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지앵 울린 이응노의 '군무'…빛과 음악으로 서울에서 다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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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노: 위대한 예술적 여정, 서울-파리'
그랜드워커힐 호텔 내 '빛의 시어터'에서
54세에 파리로 건너간 '미술 한류' 원조
'서체적 추상'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라
정치적 갈등 뛰어넘은 '군무' 등 100여점
AI 기반 몰입형 미디어아트로 재해석
그랜드워커힐 호텔 내 '빛의 시어터'에서
54세에 파리로 건너간 '미술 한류' 원조
'서체적 추상'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라
정치적 갈등 뛰어넘은 '군무' 등 100여점
AI 기반 몰입형 미디어아트로 재해석
한국 추상화의 거장 고암 이응노(1904~1989)는 생전 볼쇼이발레단의 공연을 즐겨봤다. 남북의 이념 갈등이라는 격랑에 휩쓸리며 프랑스로 망명하다시피 이주한 직후다. 줄지어 춤추는 사람들의 형상에서 그는 무엇을 보았을까. 정치적 다툼을 넘어 평화와 화합을 바랐던 노(老) 작가의 심경이 말년의 '군무' 연작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 화백의 군무가 빛과 음악으로 다시 태어났다. 작가의 탄생 120주년을 기념해 서울 광장동 빛의 시어터에서 열린 '이응노: 위대한 예술적 여정, 서울-파리' 특별전에서다. '군무'와 '군상' 등 대표작 100여점을 몰입형 미디어아트 전시로 재현했다. 문자나 사람, 또는 풍경처럼도 보이는 그의 추상이 약 14분에 걸쳐 전시장을 가득 메운다. '미술 한류'의 원조 이응노
1954년 프랑스 파리로 건너간 이 화백은 '미술 한류(韓流)'의 원조로 꼽히는 화가다. 동서양의 미술 양식을 결합한 '서체적 추상'으로 일찌감치 스타덤에 올랐다. 1964년 파리동양미술학교를 세울 정도로 유럽 문화계 내 입지도 대단했다. 쇼팽과 모딜리아니 등 20세기를 빛낸 예술가들이 묻힌 파리 페르 라셰즈 공동묘지에 그의 묘비가 세워진 것이 이를 방증한다.
그런데 국내에서 그의 인지도는 국제적 위상에 한참 못 미친다. 1967년 중앙정보부가 발표한 동백림(동베를린) 사건으로 2년여간 옥고를 치른 뒤 줄곧 해외에서 생활한 탓이다. 북한에 있다는 아들의 소식을 들으러 동베를린을 찾은 게 화근이 됐다. 정부에서 한때 그의 국내 작품 전시와 판매를 금지하기도 했다. 이 화백은 몰입형 미디어아트라는 최신식 전시구성과 가장 잘 어울렸을 작가 중 한 명이다. 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려던 작가의 인생관을 보면 그렇다. 충남 홍성에서 태어난 그는 19살에 상경해 전통 문인화를 배웠다. 40대 초반 일본으로 자리를 옮겨 사실주의 화풍을 장착했다. 프랑스로 넘어간 것도 54세라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서다. 옥살이할 때도 밥풀과 간장으로 그림을 그리는 등 실험적 시도를 놓지 않았다. 이번 전시는 반세기 넘는 작가의 여정을 크게 다섯 단계로 구분한다. 스승 해강 김규진 선생한테 '죽사(竹史)'라는 호를 받을 정도로 대나무를 사랑했던 문인화가 시절의 작품이 시작이다. 이후 파리에서 그에게 명성을 안겨준 문자추상의 기호들이 전시장에 퍼진다. 고향 한국을 그리는 마음을 담은 '동방견문록' 시리즈가 뒤를 잇는다. '군무'와 '군상' 속 군중들의 움직임으로 막을 내린다.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는 사람이다. 1980년대 파리에서 광주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한 소식을 접한 뒤 군상을 본격적으로 내놓기 시작했다. 작품에는 춤을 추거나 상모를 돌리는 듯한 모습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다만 그는 생전 자기 작품이 정치적 저항의 의미로만 해석되는 걸 경계했다. 모두가 둘러앉아 춤을 추는 인류 보편적인 평화 그 자체를 강조했다. 전시 마지막 장의 제목이 '사람 그리고 평화'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AI 알고리즘으로 되살아난 군상
원화를 단순 상영하는데 그치는 그저 그런 미디어아트 전시가 아니다. 21m 층고에 4958㎡(1500평) 넓이를 지닌 넉넉한 공간이 한몫했다. 전시장의 전신은 1963년 설립된 워커힐대극장이다. 지난 2022년 더는 운영되지 않던 극장을 리모델링해 몰입형 전시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생전 작가가 즐겨봤던 발레단 공연을 연상케하는 무대 구성이다.
