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미분양 지속과 건설경기 급랭 등 악재가 수두룩합니다. 정부 대책마저 원점으로 돌아갈까 봐 불안해 내년 신규 사업 계획은 잠정 보류 상태입니다.”(대형 건설회사 사업담당 임원)

건설사들이 ‘12·3 비상계엄 사태’로 인한 탄핵 정국과 경기 침체 등을 고려해 내년 사업 축소를 검토하고 있다. 정치적 불확실성으로 건설업계 지원을 약속한 정부 대책이 물거품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어서다. 당장 내년 분양 물량을 줄이겠다는 건설사가 늘어나면서 주택 공급 가뭄이 심화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내년 분양 더 줄인다”

'도미노 악재' 덮친 건설사 "분양계획 재검토"…공급절벽 장기화
13일 업계에 따르면 주요 건설사는 내년 분양 물량을 줄이는 방향으로 사업 계획을 재검토하고 있다. 분양 시장 침체가 내년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큰 데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정치적 불안까지 겹쳤기 때문이다. 올해 전국에서 2만 가구 넘게 분양한 한 대형 건설사는 내년 분양 물량을 9800가구로 줄였다. 건설 경기 침체로 수주 잔액이 줄어들고 있는 데다 내년 시장도 좋지 않을 것이란 분석에 따른 것이다.

대부분의 건설사는 내년 업무 계획에 ‘정치 리스크’를 포함해 사업을 조정하고 있다. 사업 규모를 축소했다는 한 대형 건설사 임원은 “기존에는 ‘도널드 트럼프 리스크’와 ‘금리 리스크’를 주요 변수로 봤는데 이젠 ‘탄핵 리스크’를 넣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분양 시장에서는 탄핵 후폭풍이 일고 있다. 대전의 한 분양 현장은 비상계엄 사태가 발생한 지난 3일 이후 계약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사전 서류 접수 당시 계약 희망 비율이 90%에 달하던 곳이다.

경기 변화에 취약한 중견 건설사의 어려움은 더 크다. 가뜩이나 위축된 아파트 구매 심리가 더 얼어붙을 가능성이 높은 데다 정부의 지방 부동산 시장 활성화 대책도 지속될 수 있을지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한 중견 건설사 임원은 “시공능력평가 50~100위권 지방 건설사들은 지방 미분양 물량이 여전히 쌓여 있는 상황에서 준공 후 미분양 물량까지 더해지면 어려움이 가중될 것”이라고 했다.

○시장 경색 더 악화할 듯

건설업계가 공급 일정을 뒤로 미루면서 내년 주택 공급 부족 현상은 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내년 전국 분양 물량은 26만5439가구로, 2019년 이후 연평균 분양 물량(35만5524가구)보다 25%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내년 입주 물량 역시 26만4425가구로, 올해(36만3851가구)보다 10만 가구 가까이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입주·분양 물량이 동시에 급감하면서 앞으로 3~4년 뒤까지 공급 대란이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업계에선 당장 내년 상반기 분양 가뭄이 극심할 것으로 예상한다. 분양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대출 조이기에 나서면서 계약자가 자금을 마련할 길이 없어 주택 구입을 포기한 사례도 적지 않다”며 “탄핵 국면에서 정부 정책이 표류할 가능성이 높아 당분간 시장 회복은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정국 불안으로 인한 프로젝트파이낸싱(PF) 경색도 주택 공급을 가로막고 있다. 금융회사가 당국 지침이 없다는 이유로 사업성 높은 우량 사업지도 PF 대출을 거부하면서 착공하지 못한 채 고금리 브리지론(택지 구입비 대출) 이자만 내는 시행사가 적지 않다. 업계 관계자는 “당장 착공하면 2026년까지 입주할 수 있는 사업 현장이 PF 이자만 내면서 부실화하고 있다”며 “금융권에서도 대출 재개 기준을 마련해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탄핵 정국으로 논의가 멈췄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추진 중인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한 대형 건설사 사업담당은 “가능하다면 사업을 중도 포기하고 예상 손실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사업을 재편 중인데, 주택 공급 물량이 더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유오상/안정락 기자 osy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