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기후테크 관련 특허 출원 건수가 세계 3위 수준을 나타냈지만 삼성과 LG그룹 등 4개 회사 편중이 심한 것으로 조사됐다. 화학·정유·철강 등 탄소 다배출 산업의 기술력은 특히 미미했다. 특허의 품질을 따져보면 10개 선도국 중 최하위 수준으로 분석됐다.

한국, 기후테크 특허 품질 10개국 중 10위

한국은행이 12일 내놓은 '탄소중립경제로의 길: 우리나라 기후테크의 현황과 과제' 보고서에서 이동원 경제연구원 미시제도연구실장, 최이슬 부연구위원 등이 분석한 결과다. 최 부연구위원은 이날 한은과 한국경제발전학회가 공동 주최한 심포지엄에서 이같은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한국의 기후테크 분야의 특징은 양적으로는 세계적으로 우수하다는 점이다. 한국의 2011~2021년 기후테크 관련 특허 출원건수는 약 9000건으로 미국(4만1000건), 일본(3만3000건)에 이어 세계 3위 수준이다. 한국의 관련 특허는 최근까지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특허 출원은 특정 기업과 특정 분야에 편중된 것으로 조사됐다. 기후테크 특허의 3분의2 이상이 4개 기업에 몰려있다. LG화학, LG에너지솔루션, LG전자와 삼성전자 등이 전체 특허의 72.1%를 차지했다. 주요 특허 분야는 2차전지, 전기차, ICT, 재생에너지 등이다. 반면 실제 탄소 다배출산업인 화학·정유·철강 등 분야에서 탄소저감기술을 개발하거나, 탄소포집·활용·저장 등 미래 유망기술 특허를 갖고 있는 경우는 드문 것으로 나타났다.

특허의 질도 미흡한 수준으로 지적됐다. 기후테크 특허를 많이 갖고 있는 상위 10개국 중 독창성과 범용성, 급진성 등 품질 지표에서 모두 최하위를 기록했다. 건당 피인용건수는 미국, 캐나다, 스위스, 네덜란드, 영국에 이어 6위를 기록했다.

한은은 이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이유로 '중장기적 필요성 보다는 단기 성과가 우선시되는 연구 풍토'를 꼽았다. 대부분 연구가 이미 상용화 단계에 진입해 빠른 투자수익 회수가 가능한 분야에 집중됐다는 것이다.

제도적 유인도 부족한 것으로 평가됐다. 저탄소에너지기술에 대한 정부의 R&D 투자 비중은 2011년 3.8%에서 2021년 2.9%로 오히려 감소했다. 중국을 제외하면 10개국 중 최하위다. 탄소세, 탄소배출권 가격, 유류세 등으로 평가하는 유효탄소가격도 평균 대비 낮아 기후테크 개발 유인을 제공하지 못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신생 중소기업이 기후테크 분야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길도 막혀있다. 녹색채권 발행 규모가 GDP대비 0.3%로 10개국 평균인 0.57%의 절반 수준에 그친다.

한은은 "기후테크의 선두 개척자(퍼스트 무버)로 도약하기 위해 정부의 R&D 지원이 강화되고 혁신자금 공급 여건을 확충해야한다"고 제언했다. 또 탄소가격제를 강화하되, 이로 인해 확보한 세수를 저탄소기술 혁신 R&D 지원에 환류되도록 제도를 설계해야한다고도 했다.

탄소세 부과하면 생산자물가 1%p 상승

이날 심포지움에서는 기후변화에 따른 거시경제 영향에 관한 연구들도 소개됐다. 2050 탄소중립을 목표로 탄소세를 부과할 경우 생산자 물가가 최대 1.0%포인트 상승할 것으로 예측됐다. 탄소 다배출 산업을 중심으로 생산비용이 급증하는 데 따른 것이다.

이동진 상명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산업별 감축저감비용 추정 및 영향 분석'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하면서 이같이 분석했다.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선 탄소세 부과와 같은 방식으로 기업의 탄소 감축을 유도해야한다. 하지만 이같은 결정은 기업의 생산비용 증가로 이어진다. 직접적으로는 탄소세를 납부해야하고, 간접적으로 중간재 가격 상승의 영향을 받는다.

탄소세가 부과되면 1차금속, 석탄·석유, 화학제품 등 탄소 다배출 산업의 생산비용이 특히 증가한다. 이 교수는 205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60%를 상회하는 시나리오에서 탄소세가 부과될 경우 1차금속은 탄소세 부담으로 생산비용이 현재부터 2035년까지 30% 이상 증가해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추정됐다.

탄소 다배출 산업의 생산비용 상승은 금속가공, 기계장비, 운송장비 등 연관 제조업으로 전이된다. 이들 제조업의 생산비용은 2035년까지 20% 내외 증가할 것으로 분석됐다. 산업의 생산비용 상승은 생산자물가에 반영된다. 이 교수는 생산자물가가 탄소세 영향으로 연평균 0.4%포인트 상승할 것으로 분석했다.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45%에 그치는 시나리오에선 1차금속 산업의 생산비용은 2035년까지 60% 급등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 경우 생산자 물가는 연평균 1.0%포인트 높아진다.

이 교수는 "탄소중립 과정에서 발생하는 직간접 비용의 산업별 차이를 고려해 맞춤형 지원과 정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또 재생에너지 확대를 가속화해 감축비용부담을 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은 금융통화위원 출신인 박기영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기후리스크가 물가를 높인다고 분석했다. 폭염 등이 농산물 가격을 끌어올린다는 것이다. 반면 산업생산에는 별 영향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 교수는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로 실내근무가 주를 이루고, 산업계 가 냉난방 시설 개선, 작업시간 조정, 에너지 효율기술 도입 등을 통해 유연하게 대응한 결과"라며 "폭염이 물가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 산업별로 기후변화의 영향이 다르게 나타난다는 점 등을 반영해 맞춤형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