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시장 시스템과 정부 역량 믿는다"는 李, 진정성 있으려면
“대한민국 시장경제 시스템과 정부의 역량을 믿습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국회 탄핵소추안 가결로 윤석열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된 바로 다음 날인 지난 15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시장경제 시스템은 튼튼하고 정부는 유능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야권의 유력 대권 주자답게 국가 리더십 공백기에 경제뿐만 아니라 외교안보, 국방 등 모든 영역에서 국민적 불안을 진정시키기 위한 발언이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정치적 의도가 어떻든 간에 대권을 노리는 제1야당 대표의 격에 맞는 메시지”라는 평가가 나왔다.

반면 이 대표의 발언에 고개를 갸웃거린 사람도 적지 않았다. 이 대표가 “유능하다”고 치켜세운 정부 관료의 우려를 외면하고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추진한 법안이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다. 이런 법안은 대체로 이 대표가 “튼튼하다”고 얘기한 시장경제 시스템을 정면으로 역행하는 반시장적 내용을 담고 있다. 국회 경제 관련 상임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은행권 횡재세 도입, 기본소득 재원 마련을 위한 국토보유세 부과 등 시장 원리를 그 누구보다 강하게 부정해온 게 바로 이 대표 아니냐”고 했다.

특히 이 대표가 강조한 시장경제 원리를 무시한 대표적 법안이 민주당이 당론으로 추진하는 ‘양곡관리법(양곡법) 개정안’ ‘농수산물유통 및 가격안정법(농안법) 개정안’이라는 지적이다. 양곡법 개정안은 쌀값이 일정 가격 아래로 떨어지면 정부가 차액을 지급하고, 초과 생산량은 의무 매입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농안법 개정안은 농산물 가격이 기준가격 밑으로 떨어지면 생산자에게 차액의 전부 또는 일부를 지급하는 농산물가격안정제도 도입이 핵심이다.

정부가 시장에 과도하게 직접 개입한다는 점에서 부작용 우려가 크다. 양곡법 개정안은 민주당이 집권한 문재인 정부 때도 발의됐지만 차마 처리하지 못한 법안이다. 이때도 주무 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가 반대했고, 국회가 이를 수용했다.

그러나 지금의 민주당은 농식품부의 우려에도 이들 법안을 막무가내로 밀어붙이고 있다. 비(非)정치인 출신으로 농정 분야만 30년 가까이 연구해 온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의 간곡한 호소도 민주당은 외면하고 있다. 오히려 송 장관 해임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공급 과잉이 해소돼야 가격이 안정된다”는 시장경제 원리는 농업계를 의식한 포퓰리즘 앞에 무용지물이다. 이 대표의 ‘시장경제 시스템 튼튼’ ‘유능한 정부 신뢰’ 발언이 공허하다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경제단체의 한 관계자는 “이 대표의 발언이 진심이라면 반시장적 규제부터 철폐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