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 DOGE, 머스크는 왜 그 단어에 꽂혔을까
엔비디아는 NVDA, 애플은 AAPL, 테슬라는 TSLA…. 주식 종목마다 고유의 티커가 있듯 암호화폐에도 티커가 있다. 비트코인은 BTC, 이더리움은 ETH다. 코인이 1만 종을 넘어섰으니 티커도 1만 종이 넘는다. 이 중에서 요즘 가장 ‘출세한 놈’을 꼽자면 도지코인을 상징하는 DOGE가 아닐까.

DOGE는 도널드 트럼프가 연방정부의 비효율을 걷어내기 위해 신설한 정부효율부의 약칭으로 더 유명해졌다. 원래 트럼프는 정부효율위원회(Government Efficiency Commission)라는 점잖은 이름을 붙였다. DOGE에 끼워맞춘 다른 풀네임(Department of Government Efficiency)을 들고 와 이걸 기어이 바꾼 사람이 이 조직의 공동 수장으로 지명된 일론 머스크다. 일개 밈 코인 티커가 미국 행정부 정식 조직의 간판으로 신분 상승한 셈이다.

[토요칼럼] DOGE, 머스크는 왜 그 단어에 꽂혔을까
머스크의 ‘도지 사랑’은 유명하다. 도지코인의 아버지(Dogefather)를 자처했고, 테슬라 일부 제품의 결제수단으로도 채택했다. 트럼프에게 관세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라면 머스크에게 도지는 ‘이 세상의 오직 한 단어’다. 도지코인의 역사는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인 빌리 마커스와 잭슨 팔머가 인터넷 밈으로 유행하던 시바견 캐릭터를 붙여 만든 코인이다. 사실 두 개발자의 의도는 과열된 암호화폐 시장을 풍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코인으로 뭘 해보겠다는 비전은 딱히 없었다. 비트코인과 달리 희소성도 없다. 발행량이 이미 1470억 개를 넘어섰고 무한대로 불어날 예정이다.

재미로, 장난삼아, 뚝딱 만든 이 코인은 2019년 머스크와 엮이면서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도지코인에 심취한 머스크의 폭풍 트윗에 가격이 1년 새 1만% 뛰었다. 투기 광풍을 보다 못한 도지코인 개발자가 “경제적 약자의 돈이 착취당하고 있다”고 비난했을 정도다.

머스크가 도지코인에 주목한 이유는 ‘화성 시대의 기축통화’로 쓰기 위해서라는 게 정설이다. 향후 인류가 화성으로 이주해 지구와 거래가 필요할 때 쓸 암호화폐로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원래 코인에 큰 관심이 없었던 머스크는 테슬라와 스페이스X 공장에서 금융, 공학 등과 무관한 평범한 직원들이 도지코인에 대해 수군대는 걸 듣고 호기심을 느꼈다고 한다.

“운명은 아이러니를 좋아하는 법이지! 암호화폐를 조롱하려고 만든 암호화폐가 진짜 화폐가 된다면, 가장 아이로니컬한 일 아니겠어?”

남들이 잘 상상하지 못하는 일, 안 될 거라고 말리는 일에 더 꽂히는 괴짜 성향이 여기서도 묻어난다. 단순히 귀여운 캐릭터에 끌려 도지코인을 지지한다기보다 나름대로 ‘SWOT 분석’까지 마쳤다. 머스크는 도지코인의 거래 비용이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보다 싼 것은 장점이지만, 특정인이 너무 많은 물량을 쥔 소유 구조는 개선해야 할 과제로 지적하기도 했다.

‘암호화폐 DOGE’를 시가총액 7위 코인으로 성장시킨 머스크는 ‘정부부처 DOGE’ 실험도 성공할 수 있을까. 머스크는 대선 전부터 미국 연방정부 예산을 2조달러 감축할 수 있다고 공언했다. 전체 1년치 예산(6조8000억달러)의 3분의 1에 가까운 규모다. 428개에 달하는 연방기관은 99개면 충분하다고도 했다. 정가와 싱크탱크의 상당수 인사들은 “말이 안되는 소리”라며 정색한다. 줄일 수 없는 지출도 많고, 법을 지키려면 무조건 써야 하는 항목도 많은데 사정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효율부와 머스크는 여전히 ‘핫이슈 메이커’다. 얼마 전 머스크는 F-35 유인 전투기가 멍청하다며 자율주행 드론을 화두로 꺼냈다. 그의 생각이 미국의 국방 예산에 반영된다면 의미심장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현지 기업들은 머스크와 연줄을 만들고 동향을 살피기 위해 줄을 섰다고 한다.

머스크는 테슬라와 스페이스X 외에도 인간의 뇌에 칩을 심는 뉴럴링크, 거대 지하 터널을 뚫는 보링컴퍼니 등까지 여섯 개 회사를 이끌고 있다. 온갖 규제에 이골이 난 그는 정부에 낀 지방(fat)을 직접 제거하고 싶어 한다.

이런 스타 기업인에게 규제 철폐의 칼자루를 쥐여준 미국의 파격적 시도가 “부럽다”는 사람들이 한국에도 꽤 있다. 관료 조직과 규제를 수술하는 일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경험만 뼈저리게 쌓아온 우리여서다. DOGE에 꽂힌 머스크의 새로운 실험이 성공한다면 배울 점이 꽤 많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