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정쟁에 휘말린 마약과의 전쟁
미국에서 처음으로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대통령은 리처드 닉슨이었다. 그는 1971년 6월 기자회견에서 약물 남용을 ‘공공의 적 1호’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마약 밀수통로인 남부 국경을 봉쇄해 멕시코인들의 이주를 제한했고, 멕시코에서 현지 군과 공조해 마약 재배지 초토화 작전을 펼쳤다.

마약과의 전쟁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집권 시기에 절정에 달했다. 중남미 마약 생산 국가에서 각종 군사작전에 나섰고, 마약 소지와 판매에 대해 엄격한 최소형량 규정을 도입했다. 낸시 레이건 여사가 주도한 마약 퇴치 캠페인 ‘아니라고 말하라(Just say no)’는 1980년대를 상징하는 캐치프레이즈가 됐다.

펜타닐에 죽어나는 미국인들

마약과의 전쟁은 내년 1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재집권과 함께 다시 불붙을 전망이다. 약 10년 전부터 중국발(發) 국제우편 등으로 미국에 유입된 합성마약 펜타닐이 사회문제를 넘어 국가안보 위협 요인으로까지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펜타닐은 헤로인보다 50배 강력하면서도 재료비가 싸고 크기가 작아 마약시장을 빠르게 재편했다. 2022년에만 11만 명이 펜타닐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18~49세 미국인의 사망 원인 1위다. ‘좀비 마약’으로도 불리는 펜타닐에 중독되면 근육이 시체처럼 강직되고, 호흡 저하로 인해 저산소증이 누적돼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된다.

트럼프 당선인은 대선 과정에서 줄곧 마약 문제를 부각했다. “바이든의 실패로 국경이 27t의 펜타닐 월경이 발생한 범죄 현장이 됐다”는 등의 발언으로 현 정부를 직격했다. 당선 직후엔 중국이 생산하는 펜타닐이 멕시코와 캐나다 국경을 통해 미국으로 넘어온다며 이를 막지 않으면 취임 즉시 이들 국가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선언했다.

한국도 '전쟁 중'

한국에서도 이미 전장이 형성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2년 10월 경찰의 날 기념식에서 “우리 미래 세대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마약과의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해달라”고 주문했다.

이후 문재인 정부의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축소됐던 검찰의 마약 관련 직접 수사권이 일부 복원됐고, 4대 권역 검찰청에 마약범죄 특별수사팀이 설치됐다. 대검찰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단속된 마약 사범은 2만7611명으로, 전년(1만8395명)보다 50% 넘게 급증하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승전보는 요원하다. 지난해에는 서울 강남 학원가 한복판에서 버젓이 학생들에게 마약 음료가 배포된 사건이 일어났고, 올 8월에는 명문대 동아리에서 마약이 유통된 사실이 드러났다. 이런 상황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10일 검찰 특정업무경비(506억9100만원)와 특수활동비(80억900만원), 경찰 특활비(31억6000만원) 등을 삭감한 감액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전쟁 중에 ‘군비’를 축소하면서 마약범죄 수사가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이제 마약 문제는 여야와 보수·진보를 막론한 국가 중대사가 됐다. ‘마약 좀비’가 도심을 걸어다니는 아수라장이 한국에서도 펼쳐지지 말란 법이 없다. 마약과의 전쟁을 훼방하는 세력에 국민들이 단호히 “노(No)”라고 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