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케이스스터디 - 러쉬코리아
'재생'으로 담은 '아름다움'...소비자와 지구를 지키다
'재생'으로 담은 '아름다움'...소비자와 지구를 지키다
러쉬(LUSH)는 전 세계 50여 개국에서 900여 개 매장을 운영하며 배스 밤, 샴푸 바, 마사지 바 등 생활용품과 화장품을 판매하는 기업이다. 한국은 러쉬의 네 번째 진출 국가다. 서울 강남역에 위치한 러쉬 매장에 들어가니 코스메틱 제품의 휘황찬란한 색감과 독특한 향기가 정신을 혼미하게 했다. 직원들의 활력 넘치는 환대와 각 고객의 취향에 맞춘 친절한 추천 등 사용자 맞춤 서비스도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단순히 화려함과 친절함만이 러쉬의 본질은 아니다. 러쉬 홈페이지에는 자연에서 얻은 신선한 재료와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 정직한 재료를 사용해 모든 제품을 손으로, 되도록 무포장으로 만든다는 원칙이 적혀 있다.

러쉬 제품은 동물에 해를 가하지 않는 100% 베지테리언이며, 약 95%는 식물성 원료로 만든 비건(vegan), 약 5%는 벌꿀, 비즈 왁스(밀랍)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 불필요한 포장을 없애고 다양한 ‘네이키드(naked)’ 제품을 고수한다. 영국의 작은 항구도시 풀(Poole)에 사는 6명의 창업자들은 친환경 코스메틱 제품을 만들고자 하는 의지를 바탕으로 러쉬를 설립했다. 한국의 러쉬코리아도 이 같은 러쉬의 브랜드 철학을 계승하고 있다.

러쉬의 제2라운드 키워드, 재생

특히 러쉬는 자체 구매팀을 구성해 지속가능한 구매를 지속해왔다. 우선 엄격한 기준을 바탕으로 윤리적 공정 여부를 확인한다. 믿을 수 있는 생산자로부터 직거래를 원칙으로 하고, 동물실험을 배격한다. 코로나19 사태 직후인 지난 2022년 시작된 러쉬의 제 2라운드에는 여기에 재생(regeneration) 원칙을 추가했다.

재생의 의미는 단순히 복원(restoration)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재탄생을 함의하고 있다. 자연재해가 있거나, 무분별한 개발 등으로 인간에 의해 파괴되었거나, 기후변화로 서식지가 사라지는 등 심각하게 훼손된 곳을 찾아 해당 지역의 자연보호, 탄소저감뿐 아니라 멸종위기 동물, 인근 지역사회 공동체까지 회복하는 근본적 변화를 추구한다.

그중 하나가 오랑우탄 비누다. 인도네시아의 수마트라섬에서 팜나무 플렌테이션 확장으로 인한 벌목과 농지 개발로 멸종위기에 몰린 오랑우탄 개체수가 1만4600마리였다. 러쉬는 이 숫자에 상징성을 부여해 1만4600개의 오랑우탄 비누를 만들어 판매해 기금을 모았다. 이 기금은 수마트라 오랑우탄 소사이어티(SOS)라는 NGO 단체에 전달되어 팜나무로 훼손된 땅을 사고, 원주민에게 재생 농업을 알리고, 재생 농업을 실천하는 데 쓰인다. 수마트라의 원주민 공동체에게는 파촐리라는 허브의 일종을 재생 농업으로 재배하게 해 이를 러쉬가 구매, 러쉬에서 인기리에 판매되는 로드오프미스롤 제품 원료로 쓴다.

재생 농업이란 화학비료나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고 유기농, 섞어심기 등 자연 생태대로 농작물을 육성하는 방법이다. 이를 원주민에게 알려 원주민들이 재배하면 러쉬가 재구매하는 방식으로 원주민 공동체를 금전적으로 지원한다. 숲을 복원해 오랑우탄을 돌아오게 함으로써 생물다양성을 지키고, 지역민과 상생하며 공정무역을 진행하는 식이다. 호주에 큰 산불이 났을 때는 멸종위기인 코알라가 살 수 있는 삼림을 회복하기 위한 기금을 조성하려고 코알라 비누를 판매하기도 했다.

재생의 개념에는 생물다양성이 포함돼 있다. 러쉬는 특히 핵심 보호종에 대한 보호에 적극적이다. 핵심 보호종은 상위 포식자들이 포함된다. 육지동물로 치면 재규어·호랑이·표범, 해양동물로 치면 고래·상어·수달 등이다. 상위 포식자들이 사라지면 초식동물만 남아 풀이 사라지고, 가뭄이 오고, 사막화가 되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상위 포식자들을 자연 속으로 돌아가게 하는 야생 재건(rewilding) 프로그램도 최근 러쉬가 주목하는 개념이다.

