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시장에도 드리우기 시작한 '빅블러' 현상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알뜰폰을 판매하는 은행, 맥주를 만드는 치킨 회사,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제공하는 택배 유통사. 이렇게 서로 다른 산업이 융합하면서 경계가 흐려지는 사회적 현상을 ‘빅블러(big blur)’라고 한다. 4차 산업혁명 기술이 발달하고 플랫폼이라는 구조가 확대되면서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한 산업체 간 경계가 사라지기 시작했고, 과거에 생각했던 ‘내 밥그릇’이 더 이상 ‘나만의 밥그릇’이 아닌 세상이 펼쳐지고 있다.
부동산 시장에서는 일반적으로 주거용 부동산과 상업용 부동산을 구분하는 경향이 강하다. 많은 대학 부동산학과의 커리큘럼을 살펴보면 주거용과 상업용 부동산 과목을 분리하고 있다. 졸업 후 진로 선택에서도 주거용 부동산에 관련된 분야, 오피스 등 상업용 부동산에 관련된 분야로 나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부동산 시장에도 아파트로 대표되는 주거용 부동산과 빌딩으로 대표되는 상업용 부동산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아파트와 빌딩 시장에서 가격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거래 비중으로 본다면 몇천억원대 빌딩 거래가 상업용 부동산을 대표하겠지만, 거래 건수는 ‘50억원 미만의 중소형 상업용 빌딩’이 전체의 60~70%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빌딩보다 비싼 아파트’의 거래량도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분기당 200여 건에 불과했던 30억원 초과 아파트 거래량은 올해 2분기와 3분기 각각 580건과 700건을 기록했다. 분기당 500여 건에 불과한 50억원 미만 상업용 부동산 거래량을 훌쩍 뛰어넘은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부동산 투자자도 ‘고가 아파트’와 ‘꼬마빌딩’을 비교 선택지로 놓고 투자를 고민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자산 가격이 아니라 ‘임대료’라는 공간 가치 측면에서도 상업용 부동산과 주거용 부동산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최근 ‘집주인이 모건스탠리’라는 말이 부동산 시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외국계 자본이 과거에는 국내 오피스나 호텔 시장을 주력으로 투자해 왔다면 최근에는 새로운 먹거리로 주거용 부동산 임대시장에 진입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이런 투자 행태의 변화에는 다양한 요인이 있지만 그 근간에는 ‘이제 한국 부동산 시장에서도 주택 월세가 돈이 된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수도권 주택시장에서는 ‘월세의 반란’이라는 용어가 등장할 정도로 월세가 빠르게 올랐고, 투자자 입장에서는 수도권 주택 공급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주택 월세 시장이 안정적이면서도 성장성이 보이는 매력적 투자처로 인식되는 것이다.
부동산 시장에서 빅블러 현상이 심화하면서 지역별 부동산 가격에서도 특징적인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고가 주택지’의 입지가 강조되고, 전통적인 ‘상권’ 의미가 약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중소형 상업용 부동산의 가격과 미래 가치를 고민할 때 인근 주거지의 주택 가격을 비교 변수로 검토하다 보니 ‘비싼 아파트가 들어오는 지역=중소형 빌딩 가격도 높아질 지역’이라는 인식이 강해지고 있다. 반면 안정적인 월세를 담보한 ‘상권’의 중요성은 점점 약해지는 모습이다. 핵심 상권인 종로나 강남지역 빌딩의 거래 수요가 압구정이나 한남동에 비해 빠르게 줄어들고, 단위 면적당 거래 가격이 역전된 것도 이를 증명하고 있다.
전통적인 산업과 시장의 경계가 무너지고 시장에 대한 평가 기준도 변화하는 빅블러 시대. 전문가들은 이에 대응하는 자세로 유연함과 창의성을 꼽는다. 부동산업계 종사자들도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자세를 가지려는 노력이 중요한 시기다.
윤수민 농협은행
All100자문센터 부동산전문위원
부동산 시장에서는 일반적으로 주거용 부동산과 상업용 부동산을 구분하는 경향이 강하다. 많은 대학 부동산학과의 커리큘럼을 살펴보면 주거용과 상업용 부동산 과목을 분리하고 있다. 졸업 후 진로 선택에서도 주거용 부동산에 관련된 분야, 오피스 등 상업용 부동산에 관련된 분야로 나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부동산 시장에도 아파트로 대표되는 주거용 부동산과 빌딩으로 대표되는 상업용 부동산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아파트와 빌딩 시장에서 가격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거래 비중으로 본다면 몇천억원대 빌딩 거래가 상업용 부동산을 대표하겠지만, 거래 건수는 ‘50억원 미만의 중소형 상업용 빌딩’이 전체의 60~70%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빌딩보다 비싼 아파트’의 거래량도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분기당 200여 건에 불과했던 30억원 초과 아파트 거래량은 올해 2분기와 3분기 각각 580건과 700건을 기록했다. 분기당 500여 건에 불과한 50억원 미만 상업용 부동산 거래량을 훌쩍 뛰어넘은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부동산 투자자도 ‘고가 아파트’와 ‘꼬마빌딩’을 비교 선택지로 놓고 투자를 고민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자산 가격이 아니라 ‘임대료’라는 공간 가치 측면에서도 상업용 부동산과 주거용 부동산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최근 ‘집주인이 모건스탠리’라는 말이 부동산 시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외국계 자본이 과거에는 국내 오피스나 호텔 시장을 주력으로 투자해 왔다면 최근에는 새로운 먹거리로 주거용 부동산 임대시장에 진입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이런 투자 행태의 변화에는 다양한 요인이 있지만 그 근간에는 ‘이제 한국 부동산 시장에서도 주택 월세가 돈이 된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수도권 주택시장에서는 ‘월세의 반란’이라는 용어가 등장할 정도로 월세가 빠르게 올랐고, 투자자 입장에서는 수도권 주택 공급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주택 월세 시장이 안정적이면서도 성장성이 보이는 매력적 투자처로 인식되는 것이다.
부동산 시장에서 빅블러 현상이 심화하면서 지역별 부동산 가격에서도 특징적인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고가 주택지’의 입지가 강조되고, 전통적인 ‘상권’ 의미가 약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중소형 상업용 부동산의 가격과 미래 가치를 고민할 때 인근 주거지의 주택 가격을 비교 변수로 검토하다 보니 ‘비싼 아파트가 들어오는 지역=중소형 빌딩 가격도 높아질 지역’이라는 인식이 강해지고 있다. 반면 안정적인 월세를 담보한 ‘상권’의 중요성은 점점 약해지는 모습이다. 핵심 상권인 종로나 강남지역 빌딩의 거래 수요가 압구정이나 한남동에 비해 빠르게 줄어들고, 단위 면적당 거래 가격이 역전된 것도 이를 증명하고 있다.
전통적인 산업과 시장의 경계가 무너지고 시장에 대한 평가 기준도 변화하는 빅블러 시대. 전문가들은 이에 대응하는 자세로 유연함과 창의성을 꼽는다. 부동산업계 종사자들도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자세를 가지려는 노력이 중요한 시기다.
윤수민 농협은행
All100자문센터 부동산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