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 앞둔 조너선과 도쿄심포니...음악으로 보여준 12년의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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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콘서트오페라 '장미의 기사'
12월 13일 도쿄 산토리홀에서 공연
조너던 노트 지휘 아래 깊은 음악적 해석 선보여
가수·오케스트라·연출이 빚어낸 완벽한 무대
3시간 넘는 열연에 관객들 뜨거운 기립박수
12월 13일 도쿄 산토리홀에서 공연
조너던 노트 지휘 아래 깊은 음악적 해석 선보여
가수·오케스트라·연출이 빚어낸 완벽한 무대
3시간 넘는 열연에 관객들 뜨거운 기립박수
2023년 도쿄에서 가장 좋았던 클래식 공연은 무엇이었을까? 일본의 클래식 매거진 <음악의 벗>은 매해 평론가 및 관계자가 모여 최고의 공연을 꼽는다. 2023년 <음악의 벗>은 상임지휘자 조너선 노트가 지휘한 도쿄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슈트라우스 ‘엘렉트라’를 도쿄 최고의 공연으로 꼽았다.
콘서트 오페라 ‘장미의 기사’는 그런 이유로 2024년 도쿄에서 가장 주목받는 공연이었다. 2022년 11월 ‘살로메’, 2023년 5월 ‘엘렉트라’의 뒤를 잇는, 도쿄심포니가 진행해온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콘서트 오페라 3부작의 마지막 공연이었기 때문이다. 은장미의 향기까지 표현한 노트의 ‘장미의 기사’
지난 12월 13일 도쿄 산토리홀에서 마침내 ‘장미의 기사’가 무대 위에 펼쳐졌을 때, 무대를 시작하는 음악부터 모두가 이 공연에 얼마나 진심인지 알 수 있었다. 지휘자의 섬세한 조정을 통해, 다층적인 레이어가 입체적으로 솟아올랐다. 모든 주제들이 선명하게 부각되고, 한순간도 그냥 흘려보내는 음악이 없었다. 단원들도 이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음악에 익숙해진 듯 편안하게 음악을 소화하고 있었다. 3부작을 함께한 결과였다.
화려한 가수 라인업도 공연의 완성도를 높였다. 옥타비안 역은 카트리오나 모리슨(Catriona Morison), 마르샬린은 미아 페르손(Miah Persson), 소피 역할로 엘사 베노이트(Elsa Benoit) 그리고 옥스는 알베르트 페젠도르퍼(Albert Pesendorfer)가 맡았다. 1막의 마지막 장면에서 오케스트라가 최소화되고, 가수들이 오페라의 흐름을 이끌어 가야 하는 순간이 찾아오자, 그들의 개인 기량은 더욱 빛을 발했다. 모두 짙은 호소력과 전달력으로 ‘장미의 기사’를 완성해 나가고 있었다. 특히 미아 페르손이 시간의 덧없음을 노래하는 순간엔 객석의 관객들이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오케스트라도 이에 질세라 마법 같은 순간들을 만들어 냈다. 2막에서 은장미의 빛나는 모습이 묘사될 땐, 매 음표마다 빛깔이 달라졌다. 은장미는 때로는 화려하게 때로는 부드럽게 빛났다. 이런 디테일 하나하나까지 신경 쓸 정도의 음악이니, 여러 모티브들이 뒤섞이는 장면에서는 일류 오케스트라나 보여줄 법한 앙상블이 만들어졌다. 장면 사이에 매듭이 없다고 느껴질 만큼 전환이 매끄러웠고, 음악의 시적인 운율도 절대 놓치지 않았다. 여기에 조너던 노트 특유의 이지적인 해석까지 더해져, 지적인 흥분으로 가득한 공연이 되었다. 가장 유명한 2막의 왈츠 장면 역시 비엔나 특유의 왈츠 리듬이 잘 살아났다. 오케스트라가 마치 춤을 추듯 한몸처럼 움직였다. 