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젤라 휴이트는 캐나다 출신 피아니스트로, 올해로 66세를 맞이했다. 그녀는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의 청중과 인연을 맺어 왔다. 예를 들어 2006년 10월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공연, 2008년 4월 LG아트센터 공연, 2014년 2월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공연 등이 있다. 이 공연들의 공통점을 꼽으라면 단연 프로그램에 바흐가 포함된다는 사실이고, 이 점은 마지막 내한공연 이후 거의 정확히 10년 만에 이루어진 지난 11일 서울 예술의전당 공연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휴이트의 레퍼토리는 쿠프랭부터 메시앙까지 폭넓게 걸쳐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바로크와 고전주의 시대 음악의 비중이 큰 편이며, 특히 바흐는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그녀가 지금까지 발표한 바흐 음반은 20종이 넘으며, 2016~2022년에는 바흐의 곡들로만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연주하는 '바흐 오딧세이' 프로젝트를 진행할 정도로 그녀의 바흐 사랑은 유별나다. 그녀는 “바흐를 잘 연주할 수 있다면, 다른 음악도 잘 연주할 수 있다”고 말하는데, 이는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은 우리의 일용할 양식이다”라는 슈만의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공연의 첫 순서는 모차르트의 ‘환상곡 다단조, K.475’였다. 이 곡은 바로 다음 순서였던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제14번 다단조, K.457’보다 반년 뒤에 쓴 곡으로, 처음에는 ‘포르테피아노를 위한 환상곡과 소나타’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을 정도로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이번 공연처럼 나란히 연주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경우에는 환상곡이 소나타의 전주곡 역할을 하게 된다. 휴이트는 이 두 곡에서 우아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때로 강렬한 포르티시모로 작곡가가 의도했던 극적 긴장감을 뚜렷이 부여했다.

휴이트의 장기인 바흐가 뒤를 이었다. 정확히는 ‘반음계적 환상곡과 푸가 라단조, BWV903’이었는데, 휴이트는 이 곡에서 대단히 자유로운 템포로 다소 탐미적인 연주를 들려주었다. 간간이 곁들이는 지휘 비슷한 동작은 퍽 이채로웠는데, 휴이트가 어렸을 때 발레를 배웠다는 이야기가 새삼 떠올랐다.

2부를 구성하는 두 곡은 헨델과 관련이 있다. 헨델의 ‘샤콘느’는 같은 장르에 속하는 바흐나 비탈리의 작품만큼 유명하지는 않지만 이 장르를 대표하는 명곡 중 하나이다. 휴이트는 여기서 밝고 희망차며 위엄 있는 연주를 들려주었다. 다음 순서인 브람스의 ‘헨델 주제에 의한 변주곡과 푸가’는 헨델의 ‘하프시코드 모음곡 내림나장조’ 중 한 악장에서 주제를 따서 쓴 곡이다. 브람스가 작곡 역량을 최대한 발휘해 쓴 곡으로, 브람스를 적대시했던 바그너마저 경탄했다는 일화가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휴이트는 이 곡에서 독일 피아니스트들이 흔히 추구하는 구조적 완결성보다도 변주마다 확연히 달라지는 분위기를 생생하게 포착하는 데 더 중점을 두었다. 앙코르로 연주한 두 곡 가운데 멘델스존의 ‘무언가, Op.19-1’은 다정다감한 연주였고, 바흐의 ‘지그’(‘파르티타 제1번’의 일곱 번째 악장)은 대가다운 자유로움이 돋보였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10년 만에 다시 접한 안젤라 휴이트의 연주는 정확함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예를 들어 바흐의 ‘반음계적 환상곡과 푸가’는 마지막 대목이 다소 흐트러졌고, 브람스의 ‘헨델 변주곡’ 역시 사소하나마 미스터치가 많았다.

모차르트 소나타의 경우는 아예 몇 마디 빠진 대목도 있는데, 휴이트는 전혀 내색하지 않고 연주를 이어갔기에 눈치채지 못한 사람이 더 많았을 것이다. 이런 면모는 원래 정확하고 명료한 연주로 정평 있는 연주자였음을 감안하면 무척 아쉬운 일이다.

그러나 휴이트 특유의 고상한 분위기는 여전히 공연 전체를 지배했으며, 듣기에 따라서는 앞서 언급한 모든 기술적 결함을 덮기에 충분했다. 진정한 음악가라면 세월이 가도 음악적 ‘아우라’는 더 선명해지면 했지 이울지는 않는 법이다. 휴이트의 경우에는 ‘고상함’이 그 아우라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황진규 음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