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 쇼팽의 서정과 질풍노도 그려냈다...독창적 재해석 보여준 임윤찬의 쇼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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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이치 캄머필하모니 브레멘 내한공연, 12월18일 예술의전당
임윤찬, 쇼팽 피아노협주곡 2번 협연
과감한 루바토와 절묘한 타이밍 돋보여
임윤찬, 쇼팽 피아노협주곡 2번 협연
과감한 루바토와 절묘한 타이밍 돋보여
서울 기온이 올 겨울 들어 최저치를 기록했던 지난 12월 18일, 예술의전당에서 독일의 명문 체임버 오케스트라인 ‘도이치 캄머필하모니 브레멘(이하 DKB)’의 내한공연이 열렸다. 에스토니아 출신의 거장 파보 예르비가 이끄는 DKB는 꾸준한 내한공연을 통해서 국내에도 일정한 팬층을 확보하고 있는 악단이다. 특히 2010년대 진행했던 베토벤 교향곡 공연들은 우리 시대 오케스트라 예술의 한 극치를 선보이며 큰 화제와 인기를 모은 바 있다.
예르비와 DKB 사이에 형성된 파트너십은 절묘함을 넘어 경이로운 수준이다. 예르비의 현란한 지휘봉과 그 지시들을 천연덕스럽게 받아내는 단원들의 긴밀한 호흡, 거기서 빚어지는 변화무쌍한 연주는 언제나 관객들에게 짜릿한 감각적 쾌락과 신선한 음악적 감흥을 선사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처음 내한했던 재작년(2022년) 공연에서도 여전했다. 하이든 교향곡을 메인으로 들고 왔던 그 공연에서 이들은 한층 성숙해진 음악성과 더욱 무르익은 파트너십을 드러내며 다시금 호평과 찬사를 이끌어냈다. 따라서 모차르트를 전면에 내세운 이번 내한공연에 대한 기대도 클 수밖에 없었고, 1부 ‘돈 조반니 서곡’과 2부 ‘주피터 교향곡’은 그런 기대에 충분히 부응했다. 다만 이번 공연에서 대다수 관객들의 관심은 아무래도 협연자인 임윤찬에게 쏠렸을 것이다. 반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 우승 이후 임윤찬은 국제적인 화제의 중심으로 떠올라 세계 유수의 공연장들과 오케스트라, 페스티벌들을 차근차근 섭렵해나가고 있다. 더구나 그의 메이저 레이블(데카) 데뷔 음반인 ‘쇼팽 연습곡집’은 올해 그라모폰상(영국)과 디아파종 황금상(프랑스)을 차례로 석권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번 협연은 그 바로 직후에 진행되었기에 더욱 이목이 집중되는 건 당연지사였다. 더구나 레퍼토리마저 그가 새로이 도전하는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이었으니 오죽했겠는가.
이번 협연에서 임윤찬은 자신과 동년배 시절 쇼팽의 꿈과 열정, 애상이 담긴 처녀작 협주곡을 자신만의 호흡과 감각으로 설득력 있게 들려줬다. 첫 악장 아인강(솔로 도입부)에서 예상보다 여유로운 템포와 사려 깊은 표정으로 말문을 연 그는 이후 특유의 대담한 루바토, 의표를 찌르는 타이밍을 아낌없이 구사하며 청년 쇼팽의 서정과 질풍노도를 독창적 언어로 재해석해냈다. 이번 임윤찬의 연주에서 가장 두드러진 요소는 (그에게 영향을 미친 20세기 초 전설적인 피아니스트들의 잔영이 엿보이는) ‘자유로운 루바토’였다. 1악장 주제 제시부에서부터 템포와 페이스가 프레이즈 단위로 달라지며 유동했는데, 그것이 단순한 기벽이나 변덕스러움으로 다가오지 않았다는 점이 중요하다.
