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세계 클래식 무대에서는 음악계의 굵직한 트렌드를 체감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올해 기념해를 맞은 작곡가들의 작품들도 주목받을 예정이다. 최근 전세계 가장 핫한 피아니스트로 떠오른 임윤찬의 해외 공연을 비롯해 올해 라인업 및 프로그램이 공개된 주요 글로벌 클래식 일정을 <아르떼>가 정리했다.

by_최다은 기자

팬데믹 이후 전세계 공연계는 불가역적 변화를 맞이했다. 디지털 콘서트의 보편화로 시공간 의미는 축소됐으며 아티스트들의 활발해진 유튜브 및 소셜미디어 활동은 이런 흐름을 가속화했다. 이 가운데 스타성과 실력을 동시에 겸비한 젊은 아티스트들이 잇따라 등장하며 클래식의 대중성은 커졌다.

한편에서는 예술의 본질이 다시금 대두되고 있다. 팬데믹 후유증과 러시아·우크라이나 및 중동 지역의 전쟁 등 세계 곳곳에서 고통과 갈등이 지속되면서다. 이는 인간과 삶에 대한 성찰로 이어졌고, 이를 내포할 수 있는 '진지한 예술'의 역할과 의미를 찾는 계기가 됐다. 2025년 세계 클래식 무대는 어떤 음악들로 관객을 찾을까.

유럽·북미 오가는 상반기 임윤찬

클래식의 외연 확장를 말할 때, 피아니스트 임윤찬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가장 최근에 클래식 신드롬을 일으킨 주역이다. 그의 밴 클라이번 콩쿠르 결선 무대 영상은 조회수 1640만회가 넘었고 그가 올해부터 상주음악가로 활동하는 통영국제음악제는 예매를 오픈하자마자 순식간에 표가 동 났다. 지난해에는 영국 그라모폰에서 2개 부문에서 수상했고, 프랑스의 디아파종의 상까지 수상하며 스타성과 실력을 동시에 인정받고 있다.

그래서 임윤찬의 올해 상반기 행보는 초미의 관심사다. 작년 12월 기준 그의 공식 홈페이지에 게재된 일정을 살펴보면 1월 스위스 루체른에서 루체른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2번을 협연으로 시작해 오스트리아 빈, 독일 쾰른을 등에서 연주한다. 2월부터는 안토니오 파파노경이 이끄는 런던 심포니와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 뉴욕 등에서 투어 연주를 한다.

3월에는 북미와 유럽에서 바흐 골드베르그 변주곡을 중심으로 리사이틀이 예정돼 있다. 4월에는 프랑스 파리 피에르 불레즈홀, 오스트리아 빈 콘체르트 하우스, 미국 미시간주 앤하버, 뉴욕 카네기홀 등에서 독주가 이어진다. 그는 골드베르그 변주곡과 함께 작곡가 이하느리의 작품 '...round and velvety-smooth blend...' 등을 프로그램으로 선정했다.

5월에는 베를린과 런던, 각 도시의 상징과도 같은 공연장에서 소팽 협주곡 2번을 협연한다. 베를린 필하모니홀에서 베를린 라디오 심포니와 협연하며, 같은 곡으로 런던 로열 앨버트홀에서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손을 맞춘다.

6월에는 26세의 젊은 나이로 로열콘세트르헤바우(RCO) 음악 감독으로 지명된 클라우스 메켈레와 조우한다. 이들의 무대는 프랑스 파리에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4번을 연주한다. 그간 잘 연주되지 않았던 곡이다. 3번과 2번을 소화한 뒤 4번을 연주하는만큼 임윤찬만의 독보적인 라흐마니노프 해석이 담길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같은 곡으로 일본 지휘자 야마다 카즈키가 이끄는 버밍엄 시티 심포니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이 일본 나고야, 도쿄 등 여러 지역에서 열린다. 7월 열리는 스위스 베르비에 페스티벌에서는 협연, 독주, 스승인 손민수와의 피아노 듀오 등 여러 차례 무대에 선다.

전통과 혁신 아우르는 해외 클래식 축제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 7월 18일~8월 31일

여름 축제 중 그 규모와 대중성 측면에서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독보적이다. 오페라, 연극, 심포니, 실내악, 독주 등 다채로운 클래식 장르를 접하고 싶다면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 제격이다.

모차르트 고향인 작은 도시에서 열리는 이 페스티벌은 올해가 105회째로 약 200회의 공연이 예정돼 있다. 페스티벌의 터줏대감인 세계 최정상급 오케스트라 빈 필하모닉은 로렌조 비오티, 안드리스 넬손스, 리카르도 무티, 야넥 네제 세갱, 프란츠 벨저 뫼스트의 지휘에 맞춰 5번의 연주를 한다. 객원 오케스트라로는 RCO, 베를린필 등 '세계 3대 악단'을 포함한 10곳이 무대에 선다.

축제에서 가장 인기를 끄는 프로그램은 오페라다. 전세계에 스트롱맨(철권통치자) 전성시대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 축제에서는 권력자를 테마로 한 오페라들이 잇따른다. 베르디와 시아리노의 <맥베스>, 로마의 황제 줄리어스 카이사르를 다룬 헨델의 <줄리오 체자레>, 스코틀랜드의 메리 여왕을 다룬 도니제티 <마리아 스튜어르다> 등이 대표적이다.