야생 재건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러쉬는 브라질 아마존 카야포 지역에서 재규어를 살리면서도 지역공동체를 살리는 활동을 하고 있다. 카야포 지역은 통카 빈이라고 하는 달콤한 향기를 내는 콩류가 나는 곳이다. 이곳에서 재규어를 살리기 위해 감시 카메라를 두고 재규어의 개체수를 관리하면서도 재규어가 사냥을 떠났을 때 원주민들이 통카 빈을 주워 오면 이를 러쉬가 구매해 제품에 사용한다. 통카 빈은 러쉬의 베스트셀러인 슬리피 레인지에 쓰인다. 통카 빈은 숙면을 취하기 좋도록 달콤한 향으로 심신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재생 농업은 탄소흡수에도 영향을 미친다. 연간 브라질 통카 빈은 13억 톤, 페루 브라질너트는 6000만 톤, 수마트라의 파촐리는 900만 톤 등을 흡수한다. 이차생장(secondary growth) 방식으로 농사를 짓는 페루의 농가에서 얻는 브라질너트 오일은 로즈아르간 보디 컨디셔너에 들어간다.

최근 자사의 탄소배출량만큼 탄소흡수 크레디트를 구매해 탄소중립을 이루는 카본 오프셋(탄소 외부 상쇄)이라는 말이 자주 쓰인다. 오프셋과는 별개 개념으로 이미 밸류체인 안에서 탄소를 흡수하는 방식을 카본 인셋(탄소 내부 상쇄)이라고 한다. 카본 인셋은 밸류체인 안에서 탄소배출량보다 탄소흡수량이 더 많아짐을 뜻한다. 러쉬는 이미 카본 인셋팅을 달성한 기업이다.
'재생'으로 담은 '아름다움'...소비자와 지구를 지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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틴케이스를 코르크로 바꾼 이유

플라스틱 저감 역시 러쉬가 오래전부터 진행해온 노력 중 하나다. 포장재를 최대한 줄이려고 하지만, 제품 특성상 불가피하게 플라스틱 용기가 필요하다. 러쉬는 자체 플라스틱 공병수거 시스템을 구축해 플라스틱을 재활용한다. 1년 전부터는 재활용이 까다로워 외면받던 바다에서 발견된 플라스틱도 재활용하기 시작했다.

러쉬는 현재 일부 제품에 인도네시아 연안에서 수거한 플라스틱을 사용한다. 영국의 인증 기업으로부터 오션 플라스틱 재활용품을 사용했다는 표시를 인증받아 제품에 부착하고 있다. 인증 마크를 사용하는 이유는 오션 플라스틱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캠페인의 일환이다. 글로벌 러쉬, 그리고 러쉬코리아가 꾸준히 가져온 플라스틱에 대한 관심을 인정받아 러쉬코리아는 2024년 11월에 부산에서 개최된 유엔 플라스틱 협약 정부간 협상 장소에 초청받아 환경단체 및 NGO들과 플라스틱 반대 행진 및 사이드 이벤트에 참여하기도 했다.

최근 러쉬는 비누를 담는 알루미늄 틴케이스를 코르크 케이스로 바꿨다. 재생 의미를 더욱 살리기 위해서다. 예전에는 비닐을 줄이기 위해 여러 번 쓸 수 있도록 틴케이스를 사용했지만, 최근에는 나무를 회복하는 시간을 주고 다시 코르크를 채취하는 방식의 재생 코르크 케이스를 제공한다. 이렇게 코르크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이미 1.2kg에 해당하는 코르크 한 개를 만들며 발생하는 탄소배출량의 33배를 흡수해 탄소 포지티브를 실현하고 있다.

러쉬는 포르투갈에서 코르크를 가져올 때도 무동력 요트에 실어 가져오는 등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도록 신경 썼다. 포장재의 경우도 조금 남다르다. 인도 하층민 여성협동조합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 조달한 천 포장재, 독수리를 지키기 위해 독수리 경로에서 베어낸 침엽수를 종이로 만든 종이 포장재를 사용한다.

러쉬코리아는 한국에서 초신선 제품 일부를 직접 조달한다. 러쉬의 인기 상품인 페이스 및 보디 마스크 ‘마스크 오브 매그너민티’는 전남 함평에서 수확한 국산 팥으로 만든다. 이 역시 재생 의미를 담아 유기농이나 생태농업으로 엄격한 구매 원칙을 적용해 구입한다. 프레쉬 마스크 팩에 들어가는 블루베리도 자연 농법으로 기른 블루베리를 구매해 재생 농업을 육성하고 지역사회를 살린다는 취지를 살린다. 제품 품질 확보와 지역 상생을 위해 조금 비싸게 구매하더라도 제값을 주고 사는 공정무역을 지향한다.

이와 함께 한국에서도 플라스틱을 줄이기 위한 공병 수거 캠페인을 통해 약 20%대의 높은 회수율을 보이고 있다. 평균 7~9%에 불과한 일반 화장품의 회수율보다 높은 편이다. 회수된 플라스틱은 협력업체에 보내 재활용한다. 러쉬 제품의 휘황찬란한 색상과 달리 재활용에 편리하도록 플라스틱 용기는 검은색과 흰색을 고집하고 있다.

