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공단은 세계 3위의 투자 큰손임에도 최근 수년간 국내 부동산 투자에는 소극적이었다. 2021년 서울 마곡지구 원그로브에 2조3000억원 규모로 투자한 뒤 별다른 실적이 없었다. 그런 국민연금이 내년 역대 최대 규모인 2조원가량을 쏟아붓기로 하자 국내외 투자업계가 비상한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국민연금發 10조 공급 효과…국내 상업용 부동산 '큰장' 선다

○토종 펀드 키우는 국민연금

국민연금이 2조원 안팎의 출자를 하면 위탁 자산운용사 7~9곳이 외부 자금을 구해와 최대 4조원 안팎의 펀드를 조성할 예정이다. 통상 실물 부동산 투자는 에쿼티 40%와 담보 대출 60%로 이뤄진다.

이들 운용사가 4조원짜리 펀드를 만들면 시장엔 총 10조원 규모의 유동성이 공급되는 셈이다. 지난해 상업용 부동산 시장 전체 규모(14조8000억원)에 육박한다.

국민연금의 공격적 펀딩은 이례적이라는 게 투자업계의 해석이다. 2004년 처음 국내 부동산 투자를 시작한 국민연금은 2011년 그랑서울(매입액 1조2000억원), 2016년 스타필드 고양(3800억원), 2018년 센터필드(5000억원) 등 주요 자산을 사들이며 영향력을 확대해오다가 2020년대 들어 고금리가 본격화되자 투자를 확 줄였다. 마곡 원그로브 투자가 마지막이었다. 꾸준히 해오던 부동산 블라인드 출자도 2018년을 끝으로 명맥을 잇지 못했다.

국민연금이 국내 부동산 섹터에 역대 최대 자금을 쏟아붓기로 한 것은 현재 시중에 부동산 에쿼티 자금이 메말라 있다고 판단해서다. 금리가 인하된 데 이어 외국계 투자회사까지 정치적 불확실성 때문에 투자를 줄이자 조단위 출자 사업을 단행할 배경이 갖춰졌다고 판단했다.

○외국계 펀드와 주도권 경쟁 본격화

그동안 한국 부동산 시장은 외국계 투자회사들이 주도해왔다. 교직원공제회, 군인공제회 등 활발하게 투자해오던 국내 기관투자가가 기존에 투자한 자산을 관리하기 위해 주춤하자 외국계 자금이 빠르게 치고 들어왔다. 3250억달러(약 467조원) 규모의 부동산 펀드를 운용하는 블랙스톤은 올해 국내에서 SM그룹 강남 사옥, 김포 물류센터 등을 인수했다. 라살자산운용은 경기 안성 대덕 물류센터 A·B동을 6300억원에 매입했고, 브룩필드도 인천 석남동 물류센터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캐나다연금투자(CPPI)도 한국 시장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다. CPPI는 데이터센터에 1조원 규모의 자금 집행을 추진하고 있다. 상업용 임대주택 시장도 외국계 차지다.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 모건스탠리 등이 국내 임대주택 시장에 진출했다.

이들은 적은 인력으로도 국내 자산운용사가 소싱해 온 자산에 투자해 고수익을 내고 있다. 싱가포르투자청(GIC)이 국내 여러 자산운용사에 출자한 개별관리계정(SMA) 펀드가 대표적이다. GIC는 여러 국내 SMA 운용사들로부터 딜 관련 정보를 취합한 뒤 가장 고수익을 누릴 곳을 점 찍는다.

운용업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은 해외 어느 시장보다도 한국 부동산 시장에 해박한 편임에도 해외 투자에 집중하다가 본진을 해외 경쟁자에게 내준 셈”이라며 “잘 아는 지역에 투자 규모를 늘려 수익을 내려는 목적으로 보인다”고 했다.

○오피스 대신 ‘틈새시장’ 노려

국민연금은 현재 진행 중인 코어 플랫폼 펀드 출자 공고에서 뉴 이코노미 섹터에 30% 이상 투자하도록 명시했다. 오피스 등 전통 자산은 최대 70%로 제한된다. 뉴 이코노미 섹터는 인터넷데이터센터(IDC), 셀프 스토리지 등 새롭게 떠오르는 틈새시장을 말한다.

그동안 핵심 권역 트로피 자산을 선호해왔던 국민연금 전략에서 변화가 생긴 것이다. 국민연금은 굵직굵직한 대형 자산을 매입하고 20년 이상 가져가면 무조건 상당한 수익을 거둘 수 있다고 자신해왔다.

하지만 앞으로는 새롭게 부상하는 섹터에도 적극적으로 투자해 고수익을 노리는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오피스로 편중된 자산을 다각화하려는 취지도 반영됐다.

류병화 기자 hwahw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