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처드서울 (CAPTURED SEOUL) / 사진. ©조원진
캡처드서울 (CAPTURED SEOUL) / 사진. ©조원진
21세기는 꿈의 사회였다. 디지털 기술이 발달하면서 세상의 모든 정보가 국경 없이 공유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장벽 없는 소통의 장이 열린 세상을 만들고, 다원화된 세상에서 해묵은 갈등이 치유될 것이라 믿었다. 그 꿈의 세기를 앞두고 프랑스의 사회학자 자크 아탈리는 “21세기는 디지털 장비를 갖고 지구를 떠도는 디지털 노마드의 시대”가 될 것이라 예측했다.

하지만, 정주민이 깊게 뿌리 내린 세상에서 유목민이 설 자리는 없었다. 자유로운 생각과 정보의 흐름은 알고리즘을 타고 분열돼 서로에게 장벽을 세웠고, 풍족하게 자산을 확보한 정주민은 빈부격차를 늘리며 정처 없이 떠도는 노마드를 더욱 불안하게 했다. 덜 가지고 더 많은 것을 나누려는 노마드적 사고는 마땅히 거주할 곳이 없는 사람들의 철없는 생각으로 치부됐다.

영국의 저널리스트 앤서니 새틴은 자신의 저서 <노마드>에서 노마드에 대한 뿌리깊은 편견이 정주민이 서술한 역사로부터 기인한다고 말한다. 그는 역사학자 필리페 페르난데스-아르메스토의 ‘역사의 고속도로’ 개념을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 대부분이 기독교 서구의 업적으로 장식된 것임을 지적한다. 인류가 탄생해 유목민으로 살아온 역사는 정착민의 역사보다 절대적으로 오래됐다. 좀처럼 흔적을 남기지 않는 유목민들은 그들의 삶을 성문화하지 않았으니, 우리가 배운 역사는 실제 인류가 살아온 시절을 절반도 증명하지 못하는 셈이다.
도서 <노마드> 앤서니 새틴 지음 / 사진출처. © KYOBO BOOK CENTRE
도서 <노마드> 앤서니 새틴 지음 / 사진출처. © KYOBO BOOK CENTRE
같은 책에서 앤서니 새틴은 2008년 미국 노스웨스턴대 연구팀이 케냐 유목민의 유전자 분석을 한 결과를 바탕으로, 우리에게도 유목민의 유전자가 남아있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연구의 대상이 된 케냐의 유목민 중에서 ‘DRD4-7R’이라는 유전자를 보유한 사람들은 오랜 유목생활에도 체력과 영양상태가 좋았다.

반면 같은 유전자를 가져진 정착민들의 체력은 그에 미치지 못했다. 정주가 강요된 사회에서 떠돌아 다녀야만 하는 사람들은 유별난 취급을 받았다. 그들은 ‘역마살’이 붙었다거나,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가 있다고 손가락질 받았다. 하지만 유목민의 역사를 부정할 수는 없다. 드넓은 초원을 집으로 삼고 떠도는 유목민이, 정주민의 세계에서도 유목민의 본능을 숨기고 사는 이들이 지금도 역사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캡처드 서울의 대표 김은준도 어쩌면 유목민의 기질을 타고났을지 모른다. 그는10년 가까이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틈만 나면 배낭을 꾸렸다. 백패킹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즐기고 싶은 그에게 가장 어울리는 방식이었다. 백패커들은 딱 자신의 몸뚱어리를 뉘일 수 있는 크기의 가벼운 텐트와 침낭, 전기와 불 없이도 먹을 수 있는 소량의 물과 먹거리만 배낭에 넣고 산에 오른다. 자연을 더 오래, 깊이 마주하는 만큼 백패커들은 흔적을 남기지 않고 오기 위해 나름의 규칙을 가지고 움직인다.

가령, 일반적인 쓰레기는 물론 흔히 버려도 된다고 생각하는 과일 껍질의 경우에도 잔류 농약을 생각해 전부 싸 들고 돌아온다. 어쩔 수 없이 생리현상을 해결해야 할 때도 소변은 쉽게 마를 수 있는 바위에 처리하고, 대변의 경우 20cm 이상 깊게 묻어두거나 응고제를 사용해 쓰레기봉투에 담아 되가지고 온다.
백패커 / 사진출처. pixabay
백패커 / 사진출처. pixabay
백패킹은 어떤 자연도 누구의 주인이 될 수 없다는 노마드의 철학을 가지고 떠나는 여행이다. 캡처드 서울은 숲 속에서 보내는 그 고요한 아름다움을 동경하다가 만든 백패킹 용품 쇼룸이자 카페다. 김은준은 커피회사와 유통회사를 두루 거치며 쌓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경량화에 집중한 캠핑용품 브랜드를 선정해 유통망을 확보했다.

