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 난타당한 민생부터 챙긴다…카드수수료 인하·상생금융 속도
정부가 전세대출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적용을 내년 이후로 연기한 것은 지방 건설·부동산을 필두로 한 내수 침체가 그만큼 심각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가계대출 관리는 당분간 은행 자율에 맡긴다는 게 금융당국의 방침이다. 정부는 영세·중소 가맹점의 신용카드 수수료율 인하, 소상공인 대상 이자 환급 등 서민 지원 정책 등도 예정대로 추진해 민생 안정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방침이다.

○ 대출 문턱 다시 낮추는 은행권

16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올해 업무계획에 포함돼 있던 전세대출의 DSR 적용 시기를 내년 이후로 연기했다. 디딤돌 등 정책대출을 DSR에 포함하기 위한 관계 부처 간 협의도 중단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전세 및 정책대출을 DSR 적용 대상에 넣는 것은 중장기 추진 과제”라며 “지금은 우선 시장 상황에 따라 대응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최근 가계부채 증가세는 다소 꺾였다. 주요 은행이 연말 가계대출 관리에 들어가면서다. 지난 11월 가계대출 증가액은 전월 대비 1조4000억원 감소한 5조1000억원으로 집계됐다. 내수 침체와 탄핵 정국이 맞물려 내년 상반기까지는 안정세가 유지될 것으로 당국은 보고 있다.

금융당국의 정책 기조 변화에 맞춰 시중은행들도 가계대출 재개를 준비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내년 1월부터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확대하고 분양주택 전세대출 취급도 재개하기로 했다. 은행권에서 가장 까다롭게 대출을 취급하던 신한은행이 먼저 나서자 다른 은행들도 문턱을 낮추는 방안을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은 가계대출 관리를 당분간 은행권 자율규제 중심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우선 내년 초 전세자금대출 보증보험의 보증 비율을 내려 은행의 자발적 심사 강화를 유도한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와 SGI서울보증이 100%, 한국주택금융공사(HF)가 90%인 전세자금대출 보증 비율을 각각 80%로 내리는 방안이다.

○ “시장안정 위해 일관된 정책 추진”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이날 확대간부회의에서 “시장 신뢰를 얻고 대외신인도를 유지하기 위해 시장 안정 노력과 함께 일관된 정책 추진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금융위는 이르면 17일 영세·중소가맹점 우대수수료율 인하 등 2025년 카드 수수료 개편 방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금융당국과 카드업계는 2012년부터 3년 주기로 수수료를 조정해왔다. 2021년 조정에선 연 매출 3억원 미만 영세가맹점의 수수료율이 0.8%에서 0.5%로, 3억~30억원 중소가맹점은 1.3~1.6%에서 1.1~1.5%로 내려갔다. 연간 7000억원 규모의 수수료 감면 효과가 나타났다.

업계에선 이번에도 2021년과 비슷한 수준의 경감이 이뤄질 것으로 본다. 다만 소상공인이 혜택을 받는 만큼 카드사는 손실을 보는 구조다. 업계는 재산정 주기를 3년에서 5년으로 늘리거나 주기를 부정기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는 또 소상공인 채무조정 등의 내용이 담긴 ‘민생금융 시즌2’를 차질 없이 진행하기로 했다. 내년 초부터 실질적 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이달 안에 은행권과 협의를 마친다는 계획이다. 금융권의 지원 규모도 함께 도출한다.

금융위는 우선 은행권이 경기 침체로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에게 금리 감면 등 맞춤형 채무조정을 제공하도록 유도할 방침이다. 또 연체가 발생하지 않은 소상공인이라도 부담 없이 사업을 접을 수 있도록 기존 대출의 저금리·장기 분할 상환 프로그램을 도입할 예정이다.

재기 의지가 강한 소상공인에게는 추가 대출이 공급될 수 있도록 보증기관과 협의해 ‘상생 보증·대출’도 새로 마련할 계획이다. 주거래은행이 소상공인에게 실질적 상권 분석 등을 제공하는 1 대 1 컨설팅 프로그램도 만들겠다는 게 금융위의 방침이다.

금융당국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사업장 구조조정, 시중은행의 중소 조선사에 대한 선수금 환급보증(RG) 발급 등 주요 정책도 정치 상황 변화와 상관없이 추진한다.

강현우/정의진/최한종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