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미 오버비 전 미국상공회의소 아시아 담당 부회장. /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태미 오버비 전 미국상공회의소 아시아 담당 부회장. /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한국 국회가 내년 예산안을 통과시킨 것을 보고 무척 고무됐습니다.”

태미 오버비 전 미국상공회의소 아시아 담당 선임부회장은 10일(현지시간) 워싱턴DC 미국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한미재계회의 참석 후 한국경제신문과 만나 이같이 말했다.

오버비 전 부회장은 “예산안이 다소 축소되긴 했지만 그런 불만은 늘 있었던 일”이라며 “이것은 국회가 정상화되고 있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갑작스러운 비상계엄 사태 후 한국의 정치적 분열이 지속될 경우 한국 사회에 미칠 영향이 훨씬 더 클 수 있었다면서 그는 “예산안 통과는 매우 긍정적인 신호”라고 말했다. 그는 “윤 대통령의 내란 협의에 대한 상설 특검에 대해 209명의 의원들이 찬성한 것도 마찬가지로 긍정적”이라고 덧붙였다.

오버비 전 부회장은 비상계엄 후 탄핵 위기에 처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 “그는 현재 ‘이름 뿐인 대통령(PINO·President In Name Only)’”라고 평했다. 트럼프 지지자들이 비(非) 트럼프 성향의 공화당원들을 일컬어 ‘이름 뿐인 공화당원(RINO)’라고 조롱하는 것에 빗댄 표현이다.

그는 한미재계회의에 참가한 양국 기업인들이 “양국 관계의 미래에 대해 긍정적인 발언을 많이 했다”면서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오버비 전 부회장은 “비록 어려운 상황이지만 (이번 사태는) 한국 민주주의의 뿌리가 정말 깊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차기 정부에 대비하기 위한 방법에 관해 오버비 전 부회장은 “한국 기업이 얼마나 미국에 많이 투자하는지를 한눈에 보여주는 지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금까지와 달리 자금의 국적이 문제가 되는 만큼, 삼성·현대차·LG 등 각 기업의 로고 대신 태극기를 써서 투자 지역과 투자 규모를 묘사하면 훨씬 즉각적으로 트럼프 당선인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는 발상이다.

그는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을 트럼프 정부가 다시 손대려 하겠지만, 그 효과는 생각보다 크지 않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오버비 전 부회장은 “트럼프 1기 한미FTA 재협상의 결과로 한국의 자동차 시장은 개방된 상태고 미국차를 한국에 2만대까지 수출할 수 있게 됐지만, 한국인들이 미국차를 선택하지 않고 있다”면서 “한국의 도로상황이나 차량 이용 행태에 맞지 않는 차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상대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더라도 본질적으로 품질 경쟁력을 유지한다면 시장개방에 따른 영향력을 줄일 수 있다는 얘기다.

1988년 AIG 서울사무소에서 근무한 계기로 한국과 인연을 맺은 그는 1995년부터 2009년까지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대표를 맡았다. 이후 미국상공회의소 부회장을 거쳐 현재는 미국 글로벌 자문회사인 DGA 산하 올브라이트 스톤브릿지 그룹 선임 고문으로 일하고 있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