마지막으로 세 명의 가수가 함께하는 파이널 트리오에서는 완벽한 밸런스의 음악을 보여주었다. 조너던 노트는 그 순간의 극적인 요소를 강조하기보다, 자연스러운 음악적 흐름을 훨씬 중요하게 생각했다. 세 명의 가수가 성량을 섬세하게 조정해 노래를 불러, 각기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노래가 모두 한 귀에 조화롭게 들렸다. 3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이지만, 놀랍게도 마지막 순간까지 모두들 흐트러짐이 없었다. 덕분에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음악이 얼마나 복잡한지, 또 그 복잡한 음악 안에 얼마나 큰 아름다움이 숨겨져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콘서트 오페라 한계 뛰어넘은 연출
토머스 앨런의 연출도 돋보였다. 콘서트 오페라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치밀했다. 애초에 콘서트 오페라 장르는 가수와 오케스트라가 무대를 함께 공유해야 하기 때문에 철저한 계산을 필요로 한다. ‘살로메’와 ‘엘렉트라’와는 달리, 콘서트 버전의 ‘장미의 기사’는 소품도 많고 출연진도 많다. 당연히 동선도 복잡해지고, 무대 위 단원들이 즉흥적으로 드라마를 만들기가 어렵다. 심지어 산토리홀은 활용할 수 있는 문도 좌우 두 개뿐이다. 이처럼 제한된 조건 하에서도 토머스 앨런은 아주 경제적인 동선을 선보였다. 각 등장인물들의 이야기와 동선이 치밀하게 조율되어 누구도 주변적인 역할이 없었다. 모든 연출 하나하나가 의미 있었으며, 마치 퍼즐의 조각처럼 어느 하나도 버릴게 없었다. 음악도 훌륭했지만, 뛰어난 연출로 콘서트 오페라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었던 점도 의미 있는 포인트였다. 마침내 공연이 모두 끝나고, 관객들은 뜨거운 환호를 보냈다. 가수와 지휘자, 단원들까지 모두가 주인공이었다. 15분이 넘게 커튼콜이 이어졌다. 관객들이 퇴장할 수 있도록 산토리홀의 불이 켜졌지만, 박수는 멈출 줄을 몰랐다. 출연진이 모두 무대에서 퇴장했음에도 관객들의 환호는 이어졌다. 결국 가수와 지휘자는 무대에 다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일본의 관객들은 자신들이 받은 감동에 솔직했다.
분명 조너던 노트는 이날 밤 그런 생각을 했을 것 같다. 오늘의 도쿄 심포니는 밤베르크 심포니나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보다 잘했다고(두 단체 모두 조너던 노트가 오랜 기간 함께했던 곳이다). 실제로 이 연주는 어지간한 유럽 오케스트라보다도 수준이 높았다. 마치 지난 월드컵 때 일본 국가대표팀의 모습 같았다. 오랜 시간 갈고닦은 조직력으로 유럽의 강호인 독일과 스페인을 격파했을 때의 모습이었다. 2022년의 월드컵이 지금까지 회자되 듯 마찬가지로 도쿄 심포니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콘서트 오페라도 오랜 시간 기억될 것이다.
나의 자랑스러운 도쿄 음악가들
조너던 노트는 이번 시즌(2025~2026시즌)을 마지막으로 도쿄 심포니를 떠난다. 지난 12년간의 여정을 마무리하는 것이다. ‘장미의 기사’의 마지막 트리오 장면이 조금 특별하게 들린 것도 그 이유다. 마르샬린은 자신이 사랑한 옥타비안을 놓아준다. 그만큼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옥타비안은 마르샬린을 떠나 소피와 새로운 사랑을 찾는다. ‘지금 주어진 행복한 순간에 과연 영원한 시간이 깃들어 있는가?’ 작품이 우리에게 던지는 주제기도 하다.
