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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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배터리에 사용되는 핵심 소재인 흑연을 생산하는 미국 기업들이 중국산 흑연에 대한 대규모 관세 인상을 요구하고 나섰다

18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이 단독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 흑연 생산업체들을 대표하는 미국 활성양극재생산자협회는 중국 기업들의 반덤핑법 위반 여부를 조사해달라는 내용의 청원서를 전날 미국 상무부와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제출했다. 협회는 중국 정부의 막대한 보조금을 지원 받은 중국 기업들이 흑연 가격을 과도하게 낮춰 미국 기업들이 경쟁할 수 없는 환경을 조성했다고 주장했다.

협회는 중국산 흑연에 대해 최대 920%의 징벌적 관세를 부과할 것을 요청했다. 에릭 올슨 대변인은 "중국의 악의적인 무역 관행으로 흑연 산업이 질식 위기에 처해 있다"고 "북미에서 이 산업을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중국산 제품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해 전 세계 흑연 공급량의 약 77%를 차지한 것으로 추산된다.

관세 부과 여부는 내년 말 조사가 마무리된 후 결정될 예정이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차기 미국 행정부의 출범 후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당선인은 2018년 1기 행정부 당시 중국산 합성흑연을 포함한 수입품에 대해 25% 관세를 부과했다. 트럼프 당선인이 극단적인 관세 정책을 예고한 만큼 이번 조치의 강도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에 따라 흑연을 둘러싼 갈등이 본격화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중국은 이미 지난해 12월부터 흑연에 대한 수출 통제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흑연은 민간과 군수 양쪽에 모두 사용될 수 있는 이중용도 품목으로 분류돼, 해외로 수출되기 위해서는 엄격한 최종 사용자 및 용도 검증 절차를 거쳐야 한다.

美 전기차 가격 폭등하나

트럼프 당선인이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른 전기차 보조금 폐지를 예고한 상황에서, 중국산 흑연에 대한 관세 인상이 현실화할 경우 미국산 전기차 가격이 크게 상승할 것이라고 블룸버그는 짚었다.

흑연은 전기차 배터리 셀 제조 비용의 약 10%를 차지하는 핵심 소재다. 샘 아부엘사미드 가이드하우스인사이트 애널리스트는 흑연 가격이 900% 인상될 경우 배터리 셀의 전체 비용이 두 배 증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대체 공급업체들이 생산량을 늘리기 전까지 이러한 상황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 미국 내 배터리 제조 비용은 이미 중국보다 최소 20% 더 비싼 실정이다.

트럼프 당선인의 최측근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에게도 이 같은 관세 인상은 큰 재정적 부담이 될 전망이다. 테슬라는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중국산 흑연에 대한 관세 면제를 요청했다.

한편 미국 내 흑연 대체 공급망 구축 움직임도 가속화되고 있다. 테슬라 주요 공급사인 파나소닉은 내년부터 테네시주에 있는 배터리 소재·장비 기업 노보닉스의 합성흑연을 구매하기로 했다. 미국 에너지부는 32만5000대의 전기차 배터리를 생산할 수 있는 새로운 흑연 공장 건설을 위해 노보닉스에 7억5500만달러(1조1000억원)의 대출을 승인했다.

노보닉스의 테네시주 공장은 내년 초부터 연간 1만t의 생산 능력을 갖출 전망이다. 새로 지어지고 있는 공장으로 생산 능력을 향후 연간 최대 7만t까지 확장할 계획이다. 그러나 블룸버그는 "여전히 미국의 중국산 흑연 수입 규모를 대체하기에 부족하다"고 짚었다. 지난해 미국은 총 9만1000t 이상의 흑연을 수입했는데, 이 중 약 7만t이 중국에서 유입됐다.

임다연 기자 allo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