특히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는데, 1악장과 2악장의 중간쯤에서 악구와 악구 사이에 놓인 짧은 휴지부를 마치 브루크너 교향곡의 ‘게네랄파우제(genaralpause, 긴 호흡의 모두 쉼표)처럼 처리한 부분이다. 덕분에 한 동안 숨 막히는 정적이 연출되었고, 다음에 이어지는 음들이 매우 극적으로 부각되었다. 일반적인 관점에서는 ‘과장’이라고 지적당할 만한 장면이었지만, 그 효과가 너무도 절묘해서 비판보다는 감탄에 무게가 실렸다.
무엇보다 임윤찬의 해석은 단순한 음악적 효과보다는 악곡 내면에 대한 공감을 우선시하고 있었다. 그 핵심은 역시 2악장이었는데, 이 환상과 격정이 교차하는 완서악장에서 그는 쇼팽이 짝사랑했던 여인의 초상이 투영된 전반부와 그녀를 향한 비극적인 열정과 탄식이 담긴 중간부의 성격을 뚜렷이 구분지어 대비시키기보다는 하나의 연결된 흐름으로 처리하여 그 기저의 정서적 흐름을 나름의 감수성으로 조명하고 심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가 이번 협연을 준비하면서 다분히 화려하고 외향적인 1번이 아니라 보다 섬세하고 내향적인 2번을 선택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3악장에서는 아찔한 장면도 있었다. 중간의 한 에피소드에서 다시 론도 주제부로 복귀하기 전에 다소 생경한 음들이 들려왔던 것. 멀리서(1층 C블록 맨 뒷자리) 보기에는 그 대목에서 피아니스트가 머뭇거리는 것 같았기에 현장에서는 혹시 잠시 악보를 잊은 것인가 의심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그보다는 임윤찬 특유의 즉흥연주가 슬쩍 곁들여진 장면이 아니었나 싶다. 다만 그 흐름이 아주 자연스럽지는 않았기에 아직은 작품에 대한 그의 해석이 완성되지는 않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앙코르는 바흐의 골트베르크 변주곡 중 ‘아리아’였다. 그답게 처음부터 장식음을 듬뿍 가미한 매력적인 연주가 내년에 예정된 전곡 연주에 대한 기대를 한껏 높여주었다. 아울러 이 협연에서 예르비와 DKB의 연주에 대해서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당초 이 공연 소식을 접했을 때 임윤찬과의 호흡에 대한 기대가 컸다. 예르비와 임윤찬은 익숙한 명곡에 대한 과감한 해석과 즉흥적 시도를 즐기는 연주가라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었다. 비록 당초 기대에는 다소 못 미쳤지만, 임윤찬의 이례적인 연주에 대처하는 예르비와 DKB 단원들의 반응력은 역시 남달랐다. 피아니스트가 수시로 만들어낸 연주 흐름의 전환점들에서 예르비의 바통은 순간순간 기민하게 방향을 바꿨고, 중간에 삽입된 솔로들을 맡은 목관 주자들도 피아니스트와의 소통 및 교감에 사뭇 적극적이었다. 특히 2악장 코다에서 피아노 솔로와 어우러지는 바순의 감성 풍부한 솔로가 돋보였다.
다만 대형 콘서트홀을 온전히 채우기에는 다소 부족한 악단 규모의 한계상 피아니스트에게 보다 넉넉한 음향적 배경을 제공하지 못한 부분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지면관계상 모차르트 연주에 관해서는 짧게 언급하고 마무리해야겠다. 예르비와 DKB의 연주를 들을 때마다 ‘오케스트라에서도 얼마든지 즉흥연주가 가능하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이번 공연에서도 역시 그런 연주의 위력은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수시로 악센트와 강약을 변경하는 예르비의 변화무쌍한 지휘봉이 익숙한 곡들을 참신한 디테일과 흥미로운 흐름으로 조각했고, 거기에 능수능란하게 호응하는 단원들의 자발성이 감흥을 배가시켰다.
다만 당일 단원들과 지휘자 공히 최상의 컨디션은 아닌 것처럼 보이는 면도 있었다. 일부 악기의 음정이 흔들리거나 발음 타이밍이 약간씩 어긋나는 등의 문제가 있었고, 예르비의 지휘봉도 뒤로 갈수록 탄력이 떨어지는 감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주피터 교향곡’은 이제껏 실연으로 접한 가장 흥미진진한 부류에 속했다.