조너던 노트는 이 음악을 지휘하면서 도쿄 심포니를 떠올렸을 것이다. 이별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가사기 때문이다. 도쿄 심포니의 단원들 역시 마찬가지다. 단원들에게도 마지막 트리오는 작품 속 줄거리 그 이상이었을 것이다. 도쿄 심포니와 조너던 노트는 그만큼 특별한 사이다. 개인적으론 이들의 애정을 단번에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 있었다. 바로 2023년 9월, 도쿄 심포니 오케스트라 SNS에서였다. 이들은 베를린필 SNS 채널에 올라온 조너던 노트 영상을 공유했다.
공유된 영상은 조너던 노트가 베를린필과 함께할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상이었다. 도쿄 심포니는 이 영상을 공유하며, 다름 아닌 조너던 노트가 영상 속에서 입고 있는 옷을 이야기했다. ‘지금 우리 상임 지휘자가 입고 있는 외투는 지난 7월에 도쿄에서 구입한 외투다. 정말로 아끼는 최애 외투라 공연이 끝나고 사인회 때마다 입는다’. 물론 긴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그들의 진심이 느껴졌다. 조너던 노트는 정말로 사랑받는 상임 지휘자구나. 10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 한다는 것은 이처럼 일상을 공유한다는 의미였다.
사실 도쿄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조너던 노트의 관계는 모두가 꿈꾸는 이상적인 관계다. 여기서 이상적인 관계란 서로가 서로의 성장을 돕는 관계다. 지휘자와 오케스트라가 파트너가 되어 함께 성장하는 것이다. 과거에 마리스 얀손스와 오슬로 필하모닉이 그랬고, 사이먼 래틀과 버밍엄 시티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그런 것처럼 말이다. 지휘자와 오케스트라가 오랜 시간 의미 있는 교감을 나눈다면, 이처럼 서로가 꿈꿔보지 못한 영역까지 나아간다.
이제 이번 시즌 조너던 노트는 말러 교향곡 9번으로 이들과 이별한다. 조너던 노트는 지난 시간들을 회상하며 진심을 다해 소회를 전했다.
‘우리 모두가 인간이라는 부족한 존재지만, 함께 하는 순간만큼은 더 높은 예술의 경지를 탐험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도쿄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할 때마다 항상 느꼈던 감정입니다. 지난 12년 동안 긴 항해를 함께 해온 나의 도쿄 음악가들이 무척 자랑스럽습니다. 아마 이들과 함께하면서 가장 많이 배운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었을 겁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도쿄=허명현 음악칼럼니스트
콘서트 오페라 ‘장미의 기사’는 그런 이유로 2024년 도쿄에서 가장 주목받는 공연이었다. 2022년 11월 ‘살로메’, 2023년 5월 ‘엘렉트라’의 뒤를 잇는, 도쿄심포니가 진행해온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콘서트 오페라 3부작의 마지막 공연이었기 때문이다. 은장미의 향기까지 표현한 노트의 ‘장미의 기사’
지난 12월 13일 도쿄 산토리홀에서 마침내 ‘장미의 기사’가 무대 위에 펼쳐졌을 때, 무대를 시작하는 음악부터 모두가 이 공연에 얼마나 진심인지 알 수 있었다. 지휘자의 섬세한 조정을 통해, 다층적인 레이어가 입체적으로 솟아올랐다. 모든 주제들이 선명하게 부각되고, 한순간도 그냥 흘려보내는 음악이 없었다. 단원들도 이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음악에 익숙해진 듯 편안하게 음악을 소화하고 있었다. 3부작을 함께한 결과였다.
