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과 폭력이 난무하는 곳에서 발휘하는 음악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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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김동민의 뉴욕의 동네 음악가
맨해튼 북부에 위치한 할렘은 여러 가지 사건과 사고로 악명 높은 곳이다. 러셀 크로우와 덴젤 워싱턴이 출연한 영화 ‘아메리칸 갱스터’는 마약과 폭력이 난무하는 할렘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뉴욕주 주지사로 재임하던 시절, 이 지역에 관심을 가졌고 1990년대에는 자신의 사무실을 두기도 했다.
할렘 북쪽으로 흐르는 강 건너에는 뉴욕시의 다섯 개 자치구 중 하나인 브롱크스가 있는데,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많이 살고있는 곳이다. 1960년대에는 빈곤과 높은 범죄율로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었지만, 힙합 음악이 탄생했고, 메이저리그 명문 구단 뉴욕 양키스의 홈구장이 있다.
비올리스트 킴 카쉬카시안(Kim Kashkashian)은 쿠르탁(Kurtág)과 리게티(Ligeti)의 작품이 담긴 솔로 음반으로 그래미상을 받았던 세계적 명성의 아티스트이다. 몇 년 전 그와 브롱크스에 있는 한 대학의 초청으로 함께 연주를 가졌다. 음악회가 끝나고 장내 정리가 거의 마무리될 즈음, 양갈래로 머리를 땋은 아프리카계 소녀가 내게 다가왔다. 작은 손에 들고 있던 프로그램 책자를 수줍게 내밀며 사인을 부탁했다. 오늘이 생애 처음으로 본 클래식 음악 콘서트라고 말하던 소녀의 상기된 눈빛은 지갑 속 가족사진처럼 가슴 한편에 남아있다. 필라델피아 도심에 위치한 템플대학교 인근의 노스센트럴(North Central)은 미국 내에서도 총기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곳이다. 마치 생명이 다해버린 듯 많은 집이 비어 있고, 현재 살고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극빈층이다. 주민의 70% 이상이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했고, 경찰의 주요 업무는 살인, 마약, 강도 사건과 같은 중범죄와 관련되어 있다. 노스센트럴에 사는 아이들은 마약과 강력 범죄 속에서 살아간다.
몇 년 전에도 옆 집에서 총기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얼마 전에는 현금 인출기 앞에서 강도의 협박을 받기도 했다. 어둠이 내리면 거리는 조용하고, 길을 걷는 사람도 드물다. 창가에 비치는 희미한 불빛이 그나마 위로를 건네는 위험한 그 동네에 20년 동안 살고 있는 지인의 이야기이다.
한국에서 미학을 전공한 후 미국으로 건너온 그는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었다. ‘왜 굳이 그런 위험한 곳에 사느냐?’는 질문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매일 경찰의 도움을 받으며 살얼음판을 걷는 듯 위험천만한 일상을 살 것 같지만, 어려움을 당한 이웃들의 법정대리인이 되어주며, 동네 친구들의 장례를 돕는 일에 나선다. 여름에는 이웃 교회와 함께 거리에서 필요한 물품과 음식을 나누고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여름 캠프를 진행한다.
그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단골 관객이자 실내악 공연의 마니아이다. 임윤찬의 연주를 보기 위해 500킬로미터 북쪽에 위치한 보스턴까지 다녀오기도 했다. 목사로서 노스센트럴을 터전으로 삼은 분명한 목적이 있지만,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교류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향유하며 일상의 괴리를 채워 나간다.
이웃들에게 빵과 성경뿐만 아니라 새로운 것을 선물하고 싶어 하는 이 목사의 제안으로 2017년부터 연말마다 노스센트럴을 찾고 있다. 지난 주말 테이블과 의자가 가득 찬 비좁은 농구코트에 모인 지역 주민 200여 명을 초대하는 행사에서 17명의 연주자로 구성된 앙상블이 작은 음악회를 열었다. 올해도 변함없이 장내는 어수선했고 몇몇 아이들은 여전히 신나게 뛰어다녔다. 공연을 할 만한 환경도 아니고 클래식 음악의 경험이 전무한 관객을 대상으로 하는 연주는 많은 걸 내려놓을 수밖에 없다. 순서를 마친 후 이 목사는 주민들이 작년에 비해 귀 기울여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며 조금씩 좋아지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 전 브롱크스에서 만났던 소녀처럼, 또래와 달리기를 멈추고 음악에 귀를 기울인 아이가 있었을까.
잿밥에만 관심 있을 것 같던 나이 지긋한 한 아주머니는 연주가 끝나자 상기된 얼굴을 한 채, 테이블 사이를 빠져나가는 나를 붙들고 말했다.