앙코르는 시벨리우스의 ‘안단테 페스티보’와 ‘슬픈 왈츠’ 두 곡. 그들의 공연에서 종종 들을 수 있는 장기곡들로 역시 능숙하고 절묘한 연주가 돋보였고, 덕분에 앞선 교향곡 연주가 남긴 일말의 아쉬움을 말끔히 날려버릴 수 있었다.
황장원 음악칼럼니스트
예르비와 DKB 사이에 형성된 파트너십은 절묘함을 넘어 경이로운 수준이다. 예르비의 현란한 지휘봉과 그 지시들을 천연덕스럽게 받아내는 단원들의 긴밀한 호흡, 거기서 빚어지는 변화무쌍한 연주는 언제나 관객들에게 짜릿한 감각적 쾌락과 신선한 음악적 감흥을 선사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처음 내한했던 재작년(2022년) 공연에서도 여전했다. 하이든 교향곡을 메인으로 들고 왔던 그 공연에서 이들은 한층 성숙해진 음악성과 더욱 무르익은 파트너십을 드러내며 다시금 호평과 찬사를 이끌어냈다. 따라서 모차르트를 전면에 내세운 이번 내한공연에 대한 기대도 클 수밖에 없었고, 1부 ‘돈 조반니 서곡’과 2부 ‘주피터 교향곡’은 그런 기대에 충분히 부응했다. 다만 이번 공연에서 대다수 관객들의 관심은 아무래도 협연자인 임윤찬에게 쏠렸을 것이다. 반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 우승 이후 임윤찬은 국제적인 화제의 중심으로 떠올라 세계 유수의 공연장들과 오케스트라, 페스티벌들을 차근차근 섭렵해나가고 있다. 더구나 그의 메이저 레이블(데카) 데뷔 음반인 ‘쇼팽 연습곡집’은 올해 그라모폰상(영국)과 디아파종 황금상(프랑스)을 차례로 석권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번 협연은 그 바로 직후에 진행되었기에 더욱 이목이 집중되는 건 당연지사였다. 더구나 레퍼토리마저 그가 새로이 도전하는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이었으니 오죽했겠는가.
이번 협연에서 임윤찬은 자신과 동년배 시절 쇼팽의 꿈과 열정, 애상이 담긴 처녀작 협주곡을 자신만의 호흡과 감각으로 설득력 있게 들려줬다. 첫 악장 아인강(솔로 도입부)에서 예상보다 여유로운 템포와 사려 깊은 표정으로 말문을 연 그는 이후 특유의 대담한 루바토, 의표를 찌르는 타이밍을 아낌없이 구사하며 청년 쇼팽의 서정과 질풍노도를 독창적 언어로 재해석해냈다. 이번 임윤찬의 연주에서 가장 두드러진 요소는 (그에게 영향을 미친 20세기 초 전설적인 피아니스트들의 잔영이 엿보이는) ‘자유로운 루바토’였다. 1악장 주제 제시부에서부터 템포와 페이스가 프레이즈 단위로 달라지며 유동했는데, 그것이 단순한 기벽이나 변덕스러움으로 다가오지 않았다는 점이 중요하다.
특히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는데, 1악장과 2악장의 중간쯤에서 악구와 악구 사이에 놓인 짧은 휴지부를 마치 브루크너 교향곡의 ‘게네랄파우제(genaralpause, 긴 호흡의 모두 쉼표)처럼 처리한 부분이다. 덕분에 한 동안 숨 막히는 정적이 연출되었고, 다음에 이어지는 음들이 매우 극적으로 부각되었다. 일반적인 관점에서는 ‘과장’이라고 지적당할 만한 장면이었지만, 그 효과가 너무도 절묘해서 비판보다는 감탄에 무게가 실렸다.