화려한 가수 라인업도 공연의 완성도를 높였다. 옥타비안 역은 카트리오나 모리슨(Catriona Morison), 마르샬린은 미아 페르손(Miah Persson), 소피 역할로 엘사 베노이트(Elsa Benoit) 그리고 옥스는 알베르트 페젠도르퍼(Albert Pesendorfer)가 맡았다. 1막의 마지막 장면에서 오케스트라가 최소화되고, 가수들이 오페라의 흐름을 이끌어 가야 하는 순간이 찾아오자, 그들의 개인 기량은 더욱 빛을 발했다. 모두 짙은 호소력과 전달력으로 ‘장미의 기사’를 완성해 나가고 있었다. 특히 미아 페르손이 시간의 덧없음을 노래하는 순간엔 객석의 관객들이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오케스트라도 이에 질세라 마법 같은 순간들을 만들어 냈다. 2막에서 은장미의 빛나는 모습이 묘사될 땐, 매 음표마다 빛깔이 달라졌다. 은장미는 때로는 화려하게 때로는 부드럽게 빛났다. 이런 디테일 하나하나까지 신경 쓸 정도의 음악이니, 여러 모티브들이 뒤섞이는 장면에서는 일류 오케스트라나 보여줄 법한 앙상블이 만들어졌다. 장면 사이에 매듭이 없다고 느껴질 만큼 전환이 매끄러웠고, 음악의 시적인 운율도 절대 놓치지 않았다. 여기에 조너던 노트 특유의 이지적인 해석까지 더해져, 지적인 흥분으로 가득한 공연이 되었다. 가장 유명한 2막의 왈츠 장면 역시 비엔나 특유의 왈츠 리듬이 잘 살아났다. 오케스트라가 마치 춤을 추듯 한몸처럼 움직였다. 마지막으로 세 명의 가수가 함께하는 파이널 트리오에서는 완벽한 밸런스의 음악을 보여주었다. 조너던 노트는 그 순간의 극적인 요소를 강조하기보다, 자연스러운 음악적 흐름을 훨씬 중요하게 생각했다. 세 명의 가수가 성량을 섬세하게 조정해 노래를 불러, 각기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노래가 모두 한 귀에 조화롭게 들렸다. 3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이지만, 놀랍게도 마지막 순간까지 모두들 흐트러짐이 없었다. 덕분에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음악이 얼마나 복잡한지, 또 그 복잡한 음악 안에 얼마나 큰 아름다움이 숨겨져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콘서트 오페라 한계 뛰어넘은 연출
토머스 앨런의 연출도 돋보였다. 콘서트 오페라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치밀했다. 애초에 콘서트 오페라 장르는 가수와 오케스트라가 무대를 함께 공유해야 하기 때문에 철저한 계산을 필요로 한다. ‘살로메’와 ‘엘렉트라’와는 달리, 콘서트 버전의 ‘장미의 기사’는 소품도 많고 출연진도 많다. 당연히 동선도 복잡해지고, 무대 위 단원들이 즉흥적으로 드라마를 만들기가 어렵다. 심지어 산토리홀은 활용할 수 있는 문도 좌우 두 개뿐이다. 이처럼 제한된 조건 하에서도 토머스 앨런은 아주 경제적인 동선을 선보였다. 각 등장인물들의 이야기와 동선이 치밀하게 조율되어 누구도 주변적인 역할이 없었다. 모든 연출 하나하나가 의미 있었으며, 마치 퍼즐의 조각처럼 어느 하나도 버릴게 없었다. 음악도 훌륭했지만, 뛰어난 연출로 콘서트 오페라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었던 점도 의미 있는 포인트였다. 마침내 공연이 모두 끝나고, 관객들은 뜨거운 환호를 보냈다. 가수와 지휘자, 단원들까지 모두가 주인공이었다. 15분이 넘게 커튼콜이 이어졌다. 관객들이 퇴장할 수 있도록 산토리홀의 불이 켜졌지만, 박수는 멈출 줄을 몰랐다. 출연진이 모두 무대에서 퇴장했음에도 관객들의 환호는 이어졌다. 결국 가수와 지휘자는 무대에 다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일본의 관객들은 자신들이 받은 감동에 솔직했다.