“It was REALLY good! Come back next year!!”
음악은 힘이 있다. 그 힘은 때때로 상황과 현실을 뛰어넘는다.
뉴욕=김동민 뉴욕클래시컬플레이어스 음악감독·아르떼 객원기자
할렘 북쪽으로 흐르는 강 건너에는 뉴욕시의 다섯 개 자치구 중 하나인 브롱크스가 있는데,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많이 살고있는 곳이다. 1960년대에는 빈곤과 높은 범죄율로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었지만, 힙합 음악이 탄생했고, 메이저리그 명문 구단 뉴욕 양키스의 홈구장이 있다.
비올리스트 킴 카쉬카시안(Kim Kashkashian)은 쿠르탁(Kurtág)과 리게티(Ligeti)의 작품이 담긴 솔로 음반으로 그래미상을 받았던 세계적 명성의 아티스트이다. 몇 년 전 그와 브롱크스에 있는 한 대학의 초청으로 함께 연주를 가졌다. 음악회가 끝나고 장내 정리가 거의 마무리될 즈음, 양갈래로 머리를 땋은 아프리카계 소녀가 내게 다가왔다. 작은 손에 들고 있던 프로그램 책자를 수줍게 내밀며 사인을 부탁했다. 오늘이 생애 처음으로 본 클래식 음악 콘서트라고 말하던 소녀의 상기된 눈빛은 지갑 속 가족사진처럼 가슴 한편에 남아있다. 필라델피아 도심에 위치한 템플대학교 인근의 노스센트럴(North Central)은 미국 내에서도 총기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곳이다. 마치 생명이 다해버린 듯 많은 집이 비어 있고, 현재 살고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극빈층이다. 주민의 70% 이상이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했고, 경찰의 주요 업무는 살인, 마약, 강도 사건과 같은 중범죄와 관련되어 있다. 노스센트럴에 사는 아이들은 마약과 강력 범죄 속에서 살아간다.
몇 년 전에도 옆 집에서 총기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얼마 전에는 현금 인출기 앞에서 강도의 협박을 받기도 했다. 어둠이 내리면 거리는 조용하고, 길을 걷는 사람도 드물다. 창가에 비치는 희미한 불빛이 그나마 위로를 건네는 위험한 그 동네에 20년 동안 살고 있는 지인의 이야기이다.
한국에서 미학을 전공한 후 미국으로 건너온 그는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었다. ‘왜 굳이 그런 위험한 곳에 사느냐?’는 질문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매일 경찰의 도움을 받으며 살얼음판을 걷는 듯 위험천만한 일상을 살 것 같지만, 어려움을 당한 이웃들의 법정대리인이 되어주며, 동네 친구들의 장례를 돕는 일에 나선다. 여름에는 이웃 교회와 함께 거리에서 필요한 물품과 음식을 나누고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여름 캠프를 진행한다.
그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단골 관객이자 실내악 공연의 마니아이다. 임윤찬의 연주를 보기 위해 500킬로미터 북쪽에 위치한 보스턴까지 다녀오기도 했다. 목사로서 노스센트럴을 터전으로 삼은 분명한 목적이 있지만,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교류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향유하며 일상의 괴리를 채워 나간다.
이웃들에게 빵과 성경뿐만 아니라 새로운 것을 선물하고 싶어 하는 이 목사의 제안으로 2017년부터 연말마다 노스센트럴을 찾고 있다. 지난 주말 테이블과 의자가 가득 찬 비좁은 농구코트에 모인 지역 주민 200여 명을 초대하는 행사에서 17명의 연주자로 구성된 앙상블이 작은 음악회를 열었다. 올해도 변함없이 장내는 어수선했고 몇몇 아이들은 여전히 신나게 뛰어다녔다. 공연을 할 만한 환경도 아니고 클래식 음악의 경험이 전무한 관객을 대상으로 하는 연주는 많은 걸 내려놓을 수밖에 없다. 순서를 마친 후 이 목사는 주민들이 작년에 비해 귀 기울여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며 조금씩 좋아지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 전 브롱크스에서 만났던 소녀처럼, 또래와 달리기를 멈추고 음악에 귀를 기울인 아이가 있었을까.
잿밥에만 관심 있을 것 같던 나이 지긋한 한 아주머니는 연주가 끝나자 상기된 얼굴을 한 채, 테이블 사이를 빠져나가는 나를 붙들고 말했다.
“It was REALLY good! Come back next year!!”
음악은 힘이 있다. 그 힘은 때때로 상황과 현실을 뛰어넘는다.
뉴욕=김동민 뉴욕클래시컬플레이어스 음악감독·아르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