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프로비엠 본사./사진=에코프로비엠
에코프로비엠 본사./사진=에코프로비엠
2차전지 대장주 에코프로비엠 주가가 하락일로를 걷고 있다. 지난해 7월 기록한 최고점에 비하면 80%가량 급락했다. 전기차 캐즘(대중화 전 수요 부진)이 길어진 가운데 트럼프 2기 행정부에 대한 우려까지 더해지면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재무구조도 악화하고 있어 투자자들의 근심도 커지고 있다. 중국 업체의 가격 경쟁력을 고려하면 당분간 주가가 뚜렷한 반등 기조로 돌아서기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17일 에코프로비엠은 전날보다 1만원(7.80%) 급락한 11만8200원에 마감해 52주 최저가를 갈아치웠다. 이튿날인 18일 나흘 만에 반등에 나섰지만 반등이 강하지 않은 모습이다. 이날 오전 9시33분 현재 에코프로비엠은 전일 대비 1500원(1.27%) 오른 11만9700원에 거래 중이다.

전날 종가는 지난해 7월26일 장중 기록한 사상 최고가 58만4000원과 비교하면 79.76% 폭락, 5분의 1 토막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52주 최고가가 지난해 12월 기록한 33만5000원이란 점을 고려하면 1년 만에 64.72% 급락한 셈이다.

한때 45조원에 육박했던 시가총액은 11조5601억원(17일 기준)으로 급감했다. '코스닥 대장주' 지위도 한참 전에 잃었다. 에코프로비엠은 작년 9월4일 모회사 에코프로를 밀어내고, 코스닥 시총 1위에 올랐지만 1년도 안 돼 대장주 자리를 알테오젠(16조756억원)에 내줬다. 최근 1년(2023년 12월15일~2024년 12월17일)간 알테오젠이 334.44% 급등할 때, 에코프로비엠은 63.06% 하락하며 대조적인 흐름을 보였기 때문이다.

주가가 속절없이 하락한 탓에 개인 투자자의 손실은 불어나고 있다. NH투자증권을 통해 에코프로비엠 주식을 보유한 8만4790명(16일 기준)의 평균 손실률은 43.15%에 달한다. 1억원을 투자했다면 4300만원 이상 손실을 낸 셈이다. 손실 투자자 비율도 전체의 95.41%에 육박한다. 6월 말 58만3349명이었던 에코프로비엠의 소액주주는 3개월 새 55만8723명으로 3만명 이상 줄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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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적 우려가 주가를 끌어내리는 양상이다. 작년 상반기 주가가 급등할 때, 2차전지 시장이 매년 2배씩 성장할 것이란 기대감이 깔려있었다. 하지만 전기차 캐즘 여파에 장밋빛 전망은 먹구름이 되어 돌아왔다. 지난달 한국자동차연구원의 '배터리전기차(BEV) 수요 둔화 속 완성차 사별 대응 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은 꾸준히 늘고 있지만, 판매량 증가율은 2022년 이후 감소세다.

완성차 업체들도 전기차 생산 속도를 조절하고 있다. GM은 지난 6월 올해 전기차 생산량 목표를 기존에 발표한 20만∼30만대에서 20만∼25만대로 하향 조정했으며, 세계 4위 완성차 업체 스텔란티스도 내년 1월 5일까지 이탈리아 토리노의 전기차 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백악관에 재입성한 점도 배터리 업체엔 부담이 될 전망이다. 최근 트럼프 당선인의 정권 인수팀이 전기차 구매 보조금 폐지를 추진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로이터가 입수한 내부 문건에 따르면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최대 7500달러(약 1070만원)에 이르는 전기차 세금 공제 혜택을 폐지(eliminating)할 예정이다. 아울러 로이터는 2차전지 소재에 관세를 부과한 뒤 국가별로 협상할 것이라 보도했다. 배터리 소재의 미국 내 생산을 장려하기 위해서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증권가는 에코프로비엠의 4분기 영업손실 규모가 122억원에 달할 것으로 분석했다. 연간 영업손실은 397억원으로 적자 전환할 전망이다. 내년엔 1061억원을 벌어들이며 흑자 전환할 것으로 보이지만, 영업이익 규모는 2023년(1560억원)보다 작을 것으로 예상된다.

실적 부진은 재무구조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 2022년 말 126.7%였던 부채비율(연결 기준)은 172.7%로 50%포인트가량 높아졌다. 3분기 말 기준 부채비율은 167%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순차입금비율(순차입부채를 총자본으로 나눈 비율)도 107.7%로 집계됐다.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에코프로비엠을 둘러싼 악조건은 단기간에 해소되긴 어려울 전망이다. 중국 배터리 가격이 저렴해 한국 배터리의 매력이 떨어졌다는 분석이다. 이용욱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트럼프발(發) 불확실성으로 국내 2차전지 업종의 주가 조정이 이어지고 있다. 양극재 업종은 내년에도 디레이팅(주가수익비율이 낮아지는 현상)이 지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어 "리튬 가격이 하락하는 국면에서 중국의 리튬·인산철(LFP) 배터리와 한국 삼원계(NCM) 셀의 가격 차이가 확대됐다"며 "이 때문에 유럽 완성차 업체는 중국 LFP 배터리를 채택할 수밖에 없다. 국내 업체의 LFP 배터리에도 중국 양극재가 탑재돼 국내 양극재 업체는 암울한 상황을 맞게 될 것이다"라고 진단했다.

국내 양극재 반등 조건에 대해 이 연구원은 "고전압 미드니켈(Mid-Ni) 양극재 수요가 확대되거나 국내 양극재 업체의 LFP 양극재 양산이 본격화하기 전까지는 그동안 국내 양극재 업체들이 인정받던 프리미엄을 더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에코프로비엠은 유가증권시장 이전 상장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거래소는 지난달 27일 장 마감 후 에코프로비엠이 유가증권시장 이전 상장을 위한 예비심사신청서를 접수했다고 밝혔다. 에코프로비엠 이사회는 지난 3월 주주총회를 열고 코스피 이전 상장을 의결한 후 이를 추진해왔다. 내년 1분기 중 이전 상장을 완료한다는 방침이다.

진영기 한경닷컴 기자 young7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