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남는 쌀을 의무적으로 매입하도록 해 ‘농망(農亡) 법’이라고 비판받았던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시행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양곡법 개정안에 필요한 자금도 내년 예산안에 반영되지 않아 제도가 시행되면 큰 혼란이 예상된다.

거부권 쓸 사람 없는데…양곡법 시행되나
11일 국회와 정부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주도로 통과한 양곡법 개정안은 지난 6일 정부에 이송됐다. 정부가 오는 21일까지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을 경우 법안은 공포 후 6개월이 지나면 시행된다.

양곡법 개정안은 쌀이 과잉 생산돼 쌀값이 떨어질 경우 정부가 남는 쌀을 매입해 가격을 부양하도록 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정부는 양곡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농가들이 다른 작물보다 농사짓기 편한 쌀농사에 몰려 쌀 공급 과잉 현상이 심화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 21대 국회에서 이같은 내용을 담은 양곡법 개정안을 통과시켰지만, 당시엔 윤석열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법안이 폐기됐다. 민주당이 22대 국회에서 다시 양곡법 개정안을 통과시키자 농림축산식품부가 “대통령께 거부권 행사를 건의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하지만 3일 비상계엄 사태 이후 거부권 행사가 쉽지 않다는 관측이 고개를 들고 있다.

국회가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의결하더라도 거부권 행사 여부는 불확실하다. 윤 대통령 직무가 정지될 경우 권한대행을 맡는 한덕수 국무총리가 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해 논란이 있어서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탄핵 소추됐을 당시 고건 국무총리가 사면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전례는 있다. 하지만 권한대행 체제에서는 소극적 권한 행사를 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어 실제 한 총리가 실제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은 불확실하다는 반론도 있다.

양곡법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정부의 재정 부담이 큰 폭으로 커질 전망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은 야당 안대로 양곡법이 개정·시행되면 ‘쌀 생산 쏠림’ 현상이 벌어져 한 해 1조2000억원 이상 재정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했다. 양곡법 개정안과 같은 날 국회서 통과된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농어업재해보험법 일부개정법률안(재해보험법 개정안) △농어업재해대책법 일부개정법률안(재해대책법 개정안)도 생산 쏠림 현상을 부추기고, 정부 재정 부담도 키울 수 있다. 농식품부는 이런 법 개정안에 따른 예산을 내년도 예산안에 반영하지 않았다.

이광식 기자 bume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