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솟는 전기요금 >  지난 13일 김포 양촌에 있는 한국기전금속의 주조 공장에서 근로자들이 쇳물을 만들기 위해 전기로에 쇠붙이를 넣고 있다.  이정선 중기선임기자
< 치솟는 전기요금 > 지난 13일 김포 양촌에 있는 한국기전금속의 주조 공장에서 근로자들이 쇳물을 만들기 위해 전기로에 쇠붙이를 넣고 있다. 이정선 중기선임기자
경남 밀양에 있는 뿌리기업 삼흥열처리는 최근 10억9000만원에 달하는 11월분 전기요금 고지서를 받았다. 전달보다 전기사용량은 10만㎾ 줄었는데 요금은 2억원이나 늘었다. 황현기 삼흥열처리 부사장은 16일 “가뜩이나 불황인데 전기료에 등골이 휠 지경”이라며 “고객사에 생산단가를 올려달라고 요청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정부가 지난달 24일부터 산업용 전기료를 ㎾h당 평균 9.7% 인상한 이후 열처리, 주물, 금형, 용접 등의 뿌리기업이 차례대로 전기료 폭탄을 맞고 있다. 지난주 각 기업에 송부된 고지서의 청구 금액이 예상보다 커 산업 현장 곳곳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주조업체 한국기전금속은 11월분 전기요금으로 전달보다 1000만원 많은 1억3114만원을 내야 한다. 이 회사 관계자는 “일감이 줄어 전기 사용량을 절반이나 줄였는데 요금은 더 나오니 너무 당황스럽다”고 했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전력 다소비 업종인 뿌리산업은 평균적으로 영업이익의 33.3%(2022년 기준)를 전기요금으로 지출한다.

양찬회 중기중앙회 혁신성장본부장은 “뿌리기업은 대기업과 마찬가지로 전기요금 인상폭이 가장 큰 산업용 요금을 적용받아 경영 압박이 크다”고 지적했다.

11월 전기요금 폭탄 현실로…뿌리기업 '비상'
한달새 ㎾h당 165원→182원…中企 발목잡는 '피크요금제'

경남 밀양에 있는 뿌리기업 삼흥열처리가 올해 11월분까지 낸 전기요금 총액은 100억8934만원이다. 12월분까지 감안하면 올 한 해 전기료는 110억원을 넘는다. 올해 예상 매출의 43%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75억8871만원을 낸 2년 전에 비해 올해 35억원 이상을 더 내야 한다. 황현기 삼흥열처리 부사장은 “주변에 매출의 50% 이상을 전기료로 내는 업체가 적지 않다”고 토로했다.

○ ‘전기료 폭탄’에 패닉

"200억 벌면, 전기료가 100억…공장 돌릴수록 손해"
16일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전력에 따르면 산업용 전기요금은 2022년 4월부터 지금까지 일곱 차례에 걸쳐 ㎾h당 평균 65.8원 인상됐다. 인상률은 62.4%에 이른다. 산업용 전기요금은 중소기업이 주로 쓰는 산업용(갑)에 비해 대기업 대상의 산업용(을) 인상 폭이 더 컸다. 가장 최근인 지난달 24일 ㎾h당 평균 165.8원이던 산업용(을) 요금 판매단가는 182.7원으로 뛰었다. 전기 사용량이 많은 뿌리기업은 대기업과 같은 산업용(을) 요금을 적용받아 더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쇳물을 녹이기 위해 전기로를 돌려야 하는 주물업계의 부담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김포 양촌의 한국기전금속은 지난 10월 337t의 주조 제품(후란 공법)을 생산하면서 1억2127만원의 전기요금을 냈지만, 11월엔 128t 생산에 1억3114만원의 전기요금이 청구됐다. 매출 대비 전기요금 비중은 10월 14.6%에서 11월 38.6%로 급증했다. 김동현 한국기전금속 대표는 “같은 동절기인 작년 11월과 비교해도 전기 사용량은 엇비슷한데 전기료는 1000만원 이상 더 나왔다”며 “일감은 줄고 있는데 영세한 주물업계는 전기요금 부담이 너무 커 심각한 상황”이라고 혀를 찼다.

○ “피크 요금제도 불합리해”

중소기업계에선 가파른 전기료 인상뿐 아니라 현행 전기료 체계에 대한 불만도 확산되고 있다. 연중 최대 전력(피크)을 기준으로 기본요금을 부과하는 ‘피크 연동제’가 대표적이다. 피크 연동제는 오전 8시부터 오후 11시까지 15분 간격으로 계측되는 최대 수요 전력계에 최대 전력이 기록되면 그때부터 기본요금으로 연동돼 부과되는 방식이다. 한번 정해진 기본요금은 1년간 전기 사용량이 줄어도 내려가지 않는다. 김 대표는 “주문량이 갑자기 늘어날 땐 전기로를 더 많이 돌려야 하지만 피크 요금제가 무서워 생산 일정을 억지로 늦추는 일이 다반사”라고 하소연했다.

계절과 시간에 따라 다른 요금 체계도 기업에 불리한 구조라고 입을 모았다. 예컨대 시간대별 요금(경·중간·최대부하) 중 공장 가동이 집중되는 오전 11~12시, 오후 1~6시에 요금이 가장 비싼 최대부하가 적용된다. 이종길 한국금속열처리공업협동조합 전무는 “제조업은 계절이나 시간과 사실상 무관하게 움직이는 산업”이라며 “산업용 전력의 생산 단가가 주택용보다 훨씬 낮은 만큼 요금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재혁 한국재정학회 연구위원은 “산업계의 전력 수요를 고려해 계절과 시간대별 요금을 합리적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 전력 저감 설비도 무용지물

뿌리업계는 절전 설비 도입 등 자구책을 동원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삼흥열처리는 전기 사용량을 줄이기 위해 2019년부터 내화벽돌을 사용하고 고효율 변압기로 교체하는 등 40억원가량을 쏟아부었다. 황 부사장은 “전기요금이 너무 급격히 올라 실질적인 개선 효과는 1~2%에 그치는 것 같다”고 했다. 홍준석 한국기전금속 생산부 차장은 “전력 수요 관리 프로그램 등을 도입했지만 결국 생산에 차질을 빚어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제조업의 근간인 뿌리산업 경쟁력을 지키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라정주 파이터치연구원 원장은 “정부가 최저임금을 급격하게 올려 부작용을 낳았듯 산업용 전기요금도 가파르게 현실화하니 기업들이 적응하기가 버거운 것”이라며 “소프트랜딩을 고려한 점진적인 요금 체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정선 중기선임기자 leew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