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 톡톡] '정책' 만으로는 안된다
1989년 12월 12일, 코스피지수가 폭락했다. 노태우 정부가 잇따라 증시 부양책을 발표한 한가운데였다. 정부의 부양책은 무모할 정도였다.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해서라도 주가를 올리겠다며 투자신탁회사들로 하여금 ‘무제한 매입’을 하게 했다. 사실 1989년은 3저 호황에 힘입어 코스피지수가 1000을 넘긴 첫해였다. 하지만 10월이 되자 코스피는 45%나 폭락했다. 부양책은 역효과를 불러왔다. 투자자들은 그야말로 깡통이 된 계좌를 지켜봐야만 했다. ‘더 이상 손해 보기 전에 주식을 팔고 떠나자.’ 당시 일간지 기사에 등장한 문장이다.

코스피가 꿈의 숫자였던 1000을 넘어 2000을 달성한 것은 그로부터 18년이나 지난 2007년, 노무현 정부 때였다. 그 이전까지는 채권 중심으로 안정적인 투자만 하도록 돼 있던 당시 57개 연기금의 주식 투자가 허용된 덕분이었다. 물론 여야가 수년간 갑론을박하며 적절함을 다퉜고, 시민단체와 노동조합도 격렬하게 찬반을 밝혔다.

진통 끝에 연기금은 증시에 들어왔다. 그 덕분에 증시는 기관투자가 중심으로 개편되며 유동성이 확대되고 변동성이 줄어들었다. 그로부터 20년이 다 돼가는데 아직도 코스피지수가 2400에서 2600 사이를 오가는 것은 큰 문제다. 이래서야 투자할 마음이 들 리가 없다. 그새 우리 증시의 ‘큰손’이 된 국민연금도 국내 증시보다는 해외 증시에서 수익을 낸다. 정부가 정책적으로 증시 부양을 도모하는 것도 당연하다.

증시의 12·12 사태 이후 꼭 35년이 흘렀다. 35년 전과 같은 ‘더 이상 손해 보기 전에 주식을 팔고 떠나자’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2024년 12월. 코스피 거래량은 암호화폐거래소에서 발행하는 거래량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비트코인 하나의 시가총액이 코스피 전체의 시가총액을 넘겨버렸다. 2007년 반대를 무릅쓰고 들어온 연기금이 혼란한 시국에 추락하는 코스피를 간신히 떠받쳤다. 그런데 가상자산 투자자의 연령대는 대부분 2030, MZ세대(밀레니얼+Z세대)다.

연기금을 허용한 정책은 현명했다. 하지만 정책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현실적으로 시장의 조건이 조성됐기 때문이다. 정책결정자는 운과 때를 읽어낸 것이지, 없는 시장을 억지로 만든 것이 아니었다. 한국은행까지 동원한 정책이 실패한 것은 시장이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정책으로 우격다짐을 할 수 있다고 믿은 탓이었다.

올해 2월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더 많은 대기업 일자리가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냈다. MZ는 좋은 일자리가 필요하다. 일자리의 질은 대체로 기업 규모가 결정한다. 코스피가 3000을 넘기는 것도, MZ가 가상자산 대신 코스피에 투자하는 것도 어쩌면 여기서부터 시작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