분명 조너던 노트는 이날 밤 그런 생각을 했을 것 같다. 오늘의 도쿄 심포니는 밤베르크 심포니나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보다 잘했다고(두 단체 모두 조너던 노트가 오랜 기간 함께했던 곳이다). 실제로 이 연주는 어지간한 유럽 오케스트라보다도 수준이 높았다. 마치 지난 월드컵 때 일본 국가대표팀의 모습 같았다. 오랜 시간 갈고닦은 조직력으로 유럽의 강호인 독일과 스페인을 격파했을 때의 모습이었다. 2022년의 월드컵이 지금까지 회자되 듯 마찬가지로 도쿄 심포니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콘서트 오페라도 오랜 시간 기억될 것이다.
나의 자랑스러운 도쿄 음악가들
조너던 노트는 이번 시즌(2025~2026시즌)을 마지막으로 도쿄 심포니를 떠난다. 지난 12년간의 여정을 마무리하는 것이다. ‘장미의 기사’의 마지막 트리오 장면이 조금 특별하게 들린 것도 그 이유다. 마르샬린은 자신이 사랑한 옥타비안을 놓아준다. 그만큼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옥타비안은 마르샬린을 떠나 소피와 새로운 사랑을 찾는다. ‘지금 주어진 행복한 순간에 과연 영원한 시간이 깃들어 있는가?’ 작품이 우리에게 던지는 주제기도 하다.
조너던 노트는 이 음악을 지휘하면서 도쿄 심포니를 떠올렸을 것이다. 이별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가사기 때문이다. 도쿄 심포니의 단원들 역시 마찬가지다. 단원들에게도 마지막 트리오는 작품 속 줄거리 그 이상이었을 것이다. 도쿄 심포니와 조너던 노트는 그만큼 특별한 사이다. 개인적으론 이들의 애정을 단번에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 있었다. 바로 2023년 9월, 도쿄 심포니 오케스트라 SNS에서였다. 이들은 베를린필 SNS 채널에 올라온 조너던 노트 영상을 공유했다.
공유된 영상은 조너던 노트가 베를린필과 함께할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상이었다. 도쿄 심포니는 이 영상을 공유하며, 다름 아닌 조너던 노트가 영상 속에서 입고 있는 옷을 이야기했다. ‘지금 우리 상임 지휘자가 입고 있는 외투는 지난 7월에 도쿄에서 구입한 외투다. 정말로 아끼는 최애 외투라 공연이 끝나고 사인회 때마다 입는다’. 물론 긴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그들의 진심이 느껴졌다. 조너던 노트는 정말로 사랑받는 상임 지휘자구나. 10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 한다는 것은 이처럼 일상을 공유한다는 의미였다.
사실 도쿄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조너던 노트의 관계는 모두가 꿈꾸는 이상적인 관계다. 여기서 이상적인 관계란 서로가 서로의 성장을 돕는 관계다. 지휘자와 오케스트라가 파트너가 되어 함께 성장하는 것이다. 과거에 마리스 얀손스와 오슬로 필하모닉이 그랬고, 사이먼 래틀과 버밍엄 시티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그런 것처럼 말이다. 지휘자와 오케스트라가 오랜 시간 의미 있는 교감을 나눈다면, 이처럼 서로가 꿈꿔보지 못한 영역까지 나아간다.
이제 이번 시즌 조너던 노트는 말러 교향곡 9번으로 이들과 이별한다. 조너던 노트는 지난 시간들을 회상하며 진심을 다해 소회를 전했다.
‘우리 모두가 인간이라는 부족한 존재지만, 함께 하는 순간만큼은 더 높은 예술의 경지를 탐험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도쿄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할 때마다 항상 느꼈던 감정입니다. 지난 12년 동안 긴 항해를 함께 해온 나의 도쿄 음악가들이 무척 자랑스럽습니다. 아마 이들과 함께하면서 가장 많이 배운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었을 겁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도쿄=허명현 음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