝나고 7시간 뒤 허망하게 사라졌다. 하필 그날 밤, 난데없는 ‘비상계엄’ 소식이 전 세계 투자 시장을 덮쳤다. 이후 외국인들은 증권주를 포함한 금융주를 연일 ‘분노의 패대기’치고 있다. 마치 다시는 한국을 쳐다보지도 않을 것처럼.

금융 선진국 다시 멀어졌지만

‘코리아 디스카운트’. 이 지긋지긋한 단어를 없애보겠다고 우리 기업과 금융회사들은, 대통령과 장관들은 수십 년 동안 얼마나 많은 해외 국가를 방문하고 얼마나 많은 투자자를 만났나. 얼마나 많은 정책을 손봤던가. 그렇게 전진한 끝에 금융 선진국의 자리가 눈앞에 다가왔다. 올해 한국 채권 시장이 세계 3대 채권지수인 세계국채지수(WGBI)에 편입되는 역사적 성과도 거뒀다. 금융 선진국의 마지막 관문이라는 MSCI 선진국지수 편입도 시간문제인 듯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수십 년의 노력을 하룻밤에 날려버렸다. 포브스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결국 옳았다”는 냉소를 보냈고, 로이터는 “왜 한국 증시가 유독 부진한지를 상기시켜줬다”고 했다. 하다 하다 태국의 민간 환전소가 “원화는 불안하다”며 환전을 거부하는 황당한 현실을 우리는 보고 있다. 2006년 군사 쿠데타가 벌어져 아직도 그 여파에 시달리는 태국이 말이다.

또 뚜벅뚜벅 다가설 것

자존심이 상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 당분간 한국 증시를 대하는 전 세계 투자자의 냉랭한 시선은 감수할 수밖에. 그 대신 우리는 길고 지난한 노력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할일이 많다.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납입한도 확대나 토큰증권(ST) 제도화 등의 자본시장 활성화 정책을 서두르고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공매도 재개에 따른 후속 보완책도 마련해야 한다. 반도체 특별법 등 지지부진한 주력 산업 지원 방안도 하루빨리 시행해야 한다. 무엇보다 우리 기업들이, 우리 시장이 더 이상 흔들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글로벌 투자 전문가들이 한국 증시에서 가장 우려하는 대목은 사실 당장의 정치 리스크가 아니다. 수출 둔화와 내수 부진, 그리고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에 부닥칠 관세 문제다. 극복 노력과 대응 수준에 따라 이 혼돈은 어쩌면 우리의 회복력을 보여주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데스크 칼럼] 다시 시작하는 수밖에
마지막으로 희망 섞인 첨언을 하자면 의외로 한국 사회와 한국 증시의 복원력을 믿는 글로벌 투자 전문가가 적지 않다. 글로벌 리서치 회사 캐피털이코노미스트의 아태 담당 수석연구원인 토머스 매슈스가 투자자들에게 보낸 코멘트가 인상적이다. “탄핵 정국이 한국에서 처음도 아니지 않나. 한국 증시는 탄핵 때 성적이 꽤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