커피도 에스프레소 머신을 사용하지 않고 핸드드립을 통해서만 제공해 쇼룸 콘셉트에 어긋나지 않게 했다. 매장은 ‘서울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편하게 숨 쉴 수 있도록 파주로 자리를 잡았는데, 너른 잔디밭에서는 종종 백패킹을 체험할 수 있는 행사를 열기도 한다.
캡처드서울 (CAPTURED SEOUL). 백패킹 용품 쇼품 및 커스터드 푸딩과 커피 / 사진. ©조원진
캡처드서울 (CAPTURED SEOUL). 백패킹 용품 쇼품 및 커스터드 푸딩과 커피 / 사진. ©조원진
캡처드 서울의 쇼룸은 흡사 ‘파빌리온’의 형태를 가졌다. 파빌리온은 박람회 등지에 세워지는 임시 가설물이나 텐트를 뜻한다. 때문에 파빌리온은 노마드적 성격을 가졌다고 보는 경우가 많다. 캡처드 서울에는 전시 목적으로 세워진 백팩킹 전용 텐트가 설치돼 있고, 그 옆으로는 목재로 만든 데크 위에 지어진 카페가 있다.

카페는 커피 제조 등을 하는 작은 콘크리트 건물과 캠핑용품을 전시하거나 취음 공간이 되기도 하는 테라스로 나뉜다. 테라스는 얇은 목재 기둥과 슬레이트 지붕으로 이뤄졌는데, 구조물의 비중을 최소화 하면서도 다양하게 공간을 활용할 수 있는 고민이 잘 녹아 들었다. 필요한 재료만 알맞게 골라 욕심을 버리고 꾸린 이 공간들은 모두 노마드가 머물법한 파빌리온이 된다.
캡처드서울 (CAPTURED SEOUL). 백패킹 전용 텐트가 설치되어 있다.  / 사진. ©조원진
캡처드서울 (CAPTURED SEOUL). 백패킹 전용 텐트가 설치되어 있다. / 사진. ©조원진
캡처드서울 (CAPTURED SEOUL)의 테라스. 얇은 목재 기둥과 슬레이트 지붕으로 이루어졌다.  / 사진. ©조원진
캡처드서울 (CAPTURED SEOUL)의 테라스. 얇은 목재 기둥과 슬레이트 지붕으로 이루어졌다. / 사진. ©조원진
반영구적으로 오래 버텨야 하는 일반 건축물과는 달리, 임시적인 성격의 파빌리온은 건축가의 상상력이 더해져 화려한 모습을 가지기도 한다. 가령 영국 런던 하이드파크에 있는 서펜타인 갤러리에는 매번 건축가를 초빙해 만든 파빌리온이 설치되 세간의 이목을 끌곤 한다. 하지만 유명한 건축가가 짓지 않아도 파빌리온은 도처에 있다.

그 모습은 너른 잔디밭에 펼쳐놓은 텐트가 되기도 하고 방부목 기둥과 슬레이트 지붕으로 지어진 쇼룸이 되기도 한다. 어디든 파빌리온의 문이 열리면 사람들은 그곳에 모여 대화의 싹을 틔운다. 영구성을 좇는 정주민의 삶에서 잠시 벗어난 사람들은 노마드의 여행을 상상하며 잠시 마음을 비운다.

우리는 어쩌면 유목민의 유전자를 타고났을 수도 있다. 다만 세상이 필요 이상으로 풍요로워지고, 그 풍요를 누구보다도 더 많이 가지고 싶어 정주민이 됐을 뿐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갖춘 정주민의 삶은 숨이 턱턱 막힐 만큼 바쁘고 힘들다. 서로가 가진 것을 비교하고, 서로에게 더 욕심을 내라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유목민들은 넓은 자연을 있는 그대로 즐기며, 나와 한 몸이 되어 움직일 수 있을 만큼만 가질 줄 알았다. 풍요로운 삶은 상대적일 뿐이다. 정주민이 점령한 서울을 벗어나 찾은 작은 파빌리온에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한 줌의 짐만 배낭에 넣고 떠나는 백패킹을 만났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즐기고자 하는 이들의 소박한 취미를 옅보며, 노마드의 역사에 닮긴 지혜를 마음에 한 웅큼 담아본다.
캡처드서울 (CAPTURED SEOUL) / 사진. ©조원진
캡처드서울 (CAPTURED SEOUL) / 사진. ©조원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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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진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