무엇보다 임윤찬의 해석은 단순한 음악적 효과보다는 악곡 내면에 대한 공감을 우선시하고 있었다. 그 핵심은 역시 2악장이었는데, 이 환상과 격정이 교차하는 완서악장에서 그는 쇼팽이 짝사랑했던 여인의 초상이 투영된 전반부와 그녀를 향한 비극적인 열정과 탄식이 담긴 중간부의 성격을 뚜렷이 구분지어 대비시키기보다는 하나의 연결된 흐름으로 처리하여 그 기저의 정서적 흐름을 나름의 감수성으로 조명하고 심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가 이번 협연을 준비하면서 다분히 화려하고 외향적인 1번이 아니라 보다 섬세하고 내향적인 2번을 선택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3악장에서는 아찔한 장면도 있었다. 중간의 한 에피소드에서 다시 론도 주제부로 복귀하기 전에 다소 생경한 음들이 들려왔던 것. 멀리서(1층 C블록 맨 뒷자리) 보기에는 그 대목에서 피아니스트가 머뭇거리는 것 같았기에 현장에서는 혹시 잠시 악보를 잊은 것인가 의심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그보다는 임윤찬 특유의 즉흥연주가 슬쩍 곁들여진 장면이 아니었나 싶다. 다만 그 흐름이 아주 자연스럽지는 않았기에 아직은 작품에 대한 그의 해석이 완성되지는 않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앙코르는 바흐의 골트베르크 변주곡 중 ‘아리아’였다. 그답게 처음부터 장식음을 듬뿍 가미한 매력적인 연주가 내년에 예정된 전곡 연주에 대한 기대를 한껏 높여주었다. 아울러 이 협연에서 예르비와 DKB의 연주에 대해서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당초 이 공연 소식을 접했을 때 임윤찬과의 호흡에 대한 기대가 컸다. 예르비와 임윤찬은 익숙한 명곡에 대한 과감한 해석과 즉흥적 시도를 즐기는 연주가라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었다. 비록 당초 기대에는 다소 못 미쳤지만, 임윤찬의 이례적인 연주에 대처하는 예르비와 DKB 단원들의 반응력은 역시 남달랐다. 피아니스트가 수시로 만들어낸 연주 흐름의 전환점들에서 예르비의 바통은 순간순간 기민하게 방향을 바꿨고, 중간에 삽입된 솔로들을 맡은 목관 주자들도 피아니스트와의 소통 및 교감에 사뭇 적극적이었다. 특히 2악장 코다에서 피아노 솔로와 어우러지는 바순의 감성 풍부한 솔로가 돋보였다.
다만 대형 콘서트홀을 온전히 채우기에는 다소 부족한 악단 규모의 한계상 피아니스트에게 보다 넉넉한 음향적 배경을 제공하지 못한 부분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지면관계상 모차르트 연주에 관해서는 짧게 언급하고 마무리해야겠다. 예르비와 DKB의 연주를 들을 때마다 ‘오케스트라에서도 얼마든지 즉흥연주가 가능하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이번 공연에서도 역시 그런 연주의 위력은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수시로 악센트와 강약을 변경하는 예르비의 변화무쌍한 지휘봉이 익숙한 곡들을 참신한 디테일과 흥미로운 흐름으로 조각했고, 거기에 능수능란하게 호응하는 단원들의 자발성이 감흥을 배가시켰다.
다만 당일 단원들과 지휘자 공히 최상의 컨디션은 아닌 것처럼 보이는 면도 있었다. 일부 악기의 음정이 흔들리거나 발음 타이밍이 약간씩 어긋나는 등의 문제가 있었고, 예르비의 지휘봉도 뒤로 갈수록 탄력이 떨어지는 감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주피터 교향곡’은 이제껏 실연으로 접한 가장 흥미진진한 부류에 속했다.
앙코르는 시벨리우스의 ‘안단테 페스티보’와 ‘슬픈 왈츠’ 두 곡. 그들의 공연에서 종종 들을 수 있는 장기곡들로 역시 능숙하고 절묘한 연주가 돋보였고, 덕분에 앞선 교향곡 연주가 남긴 일말의 아쉬움을 말끔히 날려버릴 수 있었다.
황장원 음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