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빼닮은 로봇인 휴머노이드의 성능을 가르는 핵심은 크게 세 가지다. 두뇌와 관절 그리고 눈이다. 모든 주변 상황을 종합해 그에 맞는 행동을 지시하는 인공지능(AI) 성능이 좋아야 휴머노이드는 말 그대로 사람처럼 움직일 수 있다. 물론 잘 넘어지지 않고, 운동 반경이 넓고, 손가락도 세밀하게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120兆 광학시장 칼가는 삼성전기…폰·車 넘어 '로봇 눈' 정조준
하지만 아무리 좋은 두뇌와 운동신경을 갖춰도 눈이 나쁘면 그 휴머노이드의 쓰임새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주변 환경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거나 인식하더라도 이미지 데이터 처리 속도가 느리면 로봇 움직임의 정확도와 속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그룹 산하 로봇업체인 보스턴다이내믹스가 범용 카메라 모듈 대신 삼성전기와 손잡고 맞춤형 제품 개발에 나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로봇의 ‘눈’을 잡아라

17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기는 최근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요청에 따라 차세대 ‘아틀라스’에 들어갈 전용 카메라 모듈 개발에 착수했다. 로봇용 카메라 모듈은 최첨단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고화질 이미지는 물론 자동차에 적용되는 어라운드 뷰와 원거리 센싱 기능도 담아야 한다. 그래서 카메라 모듈의 ‘끝판왕’으로 불린다.

테슬라, 피규어AI, 유니트리 등과 함께 글로벌 휴머노이드 시장에서 기술력으로 주목받고 있는 보스턴다이내믹스에 카메라 모듈은 성능 좋은 로봇 개발을 위한 ‘마지막 퍼즐’이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상당한 수준의 두뇌와 운동능력은 갖췄지만 아틀라스 제품 특성에 꼭 맞는 전용 카메라 모듈을 갖지 못해서다. 보스턴다이내믹스는 현재 아틀라스에 인텔의 범용제품인 리얼센스를 장착하고 있다.

이런 보스턴다이내믹스에 삼성전자 갤럭시 스마트폰에 오랜 기간 카메라 모듈을 공급해온 삼성전기는 더할 나위 없는 파트너다. 스마트폰 시장 성장세 둔화와 중국업체의 저가 공세로 새로운 먹거리 찾기에 골몰해온 삼성전기도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제안은 ‘뜨는 시장’에 입성할 절호의 기회다.

휴머노이드는 미래가 약속된 시장이다. 글로벌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글로벌 휴머노이드 시장은 2035년 380억달러(약 51조원)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신시장 뛰어드는 삼성전기

삼성전기가 보스턴다이내믹스와 손잡으면서 글로벌 로봇기업과 카메라모듈 업체 간 합종연횡도 본격화할 전망이다. 테슬라는 현재 삼성전기와 LG이노텍으로부터 자동차용 카메라 모듈 등을 납품받고 있는데, 향후 이들 업체와 공동으로 휴머노이드용 전용 카메라 모듈을 개발할 가능성이 크다고 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피규어AI도 전용 카메라모듈 공급업체를 찾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부가가치 카메라 시장은 로봇, AI, 항공, 우주, 방위산업 등 다방면으로 활용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시장조사기관 폴라리스마켓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343억달러(약 49조원)였던 카메라 모듈 시장 규모는 2030년 825억달러(약 119조원)로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기는 사업 체질 개선 작업에도 속도를 낼 예정이다. 장덕현 삼성전기 사장은 올해 초 핵심 기술인 적층세라믹커패시터(MLCC), 카메라 모듈, 패키지기판 등을 활용해 전장, 로봇, AI·서버, 에너지 등 4대 영역으로 전환하기 위한 ‘미-래(Mi-RAE) 프로젝트’를 선언했다.

올해 미국 반도체 기업에 AI용 고성능 반도체 기판에 필요한 실리콘 커패시터 납품을 추진하고, 웨어러블용 전고체 전지 개발에 성공하는 등 소기의 성과도 냈다.

김채연/박의명 기자 why2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