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두왕 갓물주, 금쪽 같은 외아들 덕분에...그렇게 '대가족'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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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우석 감독 영화 <대가족> 리뷰
삼청동의 노포 만두 맛집에는 늘 긴 행렬이 즐비하다. 행렬을 지나 손님이 북적거리는 내부로 들어가면 한 골방 귀퉁이에서 만두는 빚는 노인이 있다. 노인은 텔레비전에 나오는 한 젊은 스님의 일장 연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한참 동안 화면을 응시하다가 그는 무엇에 화가 난 듯, 텔레비전을 꺼버리고는 다시 만두를 빚는 일에 열중한다.
넉넉하게 빚은 이북식 만두와 그를 애타게 기다리는 손님들의 표정으로 시작되는 이 영화는 2000년대 중반에 유행했던 <식객> 시리즈(전윤수, 백동훈, 2007, 2010)나 <된장> (이서군, 2007) 등의 음식 영화를 연상하게 하지만 사실상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양우석 감독의 <대가족>은 전쟁 이후 자수성가로 살아남은 이북 출신의 ‘무옥’이 뜻하지 않은 가족을 만나게 되면서 펼쳐지는 가족 드라마 영화다.
허름한 외관을 가졌지만 사실 이 만두집, ‘평만옥’의 사장 ‘무옥’(김윤석)은 수백억이 넘는 빌딩을 몇 개나 소유한 자산가다. 재산으로는 부족한 것이 없지만, 그는 승려를 선언하고 출가해버린 외아들 ‘문석’(이승기)으로 인해 집 안의 대가 끊겨 근심이 가득하다. 늘 문석을 향한 원망과 끊겨 버린 가문에 대한 걱정으로 세월을 보내던 어느 날, 그는 기쁜 소식을 마주한다. 한 소년이 그의 어린 여동생과 함께 문석이 자신의 생물학적 아버지라며 평만옥으로 찾아온 것이다. 드디어 필생의 한을 풀게 된 문석은 잔치를 벌이고, 난데없이 아버지가 된 스님, 문석은 과거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변호인>, <강철비 1>, <강철비 2> 등의 작품으로 한국의 현대사를 조명하는 프로젝트를 이어왔던 양우석 감독은 이번 <대가족>으로(연출과 각본 모두를 담당했다) 장르적, 그리고 주제적인 면에서 작지 않은 변신을 시도한다. 영화는 2000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이러한 시대적 설정은 앞서 언급한 그의 과거 작품들에서처럼 정치적인 배경보다는 캐릭터들의 소품, 즉 핸드폰의 모델이나 그 밖의 기술적인 설정 이상의 의미를 전달하는 데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배경이 굳이 2000년이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양우석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20세기이면서 동시에 21세기가 되는 2000년이라는 상징을 통해 가족의 의미를 찾아보고 싶었다”고 밝힌 바 있다. 따라서 영화의 시간적 설정은 이야기의 주제적 측면과 맞닿아 있는 요소이자 과거를 통해 미래(의 가족 시스템을)를 그린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부분일 것이다. 영화의 시간적 배경에 주목하는 이유는 낡은 가족 시스템의 대안을 제시하는 듯한 이 영화가 사실상 2000년보다도 더 구태의연한 방식으로 가족의 의미를 그린다는 역설 때문이다.
예컨대 스님이 된 문석에게 아들이 있었던 이유는 과거 그가 사귀었던 여자친구의 아버지이자 그의 의대 스승으로 인해 강제로 했던 정자 기증 때문이었고, 이에 따라 그는 이미 500명이 넘는 자손이 생긴 상태다. 동시에 드러나는 반전은 그의 아들이라고 찾아온 ‘민국’도 그의 친자가 아니고, 그의 과거 여자친구가 키우고 있던(그의 정자로 시술했다고 믿었던) 딸도 문석의 친자가 아닌 것으로 밝혀지면서다. 이는 모두 정자 기증에 지친 문석이 중국집 배달원에게 돈을 주고 대신 정자 기증을 하게 만들면서 생긴 해프닝이다. 궁극적으로 영화의 에피소드들이 전달하고 있는 메시지, 즉 가부장제와 혈연에 집착하는 전통에 대한 비판은 2000년에도 90년대에도 있을 수 없는, 혹은 있어서도 안 되는 구시대적인 사고(事故)로 전달되는 것이다.
