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어제 양곡관리법 등 6개 법안에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시장 원리에 반하고, 막대한 재정 부담을 지우며, 위헌 소지가 다분한 법안들이라는 점에서 타당한 결정이다. 한 권한대행은 “국가의 미래를 최우선 고려했다”고 했는데, 탄핵 정국에서 야당의 거센 압박에 굴하지 않고 용단을 내렸다.

더불어민주당은 ‘내란 공범’ 운운하며 “입법권 침해”라고 협박하는데 법안을 보면 얼토당토않다. 양곡법은 쌀이 남으면 정부가 의무 매입하고, 평년 가격을 밑돌면 차액을 지급하도록 했다. 쌀 과잉 공급과 가격 하락을 가속화해 재정 부담을 키울 게 뻔하고 농업 혁신도 요원하다. 과일, 채소값 등이 기준 밑으로 떨어지면 차액을 보상하는 농수산물가격안정법도 보장 수준이 높은 농작물로 재배가 쏠리는 등 부작용이 클 것이다. 재해 작물 생산비 일체를 보상하는 농어업재해대책법은 다른 분야와의 형평성을 부르고, 재해 보상 시 보험료 할증을 금지한 농어업재해보험법은 시장 원리를 훼손한다. ‘농망(農亡) 4법’이란 말이 괜한 게 아니다.

국회증언감정법은 국정감사·조사가 아니라 상임위 안건 심사 때도 기업인 출석을 의무화했다. 기업인이 1년 내내 국회에 불려 나갈 판이다. 국회가 영업비밀과 개인정보를 요구해도 기업은 거부할 수 없어 경영 정보 상시 유출 위험에 처할 수 있다. 예산안의 본회의 자동 부의를 막는 국회법이 통과되면 그 처리가 더 늦어질 것이다.

거부권 행사에 대해 민주당은 갖은 겁박을 했다. ‘내란 부역 판단 땐 즉시 끌어내릴 것’ ‘응분의 대가’ ‘청소 대행은 청소가 본분’ 등의 표현을 보면 권한대행 자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헌법재판관 임명은 대행의 권한이라면서 거부권에는 능동적 권한이 없다고 한 것은 자기모순이다. “탄핵안은 준비돼 있다”며 “김건희 특검법, 내란 특검법을 공포하라”고 윽박질렀다. 특검법 거부 땐 진짜 탄핵하겠다는 것이나, 당장 탄핵하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탄핵은 헌법과 법률 위반이 있어야 하는데 합법적 권한 행사가 어떻게 그 대상이 될 수 있나. 국정 마비가 오든 말든 정권을 다 가진 것처럼 막무가내로 나아간다면 민심의 역풍을 맞을 수 있다.