비발디 음악의 재해석을 보여준 오페라 <호텔 멤피스>도 기대작 중 하나다. 호텔 멤피스는 고대 로마의 서사시 오비드의 '변신 이야기'를 현대의 호텔이라는 배경 속에서 풀어냈다. '파스티치오'라는 독특한 형식으로 구현했는데, 이는 일종의 유기적인 오페라 메들리로 여러 작품의 곡을 발췌해 이어지는 하나의 작품으로 만드는 형태다.

삶과 죽음에 대한 통찰을 담은 프로그램도 눈에 띈다. '하루 아침이 영원이 됐다'는 테마의 공연은 쇤베르크의 'Erwartung'(기대)와 말러의 'Der Abschied'(이별)을 하나로 연결했다. '기대'는 한 여인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으로 고통과 상실을 겪는 내용이며, 말러의 '이별'은 이별을 수용하며 죽음과 삶의 순환 속에서 희망을 발견하는 과정을 음악으로 담았다. 20세기를 대표하는 두 작곡가들의 작품을 연결해 삶과 죽음, 그리고 영원에 대한 주제를 담은 것이다.

이외에도 지난해 세상을 떠난 현대음악 작곡가 피터 외트뵈시의 오페라 <세 자매>를 비롯해 서거 50주년을 맞이한 러시아 교향곡의 대표 주자 쇼스타코비치의 작품들도 들을 수 있다.

[독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 7월 24일~8월 26일

독일 바그너 음악의 정수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의 라인업도 공개됐다. 바이로이트는 평소 조용한 소도시지만, 축제 기간에는 전세계에서 찾아온 오페라 팬들의 활기로 가득찬 도시가 된다. 150년 가까이 바그너 오페라만 공연하며 바그너 가족이 대대로 축제를 운영하고 있다. '그린 힐'이라 불리는 언덕에 있는 공연장 '페스트슈필하우스'가 거점이다. 바그너가 설계에 참여한 이 공연장은 그가 추구한 총체예술을 구현하기에 적합한 구조와 음향으로 유명하다.

그린 힐은 피크닉 장소로 활용된다. 바그너의 작품이 대체로 긴 만큼 각 막 사이에 긴 인터미션이 주어진다. 관객들은 이때 잔디밭에서 음식과 맥주 등을 즐기며 축제 분위기를 즐긴다. 공연은 매일 낮에 시작해 밤까지 이어진다. 쉽게 말해 하루종일 먹고 마시고 공연을 즐기고 토론하는 것이다.

음악계의 혁명가 바그너를 기리는 축제인만큼 '바그너 정신'은 지속된다. <뉘른베르크의 명가수>의 새 프로덕션으로 공식 개막하며 다니엘레 가티가 지휘를, 유럽의 유명 연출가 마티아스 다비즈가 연출을 맡았다. 한국의 베이스 박종민이 포그너 역으로 이번 축제에 데뷔해 여러 차례 무대에 선다.

크리스티안 틸레만은 이번 축제에 복귀한다. 그는 현존 지휘자 중 최고의 바그너 해석자로 꼽히며 2000년 부터 거의 매년 이 축제에서 지휘해왔다. 2015~2020년 축제의 예술감독을 맡기도 했다. 최근 몇년 간은 틸레만의 모습을 볼 수 없었는데, 이번 축제에서 그는 <로엔그린> 무대를 이끈다.

증강현실(AR)을 결합한 오페라 <파르지팔>이 올해도 무대에 오른다. AR이 접목된 파르지팔은 연출가이자 MIT 교수인 제이 샤이브가 제작해 2023년 처음으로 축제에서 선보였다. 이후 기술을 다듬고, 청중의 피드백을 반영해 더 완성된 무대가 꾸며질 것으로 보인다.

[스위스 루체른 페스티벌] : 8월12일~9월 14일

스위스 루체른 지역의 아름다운 호숫가에서 열리는 음악 축제다.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키운 축제로 루체른 문화컨벤션센터(KKL)가 거점이다. 축제는 젊은 음악가들호숫가에서 펼쳐지는 야외 공연과 리카르도 샤이가 축제를 이끌며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가 중심이 돼 축제가 진행된다.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메조 소프라노 엘리나 가랑차의 무대로 개막한다. 사이먼 래틀 경이 이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두 차례 지휘하며 야닉 네제 세갱도 지휘한다. 협연자는 한국 피아니스트 조성진이다.

외부 오케스트라의 초청 공연도 다양하다. 역시나 세계 3대 악단, 프란츠 벨저-뫼스트의 빈 필하모닉, 키릴 페트렌코의 베를린필, 클라우스 메켈레의 RCO가 공연을 하며 바실리 페트렌코가 이끄는 로열필하모닉, 미르가 그라지니테-틸라가 지휘하는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등 유럽 각 지역을 대표하는 단체들의 음악도 감상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 프리덤 오케스트라, 웨스트-이스턴 디반 등 평화의 메시지를 던지는 악단들의 공연도 예정돼 있다.

이와함께 루체른 페스티벌 아카데미(8월 15일~9월 8일)도 열린다. 마스터 클래스, 공연 등을 통해 젊은 음악가들에게 현대 음악에 대한 탐구를 돕는 프로그램으로 축제의 미래지향적 취지에 걸맞는다. 올해는 사운드 엔지니어 겸 작곡가인 마르코 스트로파의 작품과 프랑스 현대음악 작곡가 피에르 불레즈(1925~2016)의 100번째 생일을 기려 그의 작품을 탐구한다. 불레즈는 이 아카데미의 창립자이기도 하다. 이외에도 여러 현대 작곡가들을 공부하며 연주한다. 클래식 음악의 미래를 만들어갈 의미있는 이벤트가 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