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와 행정안전부가 위치한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중앙동. 뉴스1
기획재정부와 행정안전부가 위치한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중앙동. 뉴스1
"추경호(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명예의 전당에서 빼죠. 내란 공범은 별로 닮고 싶지 않은데."

최근 기재부 내부 익명 게시판인 '공감 소통'에 올라온 글이다. 추 전 원내대표는 2022년 5월부터 작년 말까지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을 역임했다. 기재부 직원들은 매년 투표를 거쳐 '닮고 싶은 상사'(닮상)를 뽑는데, 추 전 원내대표는 세 차례 '닮상'에 선정돼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그런 그가 지난 4일 국회의 '12·3 계엄' 해제 표결을 방해해 내란에 동조한 의혹을 받는 만큼 명예의 전당에서 제명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 소추된 가운데 정부 경제팀의 핵심 부처인 기재부가 술렁이고 있다. 전임 부총리에 대한 비판은 물론 현직 고위 간부들에 대한 직원들의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국회 상임위원회 개최로 폭증한 업무량, 인사 시스템에 대한 지적 등이 대표적이다. 계엄과 탄핵 사태로 빚어진 정치적 혼란이 공직 사회로 확대되면서 중심을 잡고 경제를 이끌어가야 할 기재부가 동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17일 정부 부처에 따르면 전날 기재부 '공감 소통'에는 '여러분을 괴롭히는 건 기조실(기획조정실)이 아니라 최상목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게시물 작성자는 "그따위 거를 그따위로 시키고, 해오면 잘했다고 칭찬하는 사람들이 문제"라며 "까래서 깐 기조실 백날 패봐야 아무것도 안 바뀝니다"고 적었다. 게시판에 업무가 지나치게 늘어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지자 "이 같은 현상의 본질적인 원인은 국회 대응 업무를 하는 기조실이 아닌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있다"고 강조한 것이다.

해당 게시글에는 작성자의 취지에 동감하는 댓글이 잇달아 달렸다. 한 직원은 댓글에서 "장·차관이든 실·국·과장이든 백날 현장에 가보라 하지만, 현장 의견은 배제한 채 기분 좋은 말만 발췌해서 보고한다"며 "이런 간부가 포진한 기재부 인사 시스템도 문제가 많다"고 했다. 이밖에 "아부질, 정치질만 하는 간부를 날리자"는 의견도 있었다.

기재부 직원들이 이처럼 불만을 쏟아내는 이유는 누적된 인사 적체에 계엄 사태 이후 업무 강도가 급격히 강해졌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많다. 기재부 안팎에선 "오늘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가 일종의 트리거가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재위 개최를 앞두고 지난 13일 각 실·국에는 일요일인 15일까지 '예상 Q&A를 만들어 제출하라'는 지시가 떨어졌고, 직원들로서는 야근은 물론 주말에도 출근해서 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기재부 사무관은 "직원들은 업무 부담을 줄여주길 원하지만 실제로는 오히려 과장급 선배들이 더 일을 키운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기재부 관계자는 "기재위를 앞두고 예상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을 정리한 마스터 답변을 준비해야 하는데 시간이 모자라다"고 했다. 그는 "윗선에선 예상 질문에 대한 답변 요지를 간결하게 요약해서 정리해주길 원하지만, 사무관들은 설명을 장황하게 써놓는 경우가 많다"며 "문서를 거듭해서 수정하다 보니 간단한 일도 밤 늦게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광식 기자 bume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