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직자만 받는 조건부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는지에 대한 대법원 판단이 19일 나온다. 대법원이 기존 판례를 11년 만에 뒤집고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판결하면 국내 기업의 인건비는 연간 6조8000억원가량 급증할 것으로 전망돼 산업계에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엇갈린 하급심 판결

대법 '年 6.8조' 걸린 통상임금 소송 19일 판가름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한화생명보험과 현대자동차의 통상임금 관련 사건 선고기일을 오는 19일로 잡았다. 한화생명보험 사건은 특정 시점에 재직 중인 근로자에게만 지급하는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하는지를, 현대차 사건은 일정 ‘기준 기간’ 내 15일 이상 근무한 근로자에게만 지급하는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하는지를 놓고 벌어진 소송이다.

비슷한 쟁점으로 먼저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된 세아베스틸 통상임금 사건은 아직 선고기일이 잡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자동차 부품업체인 갑을오토텍 사건에서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선고했다. ‘재직자에게만 지급한다’는 조건이 붙으면 통상임금이 아니라는 별도 기준도 함께 제시했다. 재직자 조건이 붙었다면 통상임금의 성립 요건인 ‘고정성’(추가 조건과 관계없이 지급이 확정된 것)이 없기 때문이란 취지였다.

하지만 2018년 이후 하급심 판단은 엇갈리고 있다. 그해 서울고등법원이 제강업체인 세아베스틸 근로자들이 회사를 상대로 “재직자에게만 지급한다는 조건이 있는 정기상여금도 통상임금”이라며 제기한 임금 소송에서 1심을 뒤집고 근로자 손을 들어줬다. 서울고법은 2020년 한화생명보험 근로자들이 청구한 임금 소송에서도 “재직자 조건은 무효”라고 판단했다. 이미 근로의 대가로 발생한 임금에 재직자 조건이 붙었다는 이유로 통상임금에서 제외된다고 볼 수 없다는 취지였다.

반면 지난해 서울중앙지법은 현대차 근로자들이 “기준 기간 내에 15일 미만 근무하면 정기상여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지급 조건은 무효”라며 제기한 소송에선 회사 측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2020년 세아베스틸 사건을, 올해 9월엔 현대차와 한화생명보험 사건도 전원합의체에 회부했다.

○판례 변경 시 기업들 큰 영향

경영계는 대법원이 기존 법리를 11년 만에 뒤집고 재직자 조건부 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할 경우 기업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먼저 통상임금에 근거해 지급하는 연장·야간·휴일근로 수당, 휴업수당, 연차수당 등이 한꺼번에 오른다. 과거에 못 받은 수당도 임금 소멸시효인 최대 3년치에 이자까지 붙여 청구하는 게 가능해질 전망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19일 대법원 판결이 변경되면 영향을 받을 기업은 전체의 26.7%에 달하고, 이들이 추가 부담해야 할 인건비는 연간 6조7889억원에 달할 것으로 분석됐다. 경총 관계자는 “대법원이 2013년 스스로 내린 전원합의체 판결을 또다시 변경한다면 기업 경영과 노사관계에 막대한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제조업체 관계자는 “기존 대법원 법리만 믿고 상여금이나 정기 명절 상여에 ‘재직 여부’를 지급 조건으로 걸어둔 상태”라며 “이번에 대법원 판결이 달라지면 연간 인건비가 200억원 늘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김상민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법리가 바뀌면 엄청난 후폭풍이 예상된다”며 “기업들도 상여금 지급 제도를 어떻게 정비해야 할지 고민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민경진/곽용희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