러쉬코리아는 직원의 다양성·형평성 및 포용성(DE&I) 측면에서도 앞서가는 기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2012년부터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던 중 2014 소치 동계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러시아가 반동성애법을 만들면서 러쉬가 글로벌 차원에서 대응하기 시작, 반동성애법에 반대하는 빌리브라는 제품을 만들었다. 밸런타인데이에 전 세계 러시아대사관에서 빌리브를 상징하는 핑크 삼각형을 선보이며 평화 시위를 했으며, 러쉬코리아도 이에 동참했다.

2015년부터는 러쉬코리아가 퀴어퍼레이드에 부스로 참여하면서 참여 규모를 더욱 키웠다. 2017년에는 직원들의 비혼식을 제도로 만들고, 결혼식 대신 비혼식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비혼식을 한 직원에게는 자녀 학자금 대신 반려동물 사료비 등을 지원한다. 대표적 여성 친화 기업이면서, 대표이사는 물론 C레벨에 여성 임원이 많은 기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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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더 러쉬스럽게 바꾸는 것이 꿈이죠”

[인터뷰] 박원정 러쉬코리아 에틱스 디렉터

- 러쉬에서 에틱스 디렉터의 역할은 무엇인가.

“에틱스 디렉터의 역할은 브랜드의 비전이나 소명의식, 제품에 담긴 철학(ethics)을 비즈니스 전반에 녹이는 것이다. 전 부서에 철학을 실천할 수 있게 가이드를 주고, 전사적으로 서포트하며, 캠페인도 진행한다. 에틱스팀이 하는 일은 구체적으로 5가지가 있다. 철학을 지키고(preserve), 공유하고(share), 일원화하고(align), 증진시키고(promote), 내재화(cultivate)한다. 어찌 보면 핵심가치를 지키는 수호자(에반젤리스트)이기도 하다. 에틱스팀은 대표이사 직속이며, 소수 정예 팀으로 만들어져 있다.”

- 러쉬는 윤리적 캠페인을 많이 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러쉬는 할인 프로모션, 증정 이벤트, 광고, 스타 마케팅 등 4가지가 없는 것이 철칙이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소통해야 할까? 브랜드의 비전과 철학을 어떻게 알릴 수 있을까? 이 마케팅을 대체할 도구가 필요하다. 그것이 러쉬의 캠페인이다. 러쉬의 캠페인은 일반 기업의 CSR이나 ESG 활동과는 조금 다르다. 러쉬 캠페인의 우선순위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시급하거나 러쉬가 돌볼 수밖에 없을 정도로 절박한 것을 우선으로 한다. 대기업이나 시민단체에서도 돕기 어려운 캠페인이 있다. 예를 들면 성소수자 인권이나 난민 인권, 동물실험 반대, 대체 실험 연구소 지원 농약을 쓰지 않고 자연의 순리로 돌아가는 재생 농업 등이다.”

- 직원들에게 기업가치를 내재화하기 위해 어떻게 알리고 있나.

“인사팀에서 운영하는 제품 트레이너가 있다. 각 제품의 특성 및 러쉬의 동물, 인권 캠페인 등 기업 이념에 대해 세세하게 전달하는 트레이닝이다. 이와 함께 차별의 말을 지양하는 등 리더십, 매니지먼트, 피드백 커뮤니케이션 등을 위한 소프트 스킬을 기르기 위해 특히 리더들에게 소프트 스킬 트레이닝을 이수하도록 한다. 비즈니스 안에서 비즈니스의 가치 내재화 방식은 톱다운되어야 한다고 본다. 러쉬코리아는 대표이사부터 시니어 매니지먼트까지 리더십 교육을 가장 많이 받는 회사 중 하나인데, 리더들은 모두 교육자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 비즈니스의 지속가능성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비즈니스가 지속가능하려면 일단 기업이 수익이 나야 한다. 러쉬코리아의 영순위는 좋은 제품이다. 우선 원재료와 부자재가 좋고, 고객이 필요로 하는 건강에 맞춘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고객의 진정한 웰빙 프로그램을 고려해 제품 경쟁력을 만든다. 여기에 지구에 사는 사람으로서 윤리적 소비, 공정무역 등의 가치를 더한다.”

- 러쉬는 브랜드와 행동이 결합된 것이 특징이다. 앞으로 포부는.

“러쉬코리아는 ’세상을 더 러쉬스럽게(Let's Leave the world LUSHER than we found it)’라는 브랜드 철학을 바탕으로 한다. 이 문구는 러쉬의 소명의식과 비전이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강력한 확신을 갖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와 함께 러쉬는 브랜드 행동주의를 지향한다. 기후 행동, 재생의 이야기를 하면서 액티비즘의 면모를 가지려 한다. 소비자들이 동물실험 반대 등에 서명하면서 그 내용에 대해 인지하고 작게나마 실천하게 하는, 이것이 브랜드 행동주의로서 할 수 있는 우리의 몫이다. 러쉬코리아는 탄소중립을 넘어 차별화된 탄소제거 모델 및 탄소흡수에 대한 다양한 사례를 선보이고, 그 과정에서 직원의 성장도 이루며 앞으로도 꾸준히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룰 것이다.”

구현화 기자 kuh@hankyung.com │ 사진 서범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