영화는 문옥이 문석과 혈연적으로 상관도 없는 이 두 아이의 입양을 결정하면서 해피 엔딩을 맞는다. 동시에 영화의 에필로그는 문옥이 이후에도 십수 명의 아이들을 입양해서 함씨 가문에 올렸다는 동화적인 디테일을 더한다. 결론적으로 영화는 혈연에 집착하는 가부장제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해서 새로운 형태의 가부장제 탄생으로 끝을 맺는 것이다. 앞서 인용한 감독의 언급처럼, <대가족>은 20세기와 21세기가 혼재한 영화다. 이는 영화가 바라보는 가족 제도에 대한 어설픈 언급과 비전으로도 그러하거니와 이를 위해 만들어 낸 코미디적인 설정들 역시 그러하다. 사회적인 연대와 가족주의를 균형 있게 그린 양우석 감독의 전작, <변호인>을 떠올리면 더더욱 아쉬운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영화 '대가족' 메인 예고편]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
허름한 외관을 가졌지만 사실 이 만두집, ‘평만옥’의 사장 ‘무옥’(김윤석)은 수백억이 넘는 빌딩을 몇 개나 소유한 자산가다. 재산으로는 부족한 것이 없지만, 그는 승려를 선언하고 출가해버린 외아들 ‘문석’(이승기)으로 인해 집 안의 대가 끊겨 근심이 가득하다. 늘 문석을 향한 원망과 끊겨 버린 가문에 대한 걱정으로 세월을 보내던 어느 날, 그는 기쁜 소식을 마주한다. 한 소년이 그의 어린 여동생과 함께 문석이 자신의 생물학적 아버지라며 평만옥으로 찾아온 것이다. 드디어 필생의 한을 풀게 된 문석은 잔치를 벌이고, 난데없이 아버지가 된 스님, 문석은 과거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변호인>, <강철비 1>, <강철비 2> 등의 작품으로 한국의 현대사를 조명하는 프로젝트를 이어왔던 양우석 감독은 이번 <대가족>으로(연출과 각본 모두를 담당했다) 장르적, 그리고 주제적인 면에서 작지 않은 변신을 시도한다. 영화는 2000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이러한 시대적 설정은 앞서 언급한 그의 과거 작품들에서처럼 정치적인 배경보다는 캐릭터들의 소품, 즉 핸드폰의 모델이나 그 밖의 기술적인 설정 이상의 의미를 전달하는 데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배경이 굳이 2000년이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양우석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20세기이면서 동시에 21세기가 되는 2000년이라는 상징을 통해 가족의 의미를 찾아보고 싶었다”고 밝힌 바 있다. 따라서 영화의 시간적 설정은 이야기의 주제적 측면과 맞닿아 있는 요소이자 과거를 통해 미래(의 가족 시스템을)를 그린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부분일 것이다. 영화의 시간적 배경에 주목하는 이유는 낡은 가족 시스템의 대안을 제시하는 듯한 이 영화가 사실상 2000년보다도 더 구태의연한 방식으로 가족의 의미를 그린다는 역설 때문이다.
예컨대 스님이 된 문석에게 아들이 있었던 이유는 과거 그가 사귀었던 여자친구의 아버지이자 그의 의대 스승으로 인해 강제로 했던 정자 기증 때문이었고, 이에 따라 그는 이미 500명이 넘는 자손이 생긴 상태다. 동시에 드러나는 반전은 그의 아들이라고 찾아온 ‘민국’도 그의 친자가 아니고, 그의 과거 여자친구가 키우고 있던(그의 정자로 시술했다고 믿었던) 딸도 문석의 친자가 아닌 것으로 밝혀지면서다. 이는 모두 정자 기증에 지친 문석이 중국집 배달원에게 돈을 주고 대신 정자 기증을 하게 만들면서 생긴 해프닝이다. 궁극적으로 영화의 에피소드들이 전달하고 있는 메시지, 즉 가부장제와 혈연에 집착하는 전통에 대한 비판은 2000년에도 90년대에도 있을 수 없는, 혹은 있어서도 안 되는 구시대적인 사고(事故)로 전달되는 것이다.
영화는 문옥이 문석과 혈연적으로 상관도 없는 이 두 아이의 입양을 결정하면서 해피 엔딩을 맞는다. 동시에 영화의 에필로그는 문옥이 이후에도 십수 명의 아이들을 입양해서 함씨 가문에 올렸다는 동화적인 디테일을 더한다. 결론적으로 영화는 혈연에 집착하는 가부장제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해서 새로운 형태의 가부장제 탄생으로 끝을 맺는 것이다. 앞서 인용한 감독의 언급처럼, <대가족>은 20세기와 21세기가 혼재한 영화다. 이는 영화가 바라보는 가족 제도에 대한 어설픈 언급과 비전으로도 그러하거니와 이를 위해 만들어 낸 코미디적인 설정들 역시 그러하다. 사회적인 연대와 가족주의를 균형 있게 그린 양우석 감독의 전작, <변호인>을 떠올리면 더더욱 아쉬운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영화 '대가족' 메인 예고편]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