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 악화에 따른 회사채 기한이익상실(EOD) 사유 발생으로 유동성 위기에 처한 롯데케미칼이 한고비를 넘겼다. 재무 특약이 조정돼 최대 2조원의 회사채를 상환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롯데케미칼은 향후 해외법인 지분 일부 매각 등으로 자금을 확보해 시장 우려를 불식한다는 계획이다.

19일 롯데그룹과 금융권에 따르면 롯데케미칼 사채권자들은 이날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에서 사채권자 집회를 열고, 공모 회사채의 사채관리계약 조항 내 실적 관련 재무 특약 조정안을 가결했다. 이에 따라 2013년 9월부터 작년 3월까지 롯데케미칼이 발행한 총 2조450억원 규모의 14개 공모 회사채는 EOD 사유 발생 조건이 소멸했다.

롯데케미칼은 지난달 기발행한 회사채의 약 90%에서 EOD 사유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특약 사항에 ‘3개년 평균 이자비용 대비 상각전영업이익(EBITDA) 5배 이상 유지’ 조항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롯데케미칼은 2022년부터 올해까지 3년 연속 대규모 적자를 이어오고 있다. 이 때문에 EBITDA가 급감해 이자비용의 5배를 넘기지 못했다. 사채권자들은 이 경우 합의를 통해 빌려준 돈을 갚으라고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날 집회를 통해 해당 조항과 함께 부채비율 200% 이하 등 재무적 특약사항을 없앴다.

롯데그룹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룹의 상징인 롯데월드타워까지 담보로 내놨다. 신한 국민 하나 우리 등 국내 4대 은행이 이 담보를 바탕으로 롯데케미칼 회사채에 보증을 제공해 사채권자들을 안심시킬 수 있었다. 은행 보증을 더해 신용이 보강된 롯데케미칼 회사채는 다음달 중순 법원 인가를 받은 뒤 ‘보증사채’로 전환될 예정이다.

롯데케미칼은 대규모 적자로 부채가 빠르게 늘고 있다. 1년 이내 만기가 도래하는 유동부채는 지난 9월 말 기준 8조3316억원에 이른다. 2021년 말 2조8676억원에서 3년 만에 세 배 가까이 늘었다.

롯데케미칼은 석유화학 업황의 극적인 개선이 당분간 쉽지 않다고 판단해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하고 있다. 10월 말레이시아 합성고무 생산 법인 LUSR을 청산하기로 결정한 게 대표적이다. 자산 유동화에도 나섰다. 미국 루이지애나 내 에틸렌글리콜(EG) 생산법인인 LCLA 지분 40%를 최근 매각해 6500억원을 조달했다.

인도네시아 법인 LCI 지분도 매각해 6500억원을 추가로 마련할 방침이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