전시장 벽에 상영되는 군상을 기반으로 한 이미지들은 인공지능(AI) 기술을 통해 제작됐다. 작품의 질감과 색감을 학습한 알고리즘이 매 순간 새로운 이미지를 생성한다. 전시장에 마련된 '스튜디오' 공간에선 센서가 관람객의 손 위치를 실시간으로 인식하기도 한다. 손의 움직임에 따라 도상이 뭉치거나 따라가는 효과를 연출한다. 현재 빛의 시어터는 이 화백의 전시와 '베르메르부터 반 고흐까지, 네덜란드 거장들' 전시를 번갈아 가며 상영하고 있다. 시간이 촉박한 관객이라면 미리 상영시간표를 확인하고 방문할 것을 권한다. 이 화백의 전시는 내년 6월 30일까지. 입장료 성인 2만9000원. 안시욱 기자
이 화백의 군무가 빛과 음악으로 다시 태어났다. 작가의 탄생 120주년을 기념해 서울 광장동 빛의 시어터에서 열린 '이응노: 위대한 예술적 여정, 서울-파리' 특별전에서다. '군무'와 '군상' 등 대표작 100여점을 몰입형 미디어아트 전시로 재현했다. 문자나 사람, 또는 풍경처럼도 보이는 그의 추상이 약 14분에 걸쳐 전시장을 가득 메운다. '미술 한류'의 원조 이응노
1954년 프랑스 파리로 건너간 이 화백은 '미술 한류(韓流)'의 원조로 꼽히는 화가다. 동서양의 미술 양식을 결합한 '서체적 추상'으로 일찌감치 스타덤에 올랐다. 1964년 파리동양미술학교를 세울 정도로 유럽 문화계 내 입지도 대단했다. 쇼팽과 모딜리아니 등 20세기를 빛낸 예술가들이 묻힌 파리 페르 라셰즈 공동묘지에 그의 묘비가 세워진 것이 이를 방증한다.
그런데 국내에서 그의 인지도는 국제적 위상에 한참 못 미친다. 1967년 중앙정보부가 발표한 동백림(동베를린) 사건으로 2년여간 옥고를 치른 뒤 줄곧 해외에서 생활한 탓이다. 북한에 있다는 아들의 소식을 들으러 동베를린을 찾은 게 화근이 됐다. 정부에서 한때 그의 국내 작품 전시와 판매를 금지하기도 했다. 이 화백은 몰입형 미디어아트라는 최신식 전시구성과 가장 잘 어울렸을 작가 중 한 명이다. 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려던 작가의 인생관을 보면 그렇다. 충남 홍성에서 태어난 그는 19살에 상경해 전통 문인화를 배웠다. 40대 초반 일본으로 자리를 옮겨 사실주의 화풍을 장착했다. 프랑스로 넘어간 것도 54세라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서다. 옥살이할 때도 밥풀과 간장으로 그림을 그리는 등 실험적 시도를 놓지 않았다. 이번 전시는 반세기 넘는 작가의 여정을 크게 다섯 단계로 구분한다. 스승 해강 김규진 선생한테 '죽사(竹史)'라는 호를 받을 정도로 대나무를 사랑했던 문인화가 시절의 작품이 시작이다. 이후 파리에서 그에게 명성을 안겨준 문자추상의 기호들이 전시장에 퍼진다. 고향 한국을 그리는 마음을 담은 '동방견문록' 시리즈가 뒤를 잇는다. '군무'와 '군상' 속 군중들의 움직임으로 막을 내린다.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는 사람이다. 1980년대 파리에서 광주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한 소식을 접한 뒤 군상을 본격적으로 내놓기 시작했다. 작품에는 춤을 추거나 상모를 돌리는 듯한 모습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다만 그는 생전 자기 작품이 정치적 저항의 의미로만 해석되는 걸 경계했다. 모두가 둘러앉아 춤을 추는 인류 보편적인 평화 그 자체를 강조했다. 전시 마지막 장의 제목이 '사람 그리고 평화'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AI 알고리즘으로 되살아난 군상
원화를 단순 상영하는데 그치는 그저 그런 미디어아트 전시가 아니다. 21m 층고에 4958㎡(1500평) 넓이를 지닌 넉넉한 공간이 한몫했다. 전시장의 전신은 1963년 설립된 워커힐대극장이다. 지난 2022년 더는 운영되지 않던 극장을 리모델링해 몰입형 전시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생전 작가가 즐겨봤던 발레단 공연을 연상케하는 무대 구성이다.
전시장 벽에 상영되는 군상을 기반으로 한 이미지들은 인공지능(AI) 기술을 통해 제작됐다. 작품의 질감과 색감을 학습한 알고리즘이 매 순간 새로운 이미지를 생성한다. 전시장에 마련된 '스튜디오' 공간에선 센서가 관람객의 손 위치를 실시간으로 인식하기도 한다. 손의 움직임에 따라 도상이 뭉치거나 따라가는 효과를 연출한다. 현재 빛의 시어터는 이 화백의 전시와 '베르메르부터 반 고흐까지, 네덜란드 거장들' 전시를 번갈아 가며 상영하고 있다. 시간이 촉박한 관객이라면 미리 상영시간표를 확인하고 방문할 것을 권한다. 이 화백의 전시는 내년 6월 30일까지. 입장료 성인 2만9000원. 안시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